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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부터 앞세우는 사회는 자유마저도 잃는다"

    “자유(freedom)보다 평등(equality)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다양성과 역동성을 의미하는 자유는 오늘의 약자층이 내일의 특권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자유(freedom)보다 평등(equality)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 평등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힘이 자유를 파괴할 것이며, 당초의 목적과 상관없이 그 힘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중략) 자유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늘의 약자층이 내일의 특권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위에서 아래까지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1980년 펴낸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서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고, 정부 주도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정부개입주의는 잘못된 환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제약 없는 경제 활동 등을 포함하는 개인의 자유,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을 의미한다.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면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는 문구는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가 프리드먼 사후(死後)에 발간한 《자유에 관한 밀턴 프리드먼 선집(Milton Friedman on Freedom)》에도 실려 있다.‘정부 만능 시대’에 자유의 가치 강조프리드먼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1970년대까지 정부 역할을 강조하며 승승장구하던 케인스경제학에 맞서 줄기차게 시장경제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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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소한 조각으로 현대인의 고독 표현한 자코메티…스마트폰 중독은 소외감 달래려는 몸짓일 수도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자신의 예술, 특히 조각 작품들로 19세기 근대사회가 20세기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유럽 한 복판에서 세계 1,2차 대전을 경험하면서 유럽 지식인들이 주도한 다양한 철학적인 시도들을 조각 작품이라는 가시적인 물질에 담아 대담하면서도 선명하게 제시하였다. 그의 관심은 시간이 인간의 시선을 왜곡하는 환영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그는 1940년대 후반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실제 장소에서 재현하는 방법을 두 가지 사상을 통해 발견하였다.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자의식’, ‘타인’, ‘허무’와 같은 철학적인 담론을 현대인들의 우울, 소외, 고독으로 표현하였다.‘외로움’현대인들은 외롭다. 손안의 핸드폰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우리의 관심을 유발할 만한 뉴스로 우리의 눈과 귀를 엄습한다. 우리는 왼손으로 핸드폰을 잘 볼 수 있도록 눈 가까이 올리고, 오른 손가락으로 그 매력적인 뉴스에 탐닉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스크롤을 내린다. 그러면 우리는 한 순간에 그 화면 속으로 들어가 한 참 동안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러나 나는 외롭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나의 모습을 찾지 못할 때, 그리고 그것을 향해 지금 이 순간을 직시하고 장악하지 못할 때, 나는 외롭다. ‘외롭다’는 감정은 누군가의 존재를 갈망하지만, 그것이 나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생긴다. 핸드폰은 현대인의 빈 공간에 들어와 외로움을 달래주는 노예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안주인 노릇을 한다. 현대인들은 핸드폰의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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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원형 극장에 모인 2만명의 시민들…비극 작품을 보며 ‘숙고하는 인간’이 됐죠

    대부분 국가들에서 왕정이 유일한 정치제도로 당연하게 수용됐을 때, 고대 그리스의 몇몇 정치가들과 시인들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제도를 실험했다. 그들은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았다. 그들은 ‘공공교육’을 통해 자신이 지닌 자만과 욕심과 같이 아테네 공동체를 저해하는 해악들을 시민들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공동체 교육을 시작했다. 그 교육이 바로 ‘그리스 비극 공연’이다.‘정치적 동물’인류는 기원전 5000년께 ‘도시’라는 인위적인 공간에 살면서 자신의 생존력을 높였다. 그 안에 ‘개인의 삶’은 없었다. 개인은 날 때부터 자신의 신분이 정해져 있으며, 그 신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신분이 요구하는 노동을 수행할 뿐이었다. 고대 사회는 왕을 중심으로 그의 일가친척들로 구성된 극소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대다수 시민들은 이들의 땅을 빌려 경작하는 소작농들로, 자신들의 소출 대부분을 세금으로 귀족에게 바쳤다. 만일 할당된 수확량이나 세금을 상납하지 못하면 이들은 바로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다.고대 그리스 도시는 이주민들에 의해 서서히 형성된 도시들이다. 특히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레반트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많았다. 그리스는 전통적인 가족, 친족, 부족을 초월해 같은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그들은 유사시 외부의 적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평상시에는 서로 간 평화를 유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기본 단위를 ‘폴리스(polis)’ 즉 ‘도시’라고 불렀다. 아테네를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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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간섭주의는 시장경제와 양립하지 못한다"

