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면제하다'라는 표현은 이상하다. 책임 또는 의무는 면제할 수 있어도 권리는 면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특허(지재권) 면제' 같은 말은 우리 어법상 이치에 맞지 않는, 성립하기 어려운 표현인 셈이다.
![사진=연합뉴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A.26443644.1.jpg)
우선 ‘권리를 면제하다’라는 표현은 이상하다. 직관적으로 볼 때 그렇다. ‘권리’와 ‘면제’를 결합시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면제’라는 말은 책임이나 의무 같은 것을 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세금 면제, 지하철 요금 면제 같은 데에 이 말을 쓴다. 그런데 권리란 통상 책임이나 의무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책임 또는 의무는 면제할 수 있어도 권리는 면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특허(지재권) 면제’ 같은 말은 우리 어법상 이치에 맞지 않는, 성립하기 어려운 표현인 셈이다.
외신을 통해 들어온 원어는 ‘waiver(웨이버: 권리 등의 포기)’다. 웨이버는 ‘권리와 의무’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개념을 함께 담고 있는 말이다. 용어의 주체를 누구로 삼느냐에 따라 어떤 말이 선택될지 결정되는 특징이 있다. 가령 권리자(특허권자 등 지재권자)를 주체로 보면 웨이버는 ‘권리포기’에 해당한다. 권리로 묶어놓은 것을 풀어 자유롭게 한다는 점에서 ‘해제’를 쓸 수도 있다. 이때 포기나 해제를 한시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맥락에 따라 ‘지재권 행사(또는 보호) 유예/유보’ 따위를 써도 뜻이 통한다. 고유어 ‘풀다’ 동사 쓰면 이해하기도 쉬워특허 또는 지식재산을 사용하는 쪽을 주체로 삼으면, ‘의무 면제’에 해당한다. 사안에 따라 책임이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면책’을 쓸 수도 있다. ‘책(責)’이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이때 ‘책’ 또는 ‘의무’는 핵심개념이라 생략할 수 없다. 그러니 ‘특허 면제’만으로는 말이 안 되고, ‘의무’를 반드시 함께 써야 한다. 즉 정확한 표현은 ‘특허 의무 면제’인 셈이다.
정리하면, 권리 뒤에는 ‘포기/유예/유보/해제’ 같은 말이 와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에 비해 ‘권리+면제’의 결합은 어색하다. 서로 의미자질이 어울리지 않아 비문인 셈이다.
특허권 면제든 포기든 또는 유예든, 독자가 가장 알기 쉬운 말은 동사 ‘풀다’를 써서 나타낸 표현이다. ‘미 백신특허 푼다.’ ‘지재권 풀면 코로나19 잡힐까?’ 이런 표현은 면제나 포기, 유예 같은 딱딱한 한자어를 쓴 것보다 친근하고 이해하기에도 쉽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A.26476104.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