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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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외래어 '욜로', 고유어 '욜로'
‘욜로’는 외래어다. Yolo, 즉 ‘You only live once’의 앞글자를 딴 용어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뜻의 말로,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을 말한다. 2013년께부터 한국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해 2017년을 전후해 우리 사회의 여러 소비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았다. ‘요리로’가 줄어 ‘욜로’로 바뀐 순우리말‘욜로’는 우리 고유어이기도 하다. “욜로 가면 지름길이 나온다”라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우리말에 있는 ‘글로, 졸로, 절로, 일로, 골로’ 같은 말도 낯설게 보일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욜로족’이니 ‘욜로 라이프’니 하는 외국말은 잘 알아도 우리 고유어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욜로’는 ‘요리로’의 준말이다. 마찬가지로 ‘그리로→글로, 조리로→졸로, 저리로→절로, 이리로→일로, 고리로→골로’로 줄어든다. 한글맞춤법 제33항에 나오는 용법이다.우리말은 체언과 조사가 결합할 때 말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무엇을’이 줄어 ‘뭣을’ 또는 ‘무얼’이 된다. 이 말은 다시 ‘뭘’까지로 준다. ‘그것은, 그것으로’가 줄면 ‘그건, 그걸로’가 되는 식이다. 말에도 ‘언어의 경제성’이 작용한 결과다. 준말이 효율성이 높아 구어에서는 자연스럽게 준말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이는 부사에 조사가 어울릴 때도 마찬가지다. ‘욜로, 글로,…’ 등의 준말이 성립하는 문법적 근거다. 글쓰기에선 본말 쓰는 게 의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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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익' 발음이 두 가지인 까닭
우리말 적기의 규범을 세운 것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면서부터다. 이어 1936년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마련돼 정서법의 골격이 갖춰졌다. 표준어와 함께 동전의 앞뒤라 할 수 있는 표준발음법은 그뒤로도 50여 년이 더 지난 1988년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발음의 기준을 세운다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원칙 [순니익], 현실발음 [수니익]…둘 다 허용서울의 지명에서 아주 멋들어진 이름 가운데 하나가 ‘학여울’이다. 이 말은 ‘학(鶴)’과 고유어 ‘여울’의 합성어다. 여울이란 강 같은 데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말한다. 탄천과 양재천이 만나는 한강 갈대밭 부근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곳에 1993년 서울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강남구 대치동)이 들어섰다.그런데 이 ‘학여울’의 발음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항녀울]이라 하는가 하면 훨씬 많은 이들은 [하겨울]이라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항녀울]이 맞는 발음이다. 실제로 역 구내에는 로마자로 ‘Hangnyeoul’이라 표기돼 있다. 만약 [하겨울]로 발음한다면 그 표기는 ‘Hagyeoul’이 됐을 것이다.‘학여울역’의 발음은 어떻게 [항녀울력]으로 됐을까? 우선 ‘학+여울’의 결합부터 보자. 발음할 때 ㄴ음이 첨가돼 [학녀울]로 바뀐다(표준발음법 29항). ‘막일, 늑막염, 내복약, 솜이불’ 같은 합성어를 소리 내 보면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일관되게 ㄴ음이 첨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항녀울]로 바뀌는데, 이는 자음동화(정확히는 비음화) 때문이다. 첨가된 ㄴ음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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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열'의 발음은 [바렬]? [발렬]?
