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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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일본·이슬람 역사 잘 모르는 까닭은
한국인들이 비정상적으로 무지한 종목이 두 개 있다. 일본 역사와 이슬람 문명이다. 몇 해 전 오사카에 벚꽃 구경을 갔을 때다. 오사카성을 둘러보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여기는 누가 살던 곳인가요?” 그런 걸 대체 어떻게 알겠느냐는 듯 누군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아마 지체 높은 귀족이 살았겠지요.” 잠시 망설였다. 타인의 무지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성의 주인이 누구고 임진왜란 이후 패권 쟁탈전 때 포격으로 완파되었다가 누가 재건했다는 얘기를 들려주면 면전에서야 “와, 대단하다” 하겠지만 속으로는 “재수 없는 놈, 잘난 척은” 하며 분위기가 냉랭해질 것이다. 원칙을 지킨 덕에 투어는 내내 평온했다.그분들은 평생 산간벽지에서 농사를 지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다. 최고 학부를 마쳤고 심지어 명예퇴직이라는 제도까지 있는 직장을 다닌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오사카 성주를 모른다는 건 일본에 대한 우리 교육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일본 역사에 대해 우리가 가장 많이 배우는 건 그들의 개화기와 근대다. 이유는 그게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메이지이신을 하고 체력을 기른 다음 조선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명칭도 그렇다. 명치유신(明治維新)이거나 메이지이신이지 메이지유신이라는 짬뽕은 대체 뭐란 말인가).반일(反日)의 기원 … 뭐가 됐든 지일(知日)이 먼저한국에서 반일이 정치적으로 활용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나는 일본과 한국에 정상적인 통상 관계가 재확립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과거를 망각해야 할 것이며 또한 망각할 것이다.” 누가 한 말일까. 이승만이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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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 간 요셉이 이집트 총리 된 비결은?
신약성경 첫 번째인 마태복음은 ‘낳고~’로 시작해 ‘낳고~’로 끝난다. 간단히 말해 예수의 혈통을 따라 올라가는 41명의 족보인데 제일 위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는다. 궁금증이 생긴다. 야곱의 아들이 열둘인데(이스라엘 12부족 동맹의 기원) 이 중 장자는 르우벤이고 아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요셉이다. 그런데 복음서의 저자는 왜 유다와 형제라 했을까. 르우벤은 아비의 첩을 건드렸다가 장자의 권리를 박탈당했고 그 권리는 가장 출세한 요셉에게 넘어갔지만 혈통의 최종 적통인 예수가 유다 지파 소속이기 때문이다. ‘역사 칼럼이 성경 공부로 바뀌었나?’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다.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봤다. 이집트인이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한 이유 그리고 모세가 민족을 이끌고 탈출한 사연이다. 놀라운 해석이었다. 성경 얘기 조금 더 하자.야곱은 늘그막에 낳은 요셉을 애지중지했다. 색동옷까지 입혀가며 아꼈는데 이게 형들의 시기와 질투를 산다. 게다가 요셉은 미움 받을 짓을 하는 데 도사였다. 요셉의 가장 큰 특기가 꿈 해몽이다. 그런데 이게 들을수록 짜증나는 내용들이다. 모두가 들에 나가 곡식을 묶고 있는데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 절을 했다거나(형들 분노 게이지 상승), 해와 달과 별 11개가 자신에게 큰절을 했다거나(형들 분노 조절 한계점 돌파)하는 식이다. 격분한 형들은 재수 없는 요셉을 치워버리기로 한다. 이들은 이집트로 가는 상인에게 요셉을 팔았고 아비에게는 짐승이 잡아먹었다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요셉은 파라오의 눈에 들어 국무총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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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계·북방계 얼굴 뚜렷한 한국인, 단일민족 맞다
한국인은 유난히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집착한다. 단일민족은 한 국가의 국민이 단일한 민족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단일민족일까. 한국인의 얼굴은 남방계와 북방계의 특징이 또렷하다. 어떤 각도로 봐도 배우 장동건과 연예인 강호동이 같은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난처하다. 현대에 들어와 생긴 현상이 아니다. 조선시대 오성 이항복의 초상화를 보면 눈이 크고 입술은 두툼한 데다 얼굴에는 살점이 많다. 남방계다. 경술국치 때 자결한 매천 황현은 눈이 옆으로 쪽 찢어진 전형적인 북방계다. 그럼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닌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단일민족이 맞다. 헛갈리는 이유는 인종과 민족을 구분하지 않아서다. ‘인종’은 유전적이고 생물학적인 특징에 따른 분류다. 언어, 문화, 관습 등 사회적 특징에 따라 분류한 것이 ‘민족’이다.한 지역에서 꾸준히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인종적 특징이 있다. 다만 내내 정주민이었는지 아니면 이동한 끝에 그 땅에 정착했는지에 따라 사정은 달라진다. 가령 튀르키예 사람들은 외모가 제각각이다.