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자갸'는 표준어, '자기'의 높임말이죠
10월은 유난히 한글과 우리말 발전에 기념비적인 날이 많은 달이다. 우선 지난 9일이 제573돌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이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3년 뒤인 1446년 이를 반포했다. 그것을 기념하는 날이 지금의 한글날이다. 훈민정음 반포일이 음력으로 ‘9월 상한’이라는 기록(훈민정음해례본)을 토대로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 정해졌다.‘조선어 표준말 모음’으로 우리말 바로 세워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한 게 1933년 10월이다. 이는 일제의 식민 지배하에서 우리 고유의 글자인 한글을 지키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던 노력의 결실이었다. 통일안이 나옴으로써 비로소 ‘우리말을 한글로 어떻게 적을지’에 대한 합리적이고 일관된 기준이 갖춰졌다. ‘한글 맞춤법’의 기초 얼개도 이때 짜였다.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총칙 제1항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맞춤법 기본정신이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쓴다’는 원칙도 마련됐다.3년 뒤 1936년 10월 28일에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나왔다. 83년 전 오늘이다. 당시에는 우리말을 지키고 바루기 위해 표준어 사정작업이 절실했다. 예를 들면 하나의 대상을 두고 ‘하늘, 하눌, 하날’ 식으로 제가끔 쓰였다. 이를 ‘하늘’로 통일한 것이다. 그렇게 사정한 어휘 수가 9547개였다. 그중 6231개가 표준어로 채택됐고 3082개는 비표준어로 분류됐다. 나머지는 약어 134개, 한자어 100개였다.표준어 사정작업은 내용적으로 우리말사(史)에서 두 가지 의의를 지녔다. 하나는 같은 대상을 두고 여러 다른 표기가 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차일피일'은 '이날 저날'이란 뜻이에요
‘까랭이 나마리 발가숭이 안질뱅이 자마리 짬자리 초리 잠드래비….’ 모두 ‘잠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우리 땅에는 잠자리를 가리키는 말이 전국에 21개나 있었다.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맞서 우리말 표준을 세움으로써 민족어의 기틀을 마련할 필요가 절실했다. 1936년 조선어학회에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내놓은 것은 그 시작점이었다. 그때 지금의 잠자리가 표준어로 자리잡았다.‘호랑이’는 한자어, ‘범’은 순우리말범과 호랑이의 운명도 이때 갈렸다. 범이 표준어로 채택됐고 호랑이는 비표준어로 밀렸다. 비표준어로 분류되면 이후 말의 세력이 약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범과 호랑이 관계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사람들이 범보다 호랑이를 더 많이 썼다. 그 결과 1957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최초의 국어대사전 <조선말 큰사전>에서는 범과 호랑이를 함께 표준어로 올렸다. 물론 사전 풀이는 여전히 ‘범’이 주된 말이었다. 호랑이는 쓰임새에 차이를 둬 ‘범을 특히 사납고 무서운 뜻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지금은 오히려 호랑이를 압도적으로 많이 쓰고 범은 잘 안 쓰는 말이 됐다.범과 호랑이는 그 연원이 다른 말이다. 범은 순우리말이고 호랑이는 한자어다. ‘虎狼이(범 호+이리 랑+이)’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는 호랑이가 더 익숙해 오히려 호랑이가 순우리말, 범이 한자어인 줄 아는 사람이 꽤 있다. 오랜 시일이 지나면서 한자 의식은 희박해지고 거의 토박이말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됐다.“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란 말을 한다. 하도 가난해서 근근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글날'에 새겨보는 우리말의 소중함 (2)
한글날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선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처리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해례본은 무엇이고 상주본은 또 뭘까? 우리는 한글의 소중함을 말하지만 막상 한글이 어찌 만들어졌고 어떻게 후대에 전해졌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지난호에 이어 한글과 관련한 상식을 더 살펴보자.‘해례본’은 한자로, ‘언해본’은 한글로 풀어훈민정음을 얘기할 때 흔히 ‘언해본’ ‘해례본’ ‘안동본’ 같은 말을 한다. 우선 훈민정음이라 할 때 이 말은 두 가지를 가리킨다. 하나는 세종대왕이 1443년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한 우리말 표기체계(지금은 ‘한글’이라 부르는 자모 체계)를 뜻한다. 다른 하나는 이를 널리 알리고자 1446년 9월 발간한 책을 말한다. 책 이름이 <訓民正音>이다. 