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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끝)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

    서정성 짙은 사실주의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어디선가 잔잔한 선율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짧은 얘기로 마음을 안온하게 감싸면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놀라운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자극적이면서 폭력적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알퐁스 도데의 소설이 더욱 가슴 깊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알퐁스 도데의 소설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것은 순수하고 낭만적인 분위기 뒤에 강력할 사실주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퐁스 도데는 1840년 남프랑스 님에서 태어났다. 리옹의 고등중학교에 들어갔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공부를 중단하고 중학교 조교사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열일곱 살에 파리로 가서 신문 기자로 일하며 문학에 전념하게 된다. 그 시절 도데는 당대 사실주의의 정점에 올랐던 귀스타브 플로베르, 에드몽 드 공쿠르, 에밀 졸라 등의 문인들과 우정을 나눴다. 다양한 경험과 사실주의 분위기 속에서 도데는 특유의 시적 서정성과 감수성을 곁들여 19세기 말 프랑스 소시민들의 삶을 날카롭게 그렸다.알퐁스 도데의 여러 단편소설 가운데서 ‘마지막 수업’과 ‘별’이 가장 유명하다. ‘별’은 한때 교과서에 수록됐는데 ‘국민단편’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작품이다. 국내 서점가에 나온 ‘별’의 판본이 70종이 넘는다고 하니 열기가 충분히 전달되는 듯하다.‘별’의 주인공 양치기는 몇 주일씩이나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개와 양떼와 함께 목장에서 외롭게 지낸다. 2주일마다 농장 머슴이나 늙은 아주머니가 보름치 양식을 실어다 줄 때가 가장 즐거운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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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인간의 욕망을 그린 비극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라면 셰익스피어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그의 가장 유명한 희곡 『햄릿』을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되려나. “숫자를 셀 수 없을 것이다”라고 단정하긴 힘들지 않을까. 문학청년이라면, 교양인이라면 셰익스피어 희곡 정도는 당연히 읽는 시절이 있었지만 종이책을 도외시하는 요즘은 그렇지가 못하다. 『햄릿』 대신 『라이언 킹』을, 『로미오와 줄리엣』 대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보고 환호하는 세상 아닌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한 작품이 많아 ‘셰익스피어 이후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작가가 태어난 영국이 아닌 미국과 캐나다, 호주에서 매년 여름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유는 뭘까. 1564년, 그러니까 453년 전에 태어난 작가의 작품이 지금도 뜨거운 환호를 받는 건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딜레마에 빠져 최고조의 갈등을 극화한 비상한 작품들은 독서 중에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절묘하고 재미있다.세계 최고의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는 37편의 희곡, 2편의 장시, 154편의 소네트를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인 4대 비극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를 비롯하여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등 유명한 작품이 셀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연 『햄릿』이다.네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연극 구경을 다닌 셰익스피어는 열한 살 때 입학한 그래머스쿨에서 다양한 학문을 익혔으며 특별히 『성서』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매료되었다. 햄릿이 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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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끝> 청년들이여, 기업가가 되라

    스마트폰, 컴퓨터, TV, 집, 자동차, 마트?.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것들의 곳곳에 기 업가 정신이 배어 있다. 혁신적 기업가일수록 우리 생활에 크고 많은 혜택을 줘왔다. 한국 경제의 성공은 기업가와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전자산업, 조선산업, 자동차산업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들은 대부분 기업가들이 일으키고 성공시켰다. 기업가들에 게 큰 역할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다른 수많은 독립국들과 확연히 다르다.파키스탄이 망한 이유대다수의 신흥 독립국들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 즉 국가기간 산업을 국영기업 방식으로 추진했다. 민간 기업이던 것들조차도 국유화시키는 일이 잦았다. 파키스탄은 눈에 띄는 사례다. 이 나라는 1950년대에 이미 미국의 GM, 포드와 합작으로 상당한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드럼통을 펴서 ‘시발자동차’를 만들던 수준이었다. 1971년 인도와의 전쟁이 끝나자 부토 총리는 대기업들에 대한 국유화를 선언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철강, 석유화학 등 10개의 중화학 분야가 국유화돼 갔다. 기업가 자리는 공무원들로 채워졌다.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 파키스탄의 모습이다. 국유화된 거의 모든 산업은 끝없이 추락해 갔다.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파키스탄 기업은 찾기 어렵다.한국의 성공 비결은 민간기업 육성반면 한국은 전혀 다른 길을 갔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중화학공업 투자를 선언하고 기업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조선산업은 정주영(현대)이라는 사업가에게 맡겼고, 전자산업은 이미 해오고 있던 이병철(삼성)과 금성사(지금의 LG) 구인회를 앞세웠다. 자동차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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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농업 기업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농업도 미래산업이 될 수 있다. 그러자면 위생적이고 맛있는 농산물을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좋은 일자리도 만들어내야 한다. 농민 기업가 김홍국은 쉽지 않은 그 일에 성공해서 하림그룹이라는 큰 기업을 일궜다. 닭 기르는 일 로 시작해서 연간 매출 6조원의 종합농식품 기업을 이뤄냈다. 미국 등 해외 진출은 물 론 최근에는 큰 해운회사를 인수해 국제 곡물거래 사업에도 진출했다. 협력농가들에 는 연수익 2억원에 육박하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초등학생 때 닭과 인연맺다김홍국의 농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가 선물해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우면서 시작됐다. 49년 전의 일이다. 홍국의 닭과 돼지 기르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18세가 되던 해에는 본격적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농장을 세워 황동농장이라 이름도 붙였다. 돈도 잘 벌어서, 고등학교 때 이미 ‘학생 사장’으로 불렸다고 한다.양계-양돈업자였던 홍국은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으면서 농식품기업가로 성장하게 된다. 1982년 홍국이 25세 되던 해 돼지고기 가격이 폭락했다. 사업을 확장한다며 겁 없이 가져다 쓴 빚이 문제를 일으켰다. 원리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쳤다. 홍국은 그들을 피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됐다. 돼지우리에까지 숨어들어갔지만 피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돼지 파동… 쓰러지다 …돼지우리를 나와 빚쟁이들을 찾아다녔다. 반드시 갚을 테니 기회를 달라고 읍소를 했다. 식품회사 영업사원을 해가며 빚을 갚아나갔다. 그러는 중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생고기값은 늘 오르내리기 마련이고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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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오 헨리 '마지막 잎새'

