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産)'은 (지역이나 연도를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거기에서 또는 그때에 산출된 물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한국에서 만들어졌으니 한국산이고 2010년에 생산한 물품이면 '2010년산 OO'라고 하면 된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글쓰기가 사고의 바탕이 되기 위해서는 글을 논리적으로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게 글을 풀어가는 습관이 몸에 배야 한다. 합리적 사고와 논리적 글쓰기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합리적 사고는 과학적 글쓰기에 반영되고, 거꾸로 과학적 글쓰기를 하다 보면 생각도 합리성을 좇게 마련이다. 비논리적 표현 방치하면 우리말 퇴보해하지만 언어현실은 그런 이치를 방해하는 ‘잡음(noise)’으로 가득하다. 툭하면 쓰는 ‘수입산’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산(産)’은 (지역이나 연도를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거기에서 또는 그때에 산출된 물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한국에서 만들어졌으니 한국산이고, 미국에서 들어온 것이면 미국산이다. 2010년에 생산한 물품이면 ‘2010년산 OO’라고 하면 된다. ‘-산’은 그렇게 쓰는 말이다. ‘수입산’이 왜 안 되는 것인지 자명해진다. 하지만 현실은 ‘수입산 쇠고기’ 등 ‘수입산~’ 표현이 여전하다. ‘수입 쇠고기’라고 하면 그만이고, 더 구체적으로 쓰면 ‘OO산 쇠고기’다,

공급난이나 전세난, 자재난 같은 것은 말이 되지만 ‘실업난’은 또 뭘까? 심지어 ‘부족난’이란 말도 만들어 쓴다. ‘-난(難)’은 어려움 또는 모자람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취업이 어려우면 취업난이고, 구직이 잘 안 되면 구직난이다. 주택이 모자라서 주택난이라고 한다. 취업난이나 구직난을 겪다 보면 그 결과 실업이 늘어나는데, 그렇다고 이를 ‘실업난’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업’과 ‘-난’은 결합하지 않는다. ‘실업사태’ 등 문맥에 따라 적절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 자재가 부족하면 ‘자재난’이지 ‘자재 부족난’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심코 입에 올리기는 하지만 모두 설명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엉터리 조어인 셈이다.

말에도 이치가 있고 과학이 있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면 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비논리적 표현을 거르지 않고 방치하면 우리말 진화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다. ‘유명세를 타다’ 등 일상적 오류 너무 많아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비논리적 표현은 너무나 많다. ‘면접관’도 그중 하나다. ‘-관(官)’은 ‘공적인 직책을 맡은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경찰관이니 법무관, 사령관, 소방관 같은 데 쓴다.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민간 기업의 직책에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뜻이다. 민간회사의 사원 채용기사를 보면 ‘면접관’이란 말이 많이 보인다. 이는 단어 의미에 따른 용법을 무시한 것이다. 민간인에게 ‘면접관’이란 표현을 쓰면 어색하게 느껴야 하는데 언어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면접위원’이나 ‘면접원’ 등 다른 적절한 말이 있는데도 그렇다. 이런 오류는 언중이 많이 쓰는 게 곧 어법이란 설명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최근에는 이곳 야시장이 유명세를 타면서~.” “유명세를 떨쳐~.” “유명세를 누리고~.” 이런 말도 요상하긴 마찬가지다. ‘유명세’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니 서술어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유명세(有名稅)’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즉 ‘유명하기 때문에 치르는 불편’으로, 이를 세금(稅)에 빗대 만든 조어다. 이를 자칫 세력, 기세를 뜻하는 ‘세(勢)’쯤으로 짐작해 쓰는 데서 오는 오류다. 유명세는 타거나 떨치는 게 아니다. ‘유명세를 치르다’, ‘유명세를 내다’, ‘~하는 데 유명세가 따르다’라고 하는 게 적절한 쓰임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