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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역사에서 고전학파·케인스학파가 양대산맥
경제(經濟)라는 말은 세상을 다스리고 국민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유래했다. 영어 이코노미(economy) 역시 집안 살림하는 사람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oiko nomos’가 어원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경제학이지만 사실은 그 어느 학문보다 인간의 ‘먹고사는 문제’와 밀접한 학문임을 보여준다.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제학은 급격히 발전했다. 산업혁명은 고전학파를, 대공황은 케인스학파를 탄생시켰고 이후 신고전학파, 뉴케인지언, 신자유주의 등이 뒤를 이으며 각국의 경제정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학계에서 비주류로 평가받던 행동경제학의 대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올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데서도 알 수 있듯 경제학은 시대 변화에 맞춰 꾸준히 진화하는 중이다.산업혁명이 낳은 고전학파경제학의 계보를 정리하면 복잡하지만 ‘양대산맥’은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다. 두 학파를 알면 이후 등장한 변형 학파들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고대와 중세의 경제사상은 윤리학, 정치학, 신학에 속한 하나의 부속 영역에 가까웠다. 경제학이 독립된 학문체계로 기틀을 다진 건 산업혁명 즈음인 18세기 중엽이다.당시 사회적 관심사는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사회적 부(富)를 어떻게 배분하느냐였다. 영국 학자 애덤 스미스는 1776년 저서 《국부론》에서 흩어져 있던 각종 경제이론을 집대성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근로자에겐 임금, 지주에겐 지대, 자본가에겐 이윤으로 부의 배분이 이뤄지는데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 기능에 따라 배분될 때 가장 효율적이라고 봤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며, 국가는 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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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은 '현실적 인간'으로 경제학 영역 넓혔죠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바탕에는 주어진 정보를 이용해 언제나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이콘(econ·경제적 인간)’이 깔려 있다. 인간의 선택은 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가정 아래 논리를 전개한다. 반면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제한된 합리성과 제한된 시간 등의 영향으로 인간의 선택 및 결정이 심리 상태나 특정한 행동양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이론적 토대가 세워진 지 40년 안팎인 비주류 경제학이지만 신고전학파 주류 경제학을 보완하며 경제이론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에 방점행동경제학의 주창자는 허버트 사이먼이다. 미국의 사회과학자이자 경영학자, 심리학자인 그는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는 ‘제한된 합리성’이란 개념으로 선택의 원리 등을 설명한다. 인간의 모든 것이 합리적이라는 ‘최적화’보다 ‘만족화’의 원리를 중요시하는 ‘절차적 합리성’도 주장했다. 그는 또 의사결정에서 주류 경제학이 의미를 크게 두지 않은 감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인지심리학이 행동경제학의 주요 도구가 되고, 행동경제학이 기존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했다고 평가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사이먼은 이런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주류 경제학은 ‘기대효용이론’을 중시한다. 행동이나 선택의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제주체는 결과에 대한 효용기대치에 근거해 최적화된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합리와 이성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주류 경제학은 이런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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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경제학상, 행동경제학이 받았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주목 받고 있다. 특히 행동경제학 대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현대 경제학 이론은 크게 신고전파 경제학과 케인스 경제학으로 나뉜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되는 고전파 경제학을 계승한 학파로, 정부의 적극 개입을 주장한 케인스 경제학에 대응해 형성된 학파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합리적 인간’이 논리의 바탕에 깔려 있다. 시장을 자율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원리, 즉 가격의 기능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적절히 조화되고 경제도 안정적으로 성장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신고전파 경제학은 시장에 가급적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작은 정부’를 옹호한다.