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흑백사진 속 가녀린 소년의 모습에서 영감…100년전 미국의 따뜻한 삶을 풀어낸 이야기
예전에는 어느 집이나 할 것 없이 마루와 안방에 사진을 넣은 액자가 잔뜩 걸려 있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화해 앨범에 보관했다. 모든 게 편리해진 지금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바로바로 전송한 뒤 파일에 저장한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흑백사진 속 가녀린 소년의 모습에서 영감…100년전 미국의 따뜻한 삶을 풀어낸 이야기
100년 전에는 어땠을까. 그때는 미국에서조차 카메라가 진기한 물건이었다. 《그 소년은 열네 살이었다》에는 각 장마다 사진이 실려 있는데 이 사진들은 작가가 1900년대 초 사진작가였던 대고모 메리의 작품집과 뉴햄프셔 골동품 가게에서 구했다고 한다. 로이스 로리는 뭔가를 손에 들고 걸어오는 가녀린 소년의 흑백사진에서 강렬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로이스 로리는 입양, 정신질환, 암, 홀로코스트, 미래사회 등 다양한 주제로 30권 이상의 책을 발간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동문학상인 뉴 베리상을 두 차례 받았다. 《최고의 이야기꾼 구니 버드》 《우화 작가가 된 구니 버드》라는 동화로도 유명한데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작품을 쓰되 발전 가능성이 많은 청소년을 위해 글 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100년 전의 정겨운 풍경《그 소년은 열네 살이었다》는 아름답고 따뜻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아버지가 의사인 여덟 살 캐티와 이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열대여섯 살 정도의 페기가 큰 축을 이루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00여 년 전 미국의 일상을 잘 보여주는 이 소설은 당시를 그린 다른 소설들과 달리 흑인 노예 대신 가정부가 등장한다. ‘가정부들은 입 하나를 덜기 위해 대가족을 떠나오는데, 주로 가을걷이를 돕고 난 늦가을에 농장에서 왔다. 가정부들은 다락방에서 살며 빨래와 집안일을 하고 아기가 생긴 엄마들을 도왔다. 그들은 추운 방과 고된 일에 익숙했다. 집 안에 수도 시설이 있는 것은 가정부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책 속에 소개한다.

캐티의 집에는 페기 외에도 출퇴근하며 식사를 책임지는 나오미, 말을 돌보는 일꾼이 있었다. 변호사 비숍 씨의 집에는 페기의 언니 넬이 먼저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캐티의 친구 오스틴과 제시 같은 유복한 아이들과 가정부로 일하는 가난한 소녀들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이들을 빈부로 나누지 않는다. 캐티의 부모는 가정부들도 가족처럼 대하고 겨울에는 페기를 추운 2층이 아니라 1층에서 지내도록 배려한다.

캐티의 아빠는 어느 집이든 왕진을 가고, 험한 사고를 당한 환자도 헌신적으로 돌본다. 아빠는 의사가 되고 싶은 캐티를 병원과 왕진 현장에 데리고 다니며 전문지식을 알려주고 수술 흉터도 보여준다. 부유층과 빈민층을 이어주고, 어린 딸의 뜻을 존중하는 소설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훈훈해진다. 장애아를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들‘열네 살 그 소년’ 제이콥은 넬과 페기의 동생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몇 가지 의성어만 되풀이하는 제이콥은 캐티네 말 두 마리를 좋아해 자주 마굿간으로 놀러온다. 캐티는 자폐 성향을 보이는 제이콥을 무서워하거나 배척하기보다 친해지려고 노력해 좋은 친구가 된다. 장애를 안고 있는 제이콥을 놀리거나 해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소설 속에 100년 전 생활상도 세밀하게 그려진다. 캐티의 아빠는 왕진 갈 때마다 마차를 타고 가지만 일찌감치 카메라를 구입해 동네 사람들 사진을 찍어준 비숍 아저씨는 굉음을 내는 자동차를 몰고 온다. 마을에 등장한 첫 자동차는 포장이 안 된 도로를 달릴 때 엄청난 먼지를 일으켰다. 자동차를 타려면 고글과 먼지 방지용 더스터 코트를 입어야 했다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잔잔한 아름다움과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끝까지 계속 되는 건 아니다. 비숍 씨의 고등학생 아들 폴과 가정부 넬이 불장난을 저질러 대파란이 일어난다. 폴은 기숙학교로 쫓겨가고 넬은 집으로 돌아가 아기를 낳는다. 제이콥은 캐티의 동생 메리처럼 누나가 낳은 아기도 사랑받고 자라길 바라지만, 그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이 빚어진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할머니가 된 캐티가 증손자들이 나중에 읽기 바라며 어린 시절의 결정적 장면들을 기록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한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과 정이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