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56) 경영권 방어제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은 활과 창으로 싸웠던 조선군을 압도해버렸습니다. 전력의 비대칭으로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도망갈 정도였지만, 이를 만회한 것이 바로 조선 수군과 지원군인 명나라의 화포였습니다. 적절한 방어 수단이 없으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반대로 그 수단이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요. 기업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등의 방패
정부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만이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추진을 두고 논란이 많았습니다.(156) 경영권 방어제도
경영계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해외 행동주의 펀드 등이 소수의 지분으로 인수·합병(M&A)이나 투자 등의 경영 판단에 대해 주주 이익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경영권 공격에 나서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어 수단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적대적 M&A 등이 시작되면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값에 주식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 필’, 최대 주주나 경영진이 실제 보유한 지분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차등의결권’, 기존 경영진의 우호 세력을 끌어들이는 ‘백기사’, 기업의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절대적 거부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진 주식을 부여하는 ‘황금주’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황금주를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존 경영진은 자사주를 백기사에 팔아 우호 지분율을 늘리는 정도가 최선이지요.최소한의 방어 수단 필요해그렇다면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서 허용하는 제도를 왜 시행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요? 경영권 방어 수단이 대주주의 사익 추구로 이어질까 하는 우려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의 대주주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이를 보호하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경제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영권 방어 수단이 있다면, 자사주 매입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소모하는 비용을 생산적인 투자로 돌려 장기적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주주의 횡포나 사익 추구가 우려되면, 방어 수단의 발동 요건을 두어야지 제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지요. 경영권 보호장치가 있더라도 주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기존 경영진이 경영권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2022년 일론 머스크가 X(구 트위터)에 대해 적대적 M&A를 선언하자 X 이사회는 포이즌 필을 도입하기로 했지요. 하지만 머스크가 자금조달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기존 경영진에 불만이 많았던 주주들이 머스크를 지지하자 결국 X 이사회는 머스크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경영권 보호장치가 있더라도 주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시장의 외면을 받는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한국도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하고 시장에서 공정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