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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습 길잡이 기타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당한다 - 사기

    『사기』 ‘제도혜왕세가’에 실려 있는 글로, “아! 도가(道家)의 말 중에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당한다.’는 말이 이것이구나!”의 일부예요.‘칼자루를 쥐다’라는 말이 있어요. 어떤 일에 실제적인 권한을 갖는다는 뜻이죠. 이 말은 싸움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려줄 때 써요. 내가 칼자루를 쥐었다면 내 뜻대로, 상대가 쥐었다면 상대의 뜻대로 판이 돌아갈 테니까요. 그런데 만약 내가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상대에게 칼자루를 빼앗겼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이제 기억해야 해요.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갈 때는 신중한 결정보다 빠른 결단이 나를 살릴 수도 있음을 말이에요.▶ 한마디 속 한자 - 斷 (단) 끊다, 결단하다, 나누다▷ 단호(斷乎) : 결심이나 태도, 입장 따위가 과단성 있고 엄격함.▷ 단기지계(斷機之戒) : 학문을 중도에서 그만두면 짜던 베의 날을 끊는 것처럼 아무 쓸모없음을 경계한 말. 맹자가 수학(修學) 도중에 집에 돌아오자, 그의 어머니가 짜던 베를 끊어 그를 훈계하였다는 데서 유래함.허시봉 < 송내고 교사 hmhyuk@hanmail.net >

  • 진학 길잡이 기타

    외고·국제고, 정원 감소로 경쟁률 상승할 듯…전국단위 자사고, 내신 '올A' 여야 1차 통과

    지난해 대부분의 전기모집 고교는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했다. 올해 역시 이런 경향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난해 입시 결과는 2016학년도 고교 입시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전기모집 고교 유형별로 전년도 지원 경향을 분석하면서 고교 입시를 전망해 보자.#영재학교 준비, 과학고 입시에 도움올해 영재학교는 총 8개교이다. 내년 개교하는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가 올해 학생을 선발하면서 1개교가 추가됐다. 지난해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가 학생을 선발한 것에 이어 두 번째 예술영재학교가 개원한 것이다. 기존 과학영재학교 6개교(경기과고, 광주과고, 대구과고, 대전과고, 서울과고, 한국과학영재학교)와 동일하게 영재교육진흥법을 근거로 설립됐지만 학교 명칭처럼 과학과 예술(인문학)이 융합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지난해 영재학교는 총 759명을 선발했다. 올해는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에서 83명 선발이 예상돼 842명을 선발할 것으로 보인다. 2015학년도 영재학교 지원자는 1만3368명으로 평균 경쟁률은 무려 17.6 대 1을 기록했다. 다른 고교 유형과 달리 여러 영재학교에 중복 지원이 가능하긴 했지만 높은 수치의 경쟁률이다. 영재학교는 4월 원서접수를 시작해 과고나 자사고 원서접수가 이뤄지는 2학기 이전에 합격자를 발표한다.과학영재학교에 불합격하더라도 그 준비과정은 과고나 자사고 서류 준비와 면접에 도움이 된다. 영재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3단계로 진행되는 서류평가-영재성검사/창의성평가-과학캠프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제외하곤 1단계 전형인 서류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는 인원은 소수

  • 경제 기타

    무령왕릉이 알려준 백제의 미

    퀴즈 하나 내보겠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수많은 왕릉 중 유일하게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왕릉은 무엇일까요. 계단식 피라미드형으로 유명한 고구려 장군총? 이것은 장수왕의 무덤인지 아닌지 논쟁이 여전합니다. 그렇다면 금관 출토로 잘 알려진 신라 황남대총? 이것도 내물왕인지 아닌지 추측만 존재합니다. 정답은 바로 공주에서 발견된 백제 무령왕릉입니다. 어떻게 무령왕의 무덤인지 정확하게 아느냐고요. 우선 무령왕릉의 발견은 우연의 산물입니다. 1971년 여름, 이미 공주 송산리 6호분으로 알려진 무덤의 배수로를 파던 중 한 인부의 삽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리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1400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온전한 모습 그대로 유지된 무령왕릉의 벽돌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신라 못지않은 금관을 비롯해 단 한 차례의 도굴도 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총 108종 2906점의 백제 유물이 있었습니다(그중 12점이 국보로 지정됐습니다). 6세기 찬란한 백제의 아름다움이 긴 잠에서 깨어난 순간이었죠.우연히 발견된 벽돌무덤 무령왕릉특히 왕의 시신을 모신 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기록이 새겨진 직사각형 돌판, 일명 ‘지석(誌石)’이 있었습니다. 여기엔 ‘백제 사마왕이 돌아가시고 이 문서를 작성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처음엔 낯선 이름의 ‘사마왕’이 누굴까 의아해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과 대조해보는 순간 곧 누군지 알게 됐습니다. 그는 바로 백제 25대 왕이자 웅진 시기 백제의 중흥을 이끈 무령왕이었죠.지난 시간에 봤듯이 백제는 5세기 장수왕의 파상 공격으로 한강 유역을 뺏기고 웅진으