반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는 우리 국어생활에도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그중에 ‘발열’은 발음과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이 말을 사람마다 [발녈] [발렬] [바렬] 식으로 들쭉날쭉 발음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만큼 수시로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이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솜이불’ 등 합성어에서 ‘ㄴ’음 첨가돼 발음이 말은 ‘발(發)+열(熱)’의 구조다. ‘열이 남(또는 열을 냄)’이란 뜻이다.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구의 구조였으나 우리말 체계 안에 들어오면서 하나의 단어로 굳은 말이다. 그 발음은 [바렬]이라고 해야 맞다. 받침이 밑으로 흘러내린다.‘발열’의 발음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말의 ‘ㄴ’ 첨가 현상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표준발음법(제29항)에서는 합성어 및 파생어에서 뒷말 모음에 ‘ㄴ’ 음을 첨가해 발음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간단히 살피면 “앞말에 받침이 있고, 뒷말이 ‘이, 야, 여, 요, 유’ 음으로 시작하면 ‘ㄴ’ 음이 덧난다”는 얘기다. ‘동-영상[동녕상], 솜-이불[솜니불], 막-일[망닐], 내복-약[내봉냑], 색-연필[생년필], 늑막-염[능망념], 영업-용[영엄뇽], 식용-유[시?뉴], 백분-율[백뿐뉼]’ 같은 게 그 예다.이런 규정은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에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발음을 좀 더 쉽고 편리하게 하고자 하는 ‘언어의 경제성’ 원리가 작용한 결과다. 요즘은 발음 교육이 부실한 탓인지 이들을 발음할 때 ‘ㄴ’ 음 첨가 없이 [동영상, 소미불, 마길, 내보갹, 새견필, 능마겸, 영어?, 시?유, 백뿌뉼] 식으로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받침을 흘러내려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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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극존칭 어투 '~께서와'
지난 호에 이어 북한말 가운데 특이한 어법을 좀 더 살펴보자. “김정은 동지께서와 문재인 대통령은 회담에 상정된 의제들에 대하여 견해 일치를 보시고 앞으로 수시로 만나….” 2018년 4월 2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남북한 정상 간의 ‘판문점선언’을 전문(全文)과 함께 그 의미를 상세하게 보도했다.체제적 특성이 우리말 용법에 영향 끼쳐주목할 부분은 ‘김정은 동지께서와 문재인 대통령은…’에서 드러나는 어색한 우리말 용법이다. 우리 관점에서는 비문이다. 북한의 유일 영도체제가 국어 어법에 영향을 끼친 모습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북에서는 모든 출판물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과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온다. 눈여겨볼 것은 이들을 나타낼 때는 언제나 극존칭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께서는~’ 하는 식이다. ‘와’는 대등한 낱말을 연결하는 조사다. 존칭 조사를 붙일 때는 ‘A와 B께서는’과 같이 뒷말에만 붙이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 어법이다. 그러나 북에서는 이른바 ‘최고 존엄’에 대해 항상 극존칭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처럼 부자연스러운 어투라도 써야만 한다. 체제적 특수성이 우리말 표현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볼 수 있다.북한의 언론이나 교과서 등 출판물을 분석해 보면 남한에 비해 전반적으로 문장 구성과 표현 기법이 뒤처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에서는 밀려드는 외래어와 자고 나면 튀어나오는 신조어로 계층 간, 세대 간 ‘소통’을 걱정해야 할 판이지만, 북에서는 폐쇄적 체제 특성으로 말글 발달에서도 지체 현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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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역스럽다'를 퇴출시켰나
남북한 관계가 극도로 얼어붙었다. 우리 관심은 정치적 배경보다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막말’들에 있다. 북한의 폐쇄적 사회주의 체제가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의 독특한 기사 형식인 <만평> 같은 것을 보면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주기 위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에 나온 ‘역스럽다’도 그런 대외용 표현 가운데 하나다.남에서는 ‘역겹다’를 훨씬 더 많이 써‘역스럽다’가 무슨 뜻인지 남한에서는 알 듯 말 듯할 것이다.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 북한에서 내놓은 담화문 제목인데, 문맥을 통해 보면 대충 짐작할 수도 있다. 우리는 ‘역겹다’라고 하는 말이다. ‘역겹다’는 한자말 ‘역(逆)’과 고유어 ‘겹다’가 결합한 합성어다. ‘역스럽다’는 접미사 ‘-스럽다’가 붙어 만들어진 파생어다. 두 말 다 한자어가 우리말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여러 방식 중 하나다.‘역스럽다’를 우리가 잘 모르는 까닭은 이 말을 남에서 버렸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은 그 배경을 “방언이었던 ‘역겹다’가 표준어였던 ‘역스럽다’보다 널리 쓰이므로 ‘역겹다’를 표준어로 삼고 ‘역스럽다’를 표준어에서 제외하였다”라고 설명한다.우리 표준어규정 제24항은 방언이었던 단어가 표준어로 인정받는 경우를 보여준다. “방언이던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표준어이던 단어가 안 쓰이게 된 것은, 방언이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했다. 이때 보통은 기존의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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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비트는 '서술어 3종 세트'