반면 진화경제학 행복경제학 생태경제학 등 비주류 경제학의 한 분야인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 측면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인간의 합리적 선택을 전제한 전통적 고전경제학과 달리 제한된 상황과 시간 안에 선택해야 하는 ‘현실 속 인간’을 전제로 경제원리를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의 선택에서 이성과 합리보다 상황과 심리적 요인으로 방점을 옮긴 셈이다. 노벨위원회가 “세일러 교수가 경제학과 심리학을 잇는 가교를 놓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행동경제학은 신고전파 경제학을 보완하며 경제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넛지(nudge)》 저자로 잘 알려진 세일러 교수는 넛지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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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중국의 '사드 보복', "한국은 동반자"라더니…
한·중 관계가 삐걱대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과 중국 관계가 수교 2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원인은 한국 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막무가내식 보복이다.중국의 압박은 점점 노골화되고 확산되고 있다. 중국인의 단체 한국 관광을 금지한 것도 모자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온갖 빌미를 붙여 영업을 규제하고 아예 영업 정지까지 시키고 있다. ‘보복성 압박’을 견디지 못한 롯데그룹은 중국 내 유통 사업을 접기로 했으며, 현대자동차도 중국과의 합작사가 경영난에 처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무차별적인 사드 보복으로 자동차·유통·화장품 업체 등의 실적은 크게 나빠졌다.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곡절을 겪었다. ‘가깝지만 멀었던’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수교를 계기로 급격히 가까워졌다. 수교 이후 양국 간 무역 규모는 33배, 한국의 대(對)중국 투자액은 25배나 급증했다. 또 양국은 2015년 자유무역협정(FTA)까지 맺어 교역의 장벽을 허물고 ‘경제적 동반자’가 됐다. 중국에서 ‘한류(韓流)’는 선풍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도 그동안 한국을 공식적으로 ‘전략적 동반자’라고 불렀다.이런 중국이 한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사드가 자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온갖 빌미를 붙여 한국을 전방위적으로 옥죄고 있다. 사드의 감시 영역에 자국 영토의 일부가 들어간다는 이유에서다. 정작 중국은 이미 한반도 전체를 포함하는 광역 레이더망을 가동하고 있으면서도 사드가 북한 방어용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중국은 미국과 함께 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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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 수교 25년만에 최대 위기 맞아
올해는 한·중 수교 25주년이 되는 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도 만 2년이 돼간다. 한국과 중국의 양국 관계는 1992년 수교를 계기로 빠르게 발전해왔다. 특히 2015년 12월20일 발표된 한·중 FTA는 양국 관계를 정치외교적 협력자에서 ‘경제적 동반자’로 끌어올렸다. 한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로 양국의 입장이 갈리면서 한·중 관계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영업정지 등 중국 측의 ‘사드 보복성’ 제재로 유통 사업을 접기로 했고, 중국에 합작사가 있거나 중국 내 판매 비중이 높은 자동차·화장품 업체 등도 사드발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이 한 나라의 주권에 관련된 사드 문제를 빌미로 FTA를 맺은 상대국을 노골적으로 옥죄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수교 25년 만에 교역규모 33배 늘어한·중 수교 이후 25년 동안 양국 간 무역규모는 33배나 급증했다. 수교 첫해인 1992년 63억7000만달러에 불과했던 한·중 교역액은 지난해 2113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북한 문제, 무역 갈등 등 여러 곡절이 있었음에도 교역액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기간 중국에 대한 한국의 투자액은 25배나 늘었다. 2016년 기준으로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자 수입국이고, 최대 교역대상국이다. 한국 역시 중국의 수입 1위, 수출 3위국이며 3위(홍콩 제외)의 교역상대국이다. 한·중 FTA가 상징하듯 두 나라가 ‘경제적 동반자’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수교를 맺은 첫해를 제외하고 해마다 흑자를 내고 있다.인적 교류 역시 비약적으로 늘었다. 1992년 13만 명에 불과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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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선 보복, 안에선 규제… 한국 기업들 이중고
