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움직이는 건 누구일까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쓴 저자 정체 놓고
"천재적 개인" vs "보통 사람들 공동" 논란 여전
역사 바라보는 시각에도 관점 적용 가능
전통 시대엔 왕 귀족 등 '영웅사관'이 중심
근대 들어 민족·시스템 문제로 보는 시각 늘어
역사 발전 주체, 개인이냐 집단이냐 결론 못내
분명한 건 천재도 사회와 분리돼서 나올 순 없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쓴 저자 정체 놓고
"천재적 개인" vs "보통 사람들 공동" 논란 여전
역사 바라보는 시각에도 관점 적용 가능
전통 시대엔 왕 귀족 등 '영웅사관'이 중심
근대 들어 민족·시스템 문제로 보는 시각 늘어
역사 발전 주체, 개인이냐 집단이냐 결론 못내
분명한 건 천재도 사회와 분리돼서 나올 순 없어

이 두 작품의 저자는 일반적으로 ‘호메로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인으로 전해진다. 전설 속에서 키오스섬 출신이라고도 하고, 스미르나·콜로폰·살라미스·로도스·아르고스·아테네 같은 도시도 연고권을 주장하는 이 시인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이름부터 ‘보다’라는 뜻을 지닌 고대 그리스어 ‘호로스’와 부정을 뜻하는 ‘메’가 합쳐져 ‘눈먼 사람’을 뜻하는 호메로스로 불리는 게 심상치 않아 보인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호메로스라는 시인은 과연 실존 인물이었을까. 정말로 존재한 사람이라면 단 한 명일까, 아니면 여러 시인의 개별 작품을 호메로스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은 것일까.
이런 궁금증은 오래전부터 학문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어디까지가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전통의 산물인지, 어디부터 개인의 창작물인지에 대해서도 학자마다 의견이 갈렸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창작자가 같은 사람인지를 두고서도 서로 다른 견해가 쏟아졌다.
19세기 이래 고전학자들은 이런 논쟁점들을 두고 ‘호메로스 문제(Homerische Frage)’라고 불렀다. 학자들은 크게 ‘분석론자(analysts)’와 ‘단일론자(unitarians)’라는 2개 진영으로 나뉘었다.
분석론은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가 여러 세대에 걸쳐 구술로 전승된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꿰맞춘 작품이라고 본다. 그 근거로는 작품 곳곳에서 눈에 띄는 여러 가지 앞뒤가 안 맞는 모순과 불일치점들이 지목된다. 이미 죽은 인물이 다시 등장해 연설하거나 주요한 활동을 하는 모습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일리아스>에선 아가멤논이 아킬레스를 설득하려고 사절단을 보낼 때는 5명이었는데 막상 아킬레스를 설득하는 장면에선 2명밖에 없는 것 등이 여러 옛날이야기를 끼워 맞춘 증거로 본다.
이처럼 호메로스의 작품이 여러 독립된 개별 이야기를 묶은 것이라는 주장은 19세기 프리드리히 볼프가 구체화하고 20세기 초 빌라모비츠-묄렌도르프라는 학자가 집대성했다. 그에 따르면 <일리아스>의 각 권은 각각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이야기이며, 호메로스라는 시인이 실존했다면 그는 그저 ‘아킬레스의 분노’라는 포괄적인 주제로 각 작품을 엮어냈을 뿐이었다.
반면 단일론자들은 작품 전체의 통일성에 주목해 <일리아스>를 천재적인 한 개인의 창작물이라고 봤다. 최초의 단일론자는 아리스토텔레스로 그는 <시학>에서 “호메로스는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시에 넣으려고 하지 않고 한 부분을 취하고 그 밖의 많은 사건을 에피소드로 사용했다”고 평가했다. 괴테나 실러 같은 문학가들도 “호메로스는 한 사람”이라고 봤다.
근대 이전의 직관적 주장과 달리, 현대의 단일론자들은 작품 전체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꼼꼼하게 짜여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다루고 전체 플롯은 어떻게 짜였는지에 주목한다. 게다가 전체 24권으로 구성된 일리아스는 1권은 24권과, 2권은 23권과 에피소드가 쌍을 이루는 식으로 작품 전체가 완벽한 대칭 구조를 지녔다. 1권에서 폭발한 아킬레스의 분노는 24권 헥토르의 장례식을 통해 분노가 해소되는 식이다. 총 1만5693행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이 이처럼 철저한 대칭 구조를 취한 것은 어느 한 사람의 창작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단일론자들은 주장한다. 20세기 초반 볼프강 샤데발트 등이 주도한 단일론자들은 이처럼 작품의 세부 분석을 토대로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이 얼마나 촘촘하게 내재적 통일성을 지녔는지를 증명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가 천재적인 한 명인지, 아니면 여러 보통 사람의 산물인지를 따지는 노력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역사를 바꾼 주체가 천재적 개인인지, 아니면 수많은 범인의 집합인지는 역사학자를 괴롭힌 오래된 주제이기도 했다.
전통 시대에는 왕, 귀족이 역사의 주역이라는 ‘영웅 사관’이 주를 이었다. 19세기 독일에서 역사학이 근대적 학문으로 모습을 갖춘 이후부터는 역사 발전의 주체를 소수의 지배계층에서 민족이나 계급 같은 다수의 사람이나 경제·사회·문화적 영향 같은 구조의 문제로 바꿔 보는 시각이 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딱 부러지는 정답은 나오지 못했다. 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의지와 능력에 강조점을 두고, 마르크스주의 등 사회주의자들은 집단과 그들이 처한 구조가 중요하다고 본다.
요약하자면 호메로스가 천재적 개인인지, 아니면 집단지성의 산물인지 200년 넘도록 결론이 나지 못하는 것처럼 역사 발전의 주체가 개인인지, 집단인지를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결론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