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에 분포하던 튀르크(돌궐)인이 오랜 시간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란인, 아랍인 그리고 유럽인과 섞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연히 서로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언어, 관습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가 같기 때문인데 아무리 그렇다지만 이방인의 눈에 어색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스탄불 호텔 프런트데스크에서 업무를 보던 여성은 하얀 유럽인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튀르키예 친구는 가무잡잡한 아랍인이었다.튀르키예인만큼이나 색상(色相)적으로 알록달록한 민족이 이스라엘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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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광대한 영토 관리에 어려움…'한계수익' 바닥
로마가 아직 ‘꼬마’였을 때(기원전 700년 무렵) 주변에 강적이 둘 있었다. 하나는 머리 위 북쪽의 에트루리아, 다른 하나는 로마의 동쪽에 있던 산악 민족 삼니움이다. 에트루리아는 금속 세공과 무역을 재정의 기본 베이스로 건축과 조각이 발달한 문명국이었고, 로마는 목축과 농사로 먹고사는 촌이었다. 우리로 치면 서울 강남과 1960년대 농촌 정도의 차이랄까? 당연히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밥’이었다. 심지어 로마 왕정 244년 중 100여 년은 아예 에트루리아인이 왕으로 다스렸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에트루리아 강점기’쯤 되겠다. 리비우스의 <로마사> 142권 중 로마 왕정 시대가 겨우 한 권인 이유로 로마는 과거 이민족 왕조의 통치 기억이 짜증났을 것이다. 로마가 중학생 정도의 체력이 되었을 때 에트루리아가 지도에서 사라진다. 기원전 264년의 일로 에트루리아의 대표적 도시 벨즈나가 로마의 공격에 무너진 것이다. 그 사이 로마의 기량이 쑥쑥 자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에트루리아의 종말을 설명하기 어렵다. 군사적으로도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에트루리아 멸망의 이유는 이들이 중앙집권이 아닌 도시국가 연합 체제였기 때문이다. 12개 국가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로마는 이들을 하나씩 야금야금 분쇄해나간 것이다.고대에는 중앙집권 국가가 들어서는 것이 선진화였다. 거기에 더해 만약 이 국가의 왕위가 혈통에게 세습되면 초일류 국가. 우리 역사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이 의미 있고 중요한 이유도 그래서다. 외세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을 치고 영토를 까먹은 일을 탓하는 것은 요새 관점이다. 지난 호에 이어 유대인 얘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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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야곱이 천사와 싸워 얻은 이름
유대인은 참 대단한 민족이다.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민족이 무려 1800년이 지나 자기들이 살았던 곳에 다시 국가를 세웠다. 여기서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1910년의 우리와 같은 국권 침탈 아니라 아예 영토를 잃은 실지(失地)를 말한다. 국가의 3대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거할 곳’을 상실한 것이다. 서기 132년 유대인의 마지막 반란이 일어난다. 지도자는 시몬 바르 코크바라고 불리는 사나이로 유대인에게 공식적으로 메시아 인증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상대는 로마제국. 3년여간 이를 악물고 싸웠지만 전투 기계나 다름없는 로마 군단을 상대로 민간인들이 거둘 수 있는 성과는 애초부터 없었다. 로마 군대는 1000개 이상의 마을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았으며 60만 명을 학살했다. 그렇게 짓밟아놓고도 로마는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유대인에게 더 이상 자비는 없다는 것을 공언했고, 진압 작전을 말살 작전으로 전환해 아예 끝을 봤다. 예루살렘을 아엘리아 카파톨리아라고 개명했으며, 민족의 이름은 유대인이 아닌 ‘시리아 - 팔레스타인’으로 바꾸었다. 유대인이 그토록 싫어하는 팔레스타인을 이름표로 붙여준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로마는 유대인의 예루살렘 거주를 금지했다. 다 나가고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다. 로마가 상대방 혹은 피지배 민족에게 이토록 가혹했던 것은 카르타고와 벌인 페니키아 전쟁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카르타고를 박살내면서 로마는 그 땅에서 식물의 생장이 불가능하도록 밭에 소금까지 뿌렸다.유대인의 역사는 중동 역사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외국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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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역사엔 반드시 호전적 인물이 있었다