  • 학습 길잡이 기타

    하나고 조계성 쌤의 재미난 수학세계-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하나고 조계성 쌤의 재미난 수학세계 - 수능에 매년 출제되는 ‘행렬의 성질’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영역에서 빠지지 않고 출제되는 유형 가운데 하나가 바로 ‘행렬의 성질’에 관한 문제이다. 매년 출제되기 때문에 출제위원들이 기출문제와 겹치지 않게 새로 문제를 만들다 보니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복잡하고 난도가 높아져도 행렬의 기본적인 성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이차 정사각형행렬 Α에 대해 Α-kΕ(k는 실수, Ε는 이차단위행렬)의 꼴로 표현되는 행렬의 성질을 간단히 알아보자.행렬에 관한 문제에는 역행렬의 존재성을 묻는 문제가 많다. 독자들도 잘 알고 있듯이 이차정사각형행렬의 역행렬 존재성은 다음 성질을 이용해 판별한다.수식 1을 행렬 Α의 행렬식이라고 한다면 다음이 성립한다.첫째 |Α|≠0이면 행렬 Α의 역행렬이 존재한다.둘째 |Α|=0이면 행렬 Α의 역행렬이 존재하지 않는다.이차정사각형행렬 Α와 단위행렬의 실수배의 합으로 표현되는 행렬 Α-kΕ는 실수 k의 값이 변함에 따라 역행렬이 존재성이 결정된다. 수식 2와 같이 Α-kΕ의 행력실 |Α-kΕ|=(a-k)(d-k)-bc=0일 때 Α-kΕ의 역행렬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런데 (a-k)(d-k)-bc=0을 만족하는 k는 이차방정식 k²-(a+d)k+(ad-bc)=0의 근이므로 많아야 2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정리하면 이차정사각행렬 Α에 대하여 Α-kΕ의 역행렬이 존재하지 않는 k는 최대 2개이다. 이 정리를 이용하면 다음 명제는 당연히 참이다.<명제> 행렬 Α, Α+Ε, Α-&Epsi

  • 학습 길잡이 기타

    30cm도 짧을 수가 있고, 3cm도 길 수가 있다 - 초사

    『초사』 ‘복거’편에 실려 있는 글로, “尺(척:30.3cm 정도)이라도 짧을 수 있고, 寸(촌:3.03cm)이라도 길 수 있다. 사물도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고, 지혜로움도 밝지 못한 경우가 있으며, <중략> 신령스러움도 통하지 않는 것이 있다.”의 일부예요.좋고 나쁨과 길고 짧음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코끼리 옆에 서면 나는 작고, 개미 옆에 서면 나는 커요. 그러니 자신을 한 가지 모습으로 단정 짓지 말아요. 누구랑 비교하고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나는 언제든지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한마디 속 한자 - 寸(촌) : 마디, 치(길이의 단위), 촌수, 마음, 적다▷ 촌극(寸劇) : 1. 아주 짧은 단편적인 연극. 2.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우발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일.▷ 촌철살인(寸鐵殺人) : 한 치의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으로, 간단한 말로도 남을 감동하게 하거나 남의 약점을 찌를 수 있음을 이르는 말.허시봉 < 송내고 교사 hmhyuk@hanmail.net >

