커뮤니케이션에서 발음의 불완전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표기에 비해 의미 전달의 정확성이 떨어져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늘 신경 써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당황스러움은 한순간이었지만 정작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오랫동안 곤혹스러움이 이어졌다. 토론회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인터넷상에서 갑론을박이 전개됐다. ‘알이백’…, 설마 당구 200 치냐고 물은 것은 아니겠지? 나중엔 시중에 이런 우스갯소리마저 돌았을 정도다. 메시지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한 사례다. 메시지를 ‘문법(공통의식 또는 구성원 간 약속)’에 기초해 작성하지 않으면 수신자가 해독에 어려움을 겪는다. 글쓰기에서 문법을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과 함께 부상(浮上)한 용어다. 2014년 미국 뉴욕시 기후주간 행사에서 저탄소 경제를 위한 캠페인으로 새롭게 제시됐다. 우리말 체계에도 이때 처음 등장해 최근 들어 활발하게 보도되는 말이다. 그런 만큼 일반인에게는 아직 낯설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표기가 그럴진대 말로 전할 때는 더 알아듣기 힘들다. 발음의 불완전성과 함께 용어 자체의 난해함 때문이다. 이 말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알이백’은 알200, R200, RE100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영문약어 남발 말고 쉬운 우리말 찾아야‘RE100’은 우리말에서 약어의 범람과 관련해 몇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우선 읽을 때 ‘알이백’이냐 ‘리백’이냐의 문제. 이것은 RE100을 이니셜로 볼지, 애크러님으로 볼지에 따라 달라진다. ‘R+E+백(100)’의 구성이다. 이를 ‘Renewable Energy’의 머리글자를 딴 것, 즉 이니셜로 보면 ‘알이백’이다. 이에 비해 RE100을 한 단어처럼 읽으면, 즉 애크러님으로 보면 ‘리백’이 된다. 이니셜은 UN, IMF, IOC처럼 머리글자를 각각 읽는 말이다. 애크러님은 아세안(ASEAN), 나토(NATO), 피파(FIFA)처럼 약어를 단어화해 발음한다.
우리 어법에서는 영문약어를 어떤 방식으로 읽을지 정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5G’ 이동통신을 ‘파이브지’로 할지 ‘오지’로 할지 따지는 일과 같다. 사회언어학자인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는 “이런 차이는 언어 원리의 문제가 아니라 관습과 취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알이백’이든 ‘리백’이든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RE100은 이제 막 우리말 체계 안에서 떠오르는 말이라 어떻게 읽을지 자리잡지 못했다. ‘언어의 자유시장’에서 언중의 선택에 따라 정해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