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가 지난 2월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보조사'라는 자격을 얻어 표제어로 올랐다. 문장 안에서 '주로 발화 끝에 쓰여 청자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일을 한다.
“우리 뭐 먹을까?” “저는 냉면이요.” 식당에서 들을 만한 대화다. “기름은 얼마나 넣을까요?” “가득이요.” 주유소에선 이런 말이 오간다. 두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이요’(냉면이요/가득이요)는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규범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다. 현실언어에서는 활발히 쓰였지만, 공인된 어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책요?”로 쓰던 말…이젠 “책이요?”도 돼그러던 ‘-이요’가 지난 2월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보조사’라는 자격을 얻어 표제어로 올랐다. 문장 안에서 ‘주로 발화 끝에 쓰여 청자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일을 한다. 보조사란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따위에 붙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를 말한다. ‘-은/는/도/만/까지/마저/조차/부터’ 같은 게 보조사다. 이들은 문장 안에서 때론 주격으로도, 목적격으로도 쓰이는 등 특정한 역할에 머무르지 않아 격조사와 구별해 ‘보조사’라고 부른다.예전엔 그런 보조사 중 존칭보조사인 ‘-요’를 써서 “냉면요” “가득요”처럼 쓰던 말이었다. 이를 ‘-이요’로 하는 것은 비문법이었다. 지금은 두 가지 다 어법에 맞는 말이 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몇 층 가세요?”라고 물어올 때 “10층이요”라고 해도 되고 “10층요”라고 해도 된다. “민준이가 올해 몇 살이지? 여섯 살이요/여섯 살요.” “너는 전공이 뭐니? 국문학이요/국문학요.” 이제는 모두 가능하다.
이는 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서 규정한 방식과 비슷하다. 통일안에서는 <‘이요’는 접속형이나 종지형이나 전부 ‘이요’로 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가령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붓이요, 또 저것은 먹이요”처럼 썼다. 그러던 것을 현행 한글맞춤법에서는 그동안 ‘-이요’와 ‘-이오’를 구별해 적어 왔다. 즉, 연결형에 사용하는 어미는 ‘-이요’를, 종결형에 사용하는 어미는 ‘-이오’만을 쓰도록 해왔던 것이다.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붓이오”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붓이오’도, ‘~붓이요’도 모두 된다는 뜻이다. 언중이 많이 쓰는 말을 규범화한 게 문법이는 국민 대다수가 익숙하게 여기는 표기를 문법으로 수용한 사례다. 가령 “철수야, 식탁 위에 있는 책 좀 가져다 줄래?”라고 했을 때 전통적 규범 표기인 “이 책요?”라고 하면 오히려 낯설게 여겼다. 비규범이던 “이 책이요?”를 더 익숙하게 여겼다. 그래서 문법을 바꾼 것이다. 문법은 현실 언어에서 언중이 쓰는 말을 규범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중의 대다수가 쓰는 말이 곧 문법이 된다는 얘기다.
이제 존칭보조사로서 ‘-이요’가 정식 어법으로 허용됐으니 고민할 필요 없이 마음껏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아 있다. ‘-이요’ 역시 발화 환경에 따라 자연스러울 때와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부탁요”, “~하기를요”, “책임의식은요~” 같은 데서 특히 그렇다. 이런 문맥에서는 아무래도 ‘-요’를 붙이는 게 자연스럽다. 이에 비해 “채용요? 꿈도 못 꿔요” 같은 데서는 “채용이요? 꿈도 못 꿔요”라고 쓰고 싶어진다. “다음은요?” 이럴 때도 “다음은이요?”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요’가 다양한 발화 환경에서 두루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어찌 됐든 보조사 ‘-이요’는 이제 규범어라는 본선 무대에 올랐다. ‘-요’를 대체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서로 경쟁 관계에 놓인 셈이다. 이 말이 자리를 잡으려면 언중의 쓰임새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 언중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