“코로나19로 인한 한국 경제의 충격이 ‘심화되고’ 있다.” “A씨는 이천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해’ 16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남구보건소에서는 희망자에게 코로나19 선별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기사에 투영된,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들이다. ‘심화되다’ ‘진행하다’ ‘실시하다’는 서술어로 흔히 쓰인다. 하지만 잘못 쓰면 어색할 때가 많다.‘심화/실시/진행하다’ 등 어색한 표현 많아글쓰기에 왕도는 따로 없다. ‘간결하게, 일상적 언어로 쉽게 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예문에서는 무거운 한자어를 가져다 썼다. 말할 때는 그리 하지 않는데 글로 쓸 때면 무의식적으로 나온다.우선 ‘심화하다(되다)’부터 보자. “반도체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 의존도가 심화된 탓이다.” “××의 ‘갑질’이 점점 심화되는 추세다.” 우리말답게 쓸 때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진다. 요령은 어울리는 본래 서술어를 찾아 쓰는 것이다. ‘심화’는 ‘정도가 깊어짐’이다. 그러니 반도체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깊어지는’ 것이다. 의존도 역시 ‘심화된’ 것이라기보다 ‘높아진(또는 커진)’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바꿔 ‘스마트폰 사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식으로 쓰면 글의 리듬이 살아나 더 좋다. 갑질도 ‘심화된다’고 하면 어색하고 ‘심해진다’(정도가 지나치다는 뜻)라고 하면 그만이다.‘진행하다’는 좀 특이한 단어다. “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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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안개'와 '짙은 안개'
정부 조직에는 국립국어원 외에 우리말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이 그곳이다. 여기서는 산업계에서 쓰이는 각종 용어를 다룬다. 이른바 ‘산업계의 표준어’인 산업표준(KS)을 정하는 곳이다. 지난해 이곳에서 그동안 써오던 색이름 몇 가지를 바꿨다.‘진하다’는 한자어…고유어로는 ‘짙다’이때 ‘진갈색’ ‘진보라’가 ‘밝은갈색’ ‘밝은보라’로 제시됐다. 색이름이 실제 색깔과 달라 문구류와 디자인업계, 교육계에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진갈색’이라고 하면 갈색보다 짙은 색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색칠을 해보면 오히려 ‘밝은 갈색’을 띠었다. 그래서 이를 실제 색깔에 맞게 밝은갈색, 밝은보라로 바로잡았다.고유어 같기도 하고 한자어 같기도 한 이 ‘진-’은 무엇일까? “국물이 참 진하네.” “안개가 진하게 끼었다.” 이런 말을 일상에서 흔히 쓴다. “진갈색, 진노랑, 진빨강” 같은 단어도 자주 듣는다. 이때 ‘진’은 얼핏 보면 토박이말 같다. 하지만 한자어다. ‘津’이 그 정체다. 이 한자는 통상 ‘나루 진’(서울시 노량진, 충남 당진 등에 쓰인 ‘진’이다)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는 ‘진액 진’, 즉 엑기스란 뜻이다. 진물, 송진 같은 데 쓰인 ‘진’이 모두 이 의미다.이런 데 쓰인 ‘진’은 의미상 순우리말로 ‘짙다’에 가깝다. 그러니 진갈색, 진보라는 곧 짙은 갈색, 짙은 보라다. 이를 그동안 밝은 갈색, 밝은 보라에 잘못 붙여 써온 것이다. 국물이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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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에 담긴 우리말 속살
코로나19는 우리말에도 이미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많은 외래어가 새로 유입됐고, 낯선 개념과 그에 따른 용어들도 어느새 우리 곁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 됐다. 그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말과 관련해 평소 간과해온 또는 잊혀가던 문제 몇 가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말의 핵심어인 ‘거리’를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점에서 그렇다.‘공간적 간격’과 ‘차 다니는 길’ 구별해야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잡혀가는 듯하던 지난 4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가 열렸다. “4월 말부터 5월 초 황금연휴가 예정돼 있습니다. 그동안 잘 지켜주신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정 총리는 이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거리’의 발음을 [거:리]라고 장음으로 했다. 그는 요즘 수시로 입에 오르내리는 이 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몇 안 되는 이 중의 하나다. 방송 아나운서를 포함해 한국인의 대부분이 ‘거리’의 장·단음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우선 ‘거리’의 정체부터 알아보자. 한 시간 거리니, 거리가 머니 가까우니 하는 말을 흔히 쓴다. 또 “그 친구와는 왠지 거리가 느껴진다”고도 한다. 이때의 ‘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거리’와 같은 말이다. 이는 공간적·심리적으로 떨어진 간격을 말한다. 이런 걸 누가 모를까? 그런데 이게 ‘비 내리는 명동 거리’라든지, ‘거리의 풍경’이라고 할 때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의 ‘거리’는 다른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