  • 경제 기타

    한반도 남쪽으로 눈을 돌린 장수왕

    491년, 당시 중국 화북 지역을 차지한 국가는 선비족이 세운 북위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 북위의 왕 효문제는 흰 관을 쓰고 상복을 입은 후 한 인물의 죽음을 깊이 슬퍼합니다. 그 인물은 바로 고구려 제20대 왕이자 광개토태왕의 맏아들 장수왕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98세까지 장수하였으며, 재위 기간만 무려 78년이었어요. 단, 그는 단지 오래 살기만 한 왕은 아닙니다. 앞서 중국의 왕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보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동아시아 정세에서 아버지 광개토태왕 못지않게 고구려의 국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왕이기도 했지요. 사실 역사 속에서 아버지의 업적을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통치력을 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장수왕은 아버지와 또 다른 방식으로 고구려를 통치하며 최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 성공의 열쇠는 바로 ‘외교술’이었습니다.뛰어난 외교술로 고구려 최전성기를 누리다장수왕이 통치하던 5세기의 동아시아 정세는 앞선 시기와 사뭇 달랐습니다. 북방 유목 민족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한족 국가를 무너뜨리고 서로 왕이 되기 위해 싸우던 시기(16국 시대)가 이제 좀 정리가 됩니다. 황허강 중심의 화북 지역은 선비족인 북위가 있었으며, 양쯔강 이남에는 한족 국가가 있는 이른바 ‘남북조’의 대립 시기였습니다. 한마디로 국가의 존립 자체를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던 시기였지요. 이 긴장 속에 만약 동쪽에서 누군가 공격을 감행한다거나 다른 한쪽과 협공을 퍼붓는다면 곧 나머지 국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즉, 이 대립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고구려였습니다. 광개토태왕이 4세기 말

  • 경제 기타

    고구려,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다

    여러분에게 고구려는 어떤 국가인가요? 알에서 태어난 주몽,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당과 맞서 싸운 연개소문 등 강인하고 용맹한 영웅들이 이끈 고대 국가로 우선 기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구려가 처음부터 이렇게 강한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그 지정학적 위치도 애매해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나당연합군에 의해 결국 멸망(물론 내부 분열도 있었지만)한 것처럼 샌드위치마냥 여러 국가로 포위될 수도 있는 위치였습니다. 실제 3세기에 중국 위나라 관구검의 공격을 받아 고구려의 왕성이었던 환도성이 함락되었으며, 4세기에는 북쪽 선비족 일파가 세운 전연이라는 국가의 공격을 받아 미천왕의 무덤이 훼손되고 많은 이들이 포로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아래쪽에서는 같은 부여 계통이지만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오히려 맹공을 퍼붓던 백제에 의해 4세기 후반 고국원왕이 평양성에서 전사하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고구려는 양쪽으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공격에 그만 국가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졌지요. 당연히 옴짝달싹 못하고 제 한 몸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 위기의 시기를 역으로 기회로 보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고구려를 중국도 감히 쉽게 넘보지 못하는 동아시아 강국으로 만드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누굴까요? 바로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인 18살에 왕이 되어 21년 동안 고구려를 통치한 광개토태왕입니다.역발상으로 위기 돌파한 광개토태왕왜 세종대왕과 같은 ‘대왕’이 아니라 ‘태왕(太王)’ 즉 ‘왕중의 왕’이냐고요? 당연히 고구려인들 스스로 그렇게 불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중국에 남아 있는 광개토태왕릉

  • 경제 기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솟대 신앙

    우리는 언제부터 ‘대한(大韓)사람’이었을까요? 그것은 1897년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부터입니다. 고종 황제는 ‘한(韓)’이라는 이름이 바로 우리 고유한 나라 이름이며, 옛 마한, 진한, 변한 등의 삼한을 아우른 것이라 ‘큰 한’ 즉 ‘대한(大韓)’이라고 정했습니다. 아, 그렇다면 대한(大韓)이란 옛 삼한에서 유래한 것이군요. 삼한은 기원전 2세기부터 훗날 기원후 4세기 백제에 의해 마한이 무너지기까지 무려 500여년 동안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있었던 국가들입니다.단, 이 국가들을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강력한 왕권과 중앙집권 통치를 실시한 국가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마한은 54국, 진한은 12국, 변한은 12국 등 무려 78개의 여러 작은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놀랍지요?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여러 문헌을 찾으며 이 작은 국가들도 정말 ‘국가’에 해당하는 건지, 아니면 읍락과 같은 작은 규모의 마을을 말하는 건지 연구하고 있답니다. 그 결과 여러 소국은 신지, 읍차라는 군장들이 있었으며 마한 목지국의 지배자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삼한 전체를 대표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또한 이렇게 많은 국가들이 어떻게 연맹을 맺거나 아니면 경계를 이루고 살았는지 알 수 없어 여러 가지 자료를 찾고 있답니다. 그래서 최근엔 진한과 변한의 경계가 오늘날의 국경 개념과 달리 서로 섞여 살고 있었다고 추정합니다.고조선을 계승한 삼한그렇다면 삼한의 역사에서 가장 확실한 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들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것입니다. 고려 전기의 역사가 김부식은 『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