이 책은 무려 500여 년을 잠자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간송 전형필이 입수해 보관(간송미술관)해 오고 있다. 이를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하고 ‘훈민정음 안동본’이라고도 부른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이다.이 책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비로소 한글 창제 원리가 밝혀졌다. 말미에 1446년 9월 상순에 발간했다고 적혀 있어 이것을 토대로 지금의 한글날(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이 탄생하기도 했다. 해례본 원본을 최초로 해설한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에 따르면, 해례본은 크게 ‘정음(正音)’과 ‘정음해례(正音解例)’로 나뉜다. 흔히 ‘예의’와 ‘해례’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해례본은 세상에 단 하나만 전해져 왔었다. 그런데 2008년 경북 상주에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글날'에 새겨보는 우리말의 소중함
“제자들 중 한 명이 영국에 유학할 때 장학금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적이 있다. 내막을 알고 보니 한국에서 살던 집 주소가 문제가 됐다고 하더라. 아파트 이름에 ‘캐슬(castle)’이 들어가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이렇게 ‘넉넉한’ 집안의 학생에게까지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외솔회 회장을 지낸 최기호 전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한 어문 관련 세미나에서 소개한 사연이다.잘못 알려진 상식 많아우리말 실태와 국어정책의 방향에 대한 발언 중 나온 얘기다. 외래어가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은 아예 영문자가 우리 글자(한글)를 대체하는 일도 흔하다. 일상생활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책을 훼손하는 당신, 인격도 Out!’ 한 도서관 1층에 내걸린 현수막 구호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데까지 이미 파고들어와 있다.오는 9일은 573돌 맞는 한글날이다. 요즘은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인식과 자부심이 커졌지만 한편으론 잘못 알려진 상식도 꽤 있는 것 같다. 흔히들 ‘한글이 곧 우리말’인 줄로 알고 있는 게 그중 하나다. 우리말은 ‘우리나라 사람의 말’이다. ‘입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글은 그 말을 적기 위한 ‘우리 고유의 글자’를 말한다. 문자로 나타낸 말을 입말에 상대해 ‘글말’이라고 한다. 훈민정음 서문의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에 답이 있다. 우리말이 중국말과 다른데, 당시 글자는 한자뿐이 없어 우리말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새로 만든 글자가 훈민정음(지금의 한글)인 것이다. 간혹 순우리말에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의'나 '~부터' 함부로 쓰면 글이 어색해져요
집 근처 한 가게 앞에 내걸린 안내 문구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OO생협 매장의 오픈시간은 10시부터입니다.’ 우리말이긴 한데 우리말답지 않다. 어찌 보면 흔한 표현인 듯하지만, 우리말을 비틀어 써서 어색해졌다. 이런 이상한 말들을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명사구 남발하면 문장 흐름 어색해져이 말은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이 눈에 띈다. 우선 단어 사용이 어색하다. ‘오픈시간’이 ‘10시부터’라고 한다. 문 여는 시간이 10시면 10시지, 10시부터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심코 이 ‘부터’라는 조사를 남용한다. “오후 2시부터 학급회의가 열린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짜는 10일부터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OO회장에 취임했다.” 이런 데 쓰인 ‘부터’는 다 어색하다. 오후 2시에 학급회의가 열리는 것이고, 10일 학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회장에 취임한 것 역시 지난해 말이다. 여기에 ‘부터’가 붙을 이유가 없다.외래어 남발도 거슬린다. 가게를 연다고 할 때 ‘오픈’을 너무 많이 쓴다. 문을 여는 것도 오픈이고, 행사를 시작하는 것도 오픈이다. 가게를 새로 내는 것도 오픈이라고 한다. 하도 많이 쓰여 거의 우리말을 잡아먹을 정도다. 상황에 따라 ‘열다, 시작하다, 선보이다, 생기다, 차리다, 마련하다, 막을 올리다’ 등 섬세하고 다양하게 쓸 우리말 어휘가 얼마든지 있다.문장 구성상의 오류도 간과할 수 없다. ‘관형어+명사’ 구조의 함정에 빠졌다. ‘매장의 오픈시간’은 매우 어색한 구성이다. ‘오픈시간’을 주어로 잡아 그렇게 됐다. 가게가 주체이므로 ‘매장’을 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단속을 실시합니다'보다 '단속합니다'가 낫죠