    “정부 조치에 의해서건, 노동조합의 압력에 의해서건 최저임금이 간섭받지 않는 시장에서 정해지는 수준보다 높게 책정되는 순간 장시간 지속되는 대량 실업을 초래한다.”“산업화가 가능하게 된 것은 이전에 축적된 자본이나 기술적 지식 때문이 아니고 이 모두를 창조해내는 ‘경제적 자유’ 덕분이다.”오스트리아 학파의 거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는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꼽힌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 후배 경제학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그가 1952년 쓴 《자유를 위한 계획(Planning for Freedom)》은 자유시장경제 이론의 ‘바이블’로 통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획, 가격과 임금 통제 등과 같은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을 조목조목 비판했다.“계획과 자본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계획제도 하에서 생산은 정부 지시에 따라 이뤄진다. 소비자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킴으로써 이윤을 얻으려는 자본가와 기업가에 의한 게 아니다. (중략) 케인스 등은 자유사회를 위해서도 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간에 위치하는 제3의 제도를 제안한다. 프랑스인들이 간섭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제3의 길은 없다.”오스트리아 학파의 거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는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꼽힌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 후배 경제학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그가 1952년 쓴 《자유를 위한 계획(Planning for Freedom)》은 자유시장경제 이론의 ‘바이블’로 통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획, 가격과 임금 통제 등과 같은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을 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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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제목

    제목이 좋은 소설은 내용이 궁금하게 만든다. 인상 좋은 사람에게 끌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 자체로 독자의 이목을 끈다면 절반은 성공한 제목이며 다 읽고 나서 작품에 딱 맞다 싶으면 온전히 성공한 제목이다. 제목에 집중하며 소설을 읽어 보자.‘씬짜오, 씬짜오’(최은영, 2016년)의 화자인 ‘나’의 가족은 독일에 체류하던 시절 베트남 출신인 투이네 가족과 교류한다. 투이는 ‘나’와 같은 반 급우였고 투이의 아버지 호 아저씨는 아빠 회사의 동료였다. 두 가족은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함께 식사하고 교류한다. 어른들은 밤새 카드놀이를 하고 ‘나’는 투이와 만화책을 보거나 직소 퍼즐을 하며 애틋한 우정을 쌓는다.외부와 고립돼 육아에만 매달려 있던 엄마도 투이네 집에 초대받은 날에는 예쁘게 차려입고 행복해했고 사이가 냉랭했던 아빠와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두 가족은 어느 저녁 식탁에서 베트남 전쟁을 화제에 올린 일을 계기로 멀어진다. 호 아저씨는 베트남 전쟁 때 한국인이 저지른 학살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였고 ‘나’의 아버지는 그것은 전쟁 상황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맞섰다. 그 전쟁에서 가족이 몰살당한 투이의 엄마 응웬도, 참전한 형을 잃은 ‘나’의 아빠도 당시에는 어린 아이였을 뿐이다.이후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성인이 된 ‘나’는 몇 번이나 독일 출장을 가도 그 마을을 찾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엄마가 떠났을 때 엄마를 위해 울어준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이모들조차 어릴 때부터 우울했다거나 영리한 애는 아니었다는 식으로 엄마를 회상했다. ‘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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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장치들