인간은 왜 전쟁할까.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인간이 전쟁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별 이득도 없는데 그 일을 반복해서 한다면 그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꽤 괜찮은 전쟁 서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도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전쟁이 그다지 싫지 않은 젊은이들.” 체험은 없고 기억은 영광에만 집중된, 전쟁 다음 세대가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는 고통과 어미들의 탄식이 잊힐 무렵 기꺼이 전쟁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분쟁의 역사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는 반드시 호전적인 인물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이들은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며 교묘한 선동으로 그가 바꾸려는 질서가 얼마나 이익인지를 ‘희망’이라는 단어로 포장한다. 물론 이들은 옆집 김 씨나 회사 박 부장 같은 범인(凡人)이 아니다. 대부분 정치가와 군인이 직업인 이들은 인간을 지배하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야심가들이다. 그럼 남자만? 야심이 성별을 가려가며 깃들 리 없다. 원폭 실험을 강행한 인도 총리도, 중동전쟁에서 한때 원자폭탄 사용을 결정한 이스라엘 총리도, 포클랜드전쟁을 강행한 영국 총리도 모두 여자였다. 이 야심가들에게는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모두 ‘전쟁형 인간’이다. 그리고 이들이 벌인 전쟁은 전부 ‘개인적 의지’가 발휘된 결과였다. 이게 ‘그 책’이 설명하는 인간이 전쟁하는 이유다. 자, 그럼 실전 문제.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간단하다. 김일성의 의지다. 그의 개인적 의지가 3년 1개월 동안 한반도를 피비린내에 잠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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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에 쫓긴 흉노, 서쪽으로 가서 로마 몰락 불러
기원전 202년 중국 한나라가 건국한다. 야심 차게 나라를 세웠지만, 실력은 별로였다. 중앙만 황제가 통치하고 지방은 10여 개 제후국이 다스렸다. 중국을 통일했다는 표현이 맞나 싶다. 한족 왕조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은 북방의 유목 기마민족과의 우열 관계다. 당시 북쪽에는 흉노 제국이 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세계 최초의 유목 제국이다. 서쪽의 스키타이가 부족 연맹의 성격이 강했다면 흉노는 중앙집권체제였기 때문이다. 중원의 통일은 북방 민족에게는 좋은 일 반, 나쁜 일 반이다. 나쁜 것은 서역 무역 루트의 경쟁 세력 등장이요, 좋은 것은 창구 단일화다. 여럿으로 쪼개져 있으면 털어먹을 때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다 때려야 하지만, 하나로 모여 있으면 거래 비용이 절감된다. 해마다 겨울나기 용품을 털어가던 흉노는 한고조에게 체면 문제이기도 했다. 한고조는 흉노와의 전쟁을 선포하지만 자기까지 포로 직전 상황으로 몰리면서 스타일을 구긴다. 결국 흉노와 화친을 맺는데, 말이 화친이지 사실상 조공 관계였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기원전 141년 유철이 제7대 황제로 즉위하면서다. 무제라고 불리는 인물로, 우리와는 한사군의 설치로 별로 좋은 인연이 아니다.무제는 50년간 흉노와 전쟁을 치른 끝에 기어이 이들을 고비사막 북쪽으로 밀어낸다. 아무리 기마민족이라도 사막을 건너와 중원을 침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부터 흉노는 내부 분열을 반복하며 뿔뿔이 흩어진다. 흉노의 재림은 기원후 370년 무렵이다. 다뉴브강을 지키던 로마군 수비대는 새로운 형태의 야만족을 발견한다. 흉노의 일족으로 이들은 동유럽에서 약탈을 마치고 새 먹잇감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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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스타벅스 등…바이킹이 잉글랜드 접수하며 확산
영화 흥행을 점칠 수 있는 팁 하나. 개봉 전 주연배우나 감독이 홍보 차 세계를 돌면 제작진이 전망한 흥행 가능성이 밝지 않다는 증거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인데 ‘터질 영화’는 이런 구질구질한 마케팅 안 한다. 어차피 입소문으로 관객이 들 게 확실한데 뭐 하러 홍보비를 허투루 쓸까.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가 그랬다. 여든 살이 된 감독을 주요국 순방까지 시키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현재까지 스코어를 보면 제작비 회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잘 만든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퓨리오사>는 well-made 영화다. 다만 너무 지적(知的)인 게 흠인데 영화에는 성경, 그리스신화, 북유럽신화, 로마제국 이야기가 사방에 촘촘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건 먹물들이나 하는 얘기다. 관객들은 머리를 식히러 극장에 가지 머리를 쓰러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영화의 기저에 깔린 게 북유럽신화로, 키워드는 대사에 등장하는 ‘발할라’다. 그리스신화에만 익숙하다 보니 북구의 신이라면 오딘과 토르 정도만 알고 있지만 사실 북유럽신화는 대단히 방대하며 유럽만 놓고 보면 인지도 면에서 그리스신화를 압도한다. 수요일에 뷔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치자.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북유럽 바이킹에 기원한 문화 세 개를 소비한 셈이다. 추위를 피해 남하하던 바이킹 일족이 갈대가 무성한 개울을 보고 자기네들 말로 stor(갈대)+bek(개울)이라고 부른 것이 스타벅스의 어원이다. 뷔페는 바이킹의 식사 습관으로, 이들은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