한동안 중국은 많은 한국 기업에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거리가 가깝고 인건비가 저렴해 생산기지로 활용하기 좋은 데다 13억 명 인구가 떠받치는 거대 내수시장 그 자체도 매력적이었다. 한·중 수교 이후 25년 동안 국내 기업의 대중국 누적 투자액은 570억달러(약 64조원)에 달한다.하지만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수많은 한국 기업이 공들여 일군 중국 사업에서 결실을 맺기도 전에 쫓겨날 처지에 몰리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사드 배치 이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피해 규모가 올해 말까지 8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사드 보복’ 한국 기업 피해액 8조원 넘어피해를 본 업종이 한두 곳이 아니다. 국방부에 사드 배치 장소를 제공한 롯데는 중국 정부의 ‘집중 표적’이 됐다. 롯데마트는 중국에 진출해 112개 매장을 운영했지만 사드 보복으로 87곳의 영업이 중단됐다. 연말까지 매출 손실액만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자 최근 롯데는 중국 마트를 매각하기로 했다. 중국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둔 현대·기아자동차도 현지 판매량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또 중국 합작사인 베이징현대가 부품 납품단가 인하, 협력사 교체 등을 무리하게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도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쌍용자동차는 올 하반기 합작투자를 통해 현지 공장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합작법인 설립조차 못하고 있다. 중국 기업에서 1조원대 투자 유치를 추진하던 SK플래닛도 협상이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는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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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제 되살린 '아젠다 2010'이 주는 교훈
유명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99년 독일을 ‘유럽의 병자(病者)’라고 꼬집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만했던 독일이다. 10% 넘는 실업률에 수출 부진, 생산기지의 해외 이탈, 과도한 복지 부담, 통일비용 지출까지 겹쳐 경제와 재정이 점점 나빠졌다. 이랬던 독일이 요즘엔 ‘유럽의 우등생’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실업률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4%대로 낮아졌고, 경제성장률이 유럽연합(EU) 평균을 훌쩍 웃돌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부활의 비결은 독일 정부가 밀어붙인 고강도 구조개혁에 있다. 2003년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아젠다 2010’이라는 개혁안을 내놨다. 복지, 노동, 세제, 교육, 행정, 산업정책 등 다방면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개혁정책을 담았다. 그중에서도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는 대신 재취업 교육과 구직 지원을 강화해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를 뜯어고치는 이른바 ‘하르츠 개혁’이 핵심이었다. 중도 좌파 정당이었지만 독일병을 치유하기 위해 방만한 복지와 경직된 고용구조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이런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인 정치적 대가는 혹독했다. 슈뢰더 정권은 2년 뒤 총선에서 대패해 정권을 내주고 조기 퇴진했다. 하지만 총선 승리로 정권을 잡은 중도 우파인 기독교민주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 전 총리의 ‘아젠다 2010’을 원안대로 따랐다. 몇 년 뒤부터 개혁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 기업들의 경쟁력이 되살아나고 경제가 차츰 활기를 되찾았다. 초반에 반발하던 노동자들도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 고통 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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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동·복지·연금등 모두 개혁해 부활 성공
'아젠다 2010'이란 무엇인가독일의 ‘아젠다 2010’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가 2003년 발표한 국가개혁안이다. 과도한 복지비용을 줄이고 해고 조건을 완화하는 게 골자다. 통일 이후 고실업과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성장에 시달리며 이른바 ‘독일병’을 앓던 독일이 다시 회복하는 발판이 됐다. ‘아젠다 2010’은 복지·노동 외에도 산업정책이나 세제·교육·행정 등 광범위한 분야의 개혁 정책을 담고 있다.과도한 복지·고실업률로 ‘신음’현재의 독일은 유럽을 이끄는 대표적 국가다. 독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위기에 빠진 유럽 국가들의 지원에도 주도적으로 앞장섰다. 하지만 1990년 동서독 통일 직후의 독일 경제는 지금과 많아 달랐다. 독일은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장기 경기침체를 겪었다. 통일 후유증, 과도한 복지 비용, 경직된 노동시장 등 여러 요인이 어우러지면서 1990년대 내내 유럽연합(EU)의 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했다. 2003년의 경우 성장률이 1%를 밑돌고 실업률은 9.7%로 두 자릿수에 육박했다.독일식 사회보장체계에 따른 정부의 과도한 재정 부담, 통일 직후의 동서독 경제력 격차, 고실업, 신산업경제로의 전환 부진, 고율의 세금, 내수 부진 등이 이유로 꼽힌다. 1998년 사민당이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했으나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독일은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까지 듣게 된다.노동·세제·복지·연금 등 과감한 개혁누적된 복지 부담과 경직된 노동시장이 독일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