‘세벌대기단, 굴도리집, 불발기, 오량가구….’ 이들은 겉모양만 우리말일 뿐, 일반인은 아무도 모르는 암호 같은 말일 뿐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 도중 거론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난해한 공공언어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이었다.공급자 중심의 말 여전히 많아극소수만 아는 전문용어가 공공언어로 포장돼 쓰이고 있는 현실은 우리말이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주위에서 마주치는 ‘정체불명의 우리말’은 수없이 많다. 몇 개만 살펴봐도 그 실태가 어떤지 금세 확인할 수 있다.‘육생비오톱, 차집관거, 볼라드….’ ‘육생(陸生)’은 뭍에서 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오톱’은 그리스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비오스(bios)와 땅을 의미하는 토포스(topos)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한 곳을 뜻한다. ‘생물서식지’라고 하면 좀 알아보기 쉽다. 하지만 이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 또는 ‘동식물이 살고 있어요’ 식으로 나타내는 게 더 친근감 있는 표현법이다.(성제훈 농업진흥청 농업연구관, 한글학회 간 <한글 새소식> 533호)‘차집관거’는 하수나 빗물을 모아 처리장으로 보내기 위해 만든 관(管)이나 통로다. ‘차집(遮集)’이 ‘막고 모으는 것’이고, ‘관거(管渠)’는 ‘관으로 된 물길’을 뜻한다. 평생 한 번 쓰지도 않을 용어로 말을 만든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996년 ‘관거(管渠)’를 관도랑이나 관수로로 쓰도록 다듬었다. 용도에 따라 ‘빗물관길’ ‘하수관길’ 식으로 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띄어쓰기가 중요한 이유
한때 수원~광명 고속도로상에 야릇한 이름의 표지판이 등장해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동시흥분기점’이 그것이다. “동시흥분기점까지 6㎞ 남았다네…. 근데 이 이상한 이름은 뭐지?” 2016년 개통한 이후 운전자들에게 ‘엉뚱한 상상력’을 자극하던 이 명칭은 2017년 말께 ‘동시흥 분기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띄어쓰기로 엉뚱한 상상력 유발을 차단한 것이다.‘열쇠 받는 곳’이라 하면 금세 알아예전에 ‘키불출장소’란 말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쓰인다. 이 말도 사연을 알고 나면 “아하! 그렇구나” 하겠지만 모르고서는 희한한 말일 뿐이다. “키불 출장소? 그런 데도 있나?” 사람들은 낯선 말을 받아들일 때 대개 자신에게 익숙한 단어 단위로 인식한다. 동시흥분기점은 ‘동시 흥분 기점’으로, 키불출장소는 ‘키불 출장소’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언어 인식체계가 그렇게 구조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소통’에 실패한 사례다.한편으론 우리말 육성과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띄어쓰기의 중요성이고, 다른 하나는 쉬운 말로 쓰기다. 우선 띄어쓰기를 하면 조금 나아진다. ‘동시흥 분기점’이라 하면 아쉬운 대로 의미 전달이 훨씬 잘 된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몸에 익어 알기 쉬운 순우리말로 풀어쓰는 것이다.분기점(分岐點)은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다. 영어 약자 ‘JC(junction)’를 다듬었다. 고속도로와 다른 고속도로를 연결해주는, 고속도로를 갈아타는 교차로를 말한다. 전에 ‘동시흥JC’라고 하던 것을 그나마 우리말로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세금을 거두다/걷다'는 둘 다 쓸 수 있어요
계절은 어느새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추수를 앞두고 들녘은 ‘가을걷이’ 준비가 한창이다. 이때의 ‘걷이’는 ‘걷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파생명사다. 또 ‘걷다’는 본말 ‘거두다’가 줄어든 말이다. ‘열매를 걷다’ ‘곡식을 걷다’ ‘추수를 걷다’ 등에 쓰인 ‘걷다’가 모두 ‘거두다’에서 온 말이다. 준말과 본말을 함께 쓸 수 있다.성공은 ‘거두는’ 것, 빨래는 ‘걷는’ 것‘거두다→걷다’는 우리말 준말이 만들어지는 여러 원칙 중 하나를 보여준다. 즉 어간에서 끝음절의 모음이 줄어들고 자음만 남는 경우 자음을 앞 음절의 받침으로 적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제저녁→엊저녁’처럼 남은 자음 ‘ㅈ’이 앞 음절의 받침으로 온다. 한글맞춤법 제32항 규정 중 하나다. ‘가지다→갖다’ ‘디디다→딛다’도 같은 방식으로 줄어들었다.다만 ‘거두다’는 의미용법이 워낙 많아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령 ‘열매를 거두다/걷다’를 비롯해 ‘세금을 거두다/걷다’는 ‘본말/준말’ 관계다. 두 가지 다 쓸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을 거두다’ ‘아이를 양자로 거두어 키웠다’ 같은 데 쓰인 ‘거두다’는 ‘걷다’로 줄지 않는다. ‘거두다’만 가능하다. ‘웃음을 거두고’ ‘의혹의 시선을 거두었다’에서도 ‘거두다’만 되고 ‘걷다’는 안 된다.반면 ‘소매를 걷고’ ‘커튼을 걷어라’ ‘비가 오려 해서 빨래를 걷었다’에서는 ‘걷다’만 되고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