    「서울, 1964년 겨울(1965, 김승옥)」을 읽어 보자. 1964년 어느 겨울 밤 ‘나’, 대학원생 안, 사내 이렇게 세 사람이 술을 마신다. 셋은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났다. 사내는 서적 외판원인데 오늘 아내가 죽었고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아서 돈이 생겼는데 아무래도 지금 그 돈을 다 써야 할 것 같다며 같이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셋은 술에 취해서 밤거리를 걷다가 소방차를 발견한다. 사내가 택시를 잡고 셋은 소방차를 따라가서 불구경을 한다. 사내는 아내가 불에 타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돈을 불 속에 던져 버린다.이후 셋은 여관에 투숙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어가자고 간절히 말했으나 안은 각자 다른 방에 들어가자고 주장한다. 이튿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었다. 사내의 자살을 짐작했던 안은 다른 사람들이 알기 전에 도망치자고 한다. 이유는 딱 하나. 혹시 생길지 모르는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안에 동의한 ‘나’가 급히 옷을 주워 입고 방을 나오려는데 개미 한 마리가 ‘나’의 발쪽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나’는 왜 개미가 발을 붙잡으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그것은 ‘나’가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단절된 인간상, 과도한 개인주의, 폐쇄적인 존재의 고독을 그려낸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인간적 체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개미는 작은 소재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제의 형상화에 기여하는 주요 장치다.이상문학상 수상작가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2007)」의 화자 ‘나’는 친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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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끝맺음에 대하여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대체로 작품의 주제 의식이 압축되어 있으며 이와 관련된 작가의 비전이 제시될 때가 많다. 그것은 직설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형태로 서술되어 울림을 주기도 한다. 마지막이 인상적인 작품을 읽어 보자.[“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설렁탕이 이다지도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기억될 줄은 김 첨지도 독자들도 몰랐을 것이다. 병든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 사 주지 못하던 인력거꾼 김 첨지는 평소보다 훨씬 많이 돈을 벌게 된 날 결국 아내를 잃는다. 「운수 좋은 날(1924, 현진건)」이라는 제목의 아이러니도, 최고의 행운 뒤에 최악의 불행이 따르는 삶의 상례도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다.[차도로 나왔으나 좌회전을 하지 못해 돌아가야 할 도시를 뒤로 하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에 유턴 지점이 있겠지, 유턴 지점을 열심히 찾는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그렇게 믿으며 상쾌한 속도를 냈다. 도시와 더불어 내 집 또한 뒤로 뒤로 멀어져가는 기분 또한 상쾌했다.]1993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박완서의 「꿈꾸는 인큐베이터」의 마지막 문장이다. 화자는 왜 집이 ‘뒤로 뒤로’ 멀어져가는 기분이 상쾌하다고 하는가. 화자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며 남편과의 사이가 원만하며 딸 둘과 아들이 있는,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여인이다. 그러나 둘째 딸과 아들 사이에는 딸이 있었고 그 딸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화자는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이유로 임신 중절 수술을 하였고, 수술을 강요한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원한에 가까운 감정을 품게 된다. 물론 그런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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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공간이란 무엇인가

    권태로운 경성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전개되는 무대이다. 이는 작품 속에서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어 보자. 구보는 정오 무렵 집을 나와 종로통을 걷다가 전차를 탄다. 전차에서 이전에 선본 여자를 발견하고 행복과 사랑과 고독에 대해 생각한다. 고독을 피하기 위해 약동하는 사람들을 찾아 경성역으로 가지만 그곳은 도시의 냉기로 가득 차 있다. 이후 다방에서 시인이자 신문기자인 친구를 만나서 생계를 위해 기사를 쓰는 고충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자신의 소설에 대한 비평을 듣다 권태감을 느끼기도 한다. 친구와 헤어진 후 거리를 거닐던 구보는 밤 깊은 시간 술집에서 다른 벗과 술을 마시다가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귀가한다.이 소설은 플롯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주인공은 이동하는 장소나 만나는 사람을 계기로 내적 상념을 분출하거나 과거를 회상한다. 소위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서술이 인과성과 필연성에 기초한 기존 소설의 서사 구조를 대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구보의 산책기인 동시에 당대 제1의 도시 경성의 기록도이기도 하다. 지식인들이 식민체제에 저항하여 관료가 되지 않고 실업자로 남기도 했던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그들의 산책은 즐거운 일상이 아니라 우울한 배회로 해석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구보가 헤매고 다니던 도시 경성이 아닐까 싶다.농촌과 근대화 공간수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있는데 농촌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없을 리 없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은 총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 관촌은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