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텁다'의 전형적 용법은 신의, 믿음, 관계, 인정 따위가 굳고 깊다는 뜻으로 쓰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두텁다'는 이런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한정돼 쓰인다. 매우 제한적인 쓰임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정부 재난지원금도 이미 네 차례에 걸쳐 나왔다. 그 과정에서 나온 정부·여당의 “더 넓게, 더 두텁게”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단어 사용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발언 맥락은 이랬다. “받는 액수도 더 높여서 ‘더 넓게 더 두텁게’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부 언론 보도는 달랐다. ‘더 두텁게’를 ‘더 두껍게’로 바꿔 전달했다. 왜 그랬을까? 신의·우애 등 추상적 의미로만 쓰게 제한‘두텁다/두껍다’는 일상에서 늘 쓰는 말이라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쓰임새가 꽤 까다롭다. 우선 ‘더 두텁게’란 표현은 지원금을 어떻게 준다는 것인지, 뜻이 금세 와닿지 않는다. 아마도 지원하는 액수를 넉넉하게, 많이 준다는 의미로 말한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두껍게’를 대체할 수 있을까? ‘두텁게’ 지원하는 것도 모호한데, ‘두껍게’ 지원한다는 것은 아예 어색하기까지 하다.‘두텁다’의 전형적 용법은 신의, 믿음, 관계, 인정 따위가 굳고 깊다는 뜻으로 쓰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직원과 고객, 지역사회와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는 기업일수록 위기 회복력이 빠르고, 생산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얼마 전 ‘상공의 날’ 기념식 발언인데, 이때의 ‘두터운 신뢰’ 같은 게 대표적 사례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두텁다’는 이런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한정돼 쓰인다. 매우 제한적인 쓰임새다.
그러다 보니 언어 현실과 자주 충돌한다. ‘더 두텁게’가 ‘더 두껍게’로 바뀐 배경이기도 하다. 돈을 더 많이 주겠다는 뜻으로 ‘두텁게’보다는 ‘두껍게’가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두텁다’에 비해 ‘두껍다’를 더 폭넓게 쓸 수 있게 해놓았다. 가령 ①‘두꺼운 이불/~ 책/~ 입술’(물리적 두께를 측정할 수 있는 것. 이런 용법은 명확해 헷갈리지 않는다)을 비롯해, ②‘두꺼운 그늘/안개(또는 어둠)가 두껍게 깔렸다’, ③‘고객층/지지층이 두껍다’ 식으로도 쓸 수 있다. 현실에선 ‘두터운 선수층’ 등 폭넓게 사용하지만 ②에 대한 언중의 인식은 좀 다른 것 같다. 그보다는 ‘두터운 그늘/안개(또는 어둠)가 두텁게 깔렸다’라고 하는 게 현실어법에 가깝지 않을까? 사실은 이런 경우 ‘짙은 그늘/안개가 짙게 깔렸다’처럼 ‘짙다’를 쓰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익숙한 표현이다. 하지만 자칫 초점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 일단 ‘짙다’를 쓰는 문제는 논외로 치자.
용법③ 역시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보통 우리는 구체적·물리적 두께를 나타낼 때는 ‘두껍다’를, 우정 같은 추상적 의미에는 ‘두텁다’를 쓴다고 배워왔다. 고객층이나 지지층 따위는 물리적 두께를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추상적 개념이다. ‘고객층/지지층이 두껍다’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이에 비해 《고려대 한국어대사전》과 《연세한국어사전》은 ‘두텁다’ 풀이에 물리적 두께를 나타내는 쓰임새도 있다. 즉 ‘두터운 벽/~ 입술/~ 코트’ 식으로도 쓸 수 있게 했다. 고려대사전은 이 외에도 ‘선수층/지지층이 두텁다’ 같은 표현도 올렸다. 고려대사전과 연세사전이 ‘기술적(descriptive) 관점’에서 사전을 편찬한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현실어법을 좇아 풀이에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표준국어대사전의 ‘두텁다’와 ‘두껍다’ 풀이를 손봐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야 ‘코로나 피해자를 두텁게 지원한다’는 말을 무리하게 ‘~두껍게 지원한다’ 식으로 바꾸는 오류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