    유명한 작품이 즐비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가로수들이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올해는 추위가 일찍 찾아와 은행잎이 노란색으로 채 물들기 전에 낙하해 보도가 녹색으로 물들었다.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작가는 역시 《마지막 잎새》의 오 헨리다. 10년 남짓 활동하는 동안 300편 가까운 단편소설을 발표했는데 그의 소설은 너무 익숙해 때때로 민담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래서인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설교나 강연에 인용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오 헨리의 소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면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 수 있다. 폐렴에 걸린 존시는 창밖의 담쟁이덩굴의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다. 그런 친구가 너무나 안타까워 수는 아래층 베어만 영감에게 하소연을 했고, 실패한 화가 베어만 영감은 존시를 위해 벽에 마지막 잎새를 그린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를 보고 존시는 회복되지만 비를 맞고 그림을 그린 베어만 영감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크리스마스 선물》에 등장하는 부부의 사랑은 삭막한 세태에 늘 따뜻함을 안긴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가난한 부부, 서로에게 줄 선물을 준비한다. 델라는 긴 머리를 잘라서 판 돈으로 남편을 위해 심플하고 수수한 디자인의 백금 회중 시곗줄을 산다. 짐은 자신의 시계를 팔아 아내의 옆머리와 뒷머리에 꽂을 머리핀 세트를 구입했다. 오 헨리는 ‘이 두 사람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선물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모든 사람 가운데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현명하다’로 소설을 끝맺었다.두 소설만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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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제빵왕 허영인 이야기

    KBS TV가 2010년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다. 김탁구라는 소년 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빵 굽는 비법을 배워서 아버지의 제빵 사업을 이어받는다는 줄거리였다. 가족 간의 갈등도 흥미진진했지만 제빵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로워 큰 인 기를 누렸다. 극중의 김탁구는 파리바게뜨(SPC그룹)의 허영인 회장을 모티브로 했다. 그럴 정도로 허영인은 어릴 적부터 빵에 미쳐 살았다.‘제빵왕 김탁구’의 실제 모델지금은 세계적 제빵기업이 됐지만 출발은 미미했다. 부친인 허창성이 방산시장 근처에 상미당이라는 작은 빵집을 차린 것이 1945년이다. 허창성은 무연탄으로 빵 굽는 방법을 개발해 빵의 제조원가를 낮춰, 고급식품이던 빵을 서민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했다. 이런 노력은 삼립식품이라는 본격적 제빵기업으로 꽃을 피웠다. 그 후 삼립크림빵, 아이차, 삼립호빵 등 히트작을 잇따라 내면서 기업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허창성은 삼립식품의 대부분을 큰아들에게 상속했다. 둘째 아들인 허영인에게 돌아온 것은 성남의 작은 빵공장이었다. 1981년의 일이다. 사실 영인은 대학 다닐 때부터 아버지의 빵공장 일을 했기 때문에 작은 빵공장 하나만 받은 것이 무척 서운했다고 한다. 이 같은 가족 스토리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모티브를 제공한 셈이다.“공장빵 시대는 끝났다”하지만 영인은 서운함에 빠져 있지 않았다. 그 공장에서 나온 빵의 이름을 샤니로 붙이고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빵에 캐릭터를 결합해서 포켓몬스터빵 국찐이빵 같은 제품을 출시했다. 대히트였다.영인은 아버지가 열어 놓은 공장빵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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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금서에서 최고의 명작으로마크 트웨인(1835~1910)은 미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작가이다.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사람도 그의 작품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 핀의 모험』『왕자와 거지』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지만 한동안 금서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헤밍웨이와 윌리엄 포크너 같은 작가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움직일 수 없는 세계 명작이 되었다.소설을 읽기 전에 그 작가가 살았던 시대, 성장과정 등을 미리 알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크 트웨인이 살았던 시대의 미국은 청교도 정신이 파릇파릇하게 살아 움직이는 가운데 도덕과 윤리를 매우 중시했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노예제도가 폐지되지 않은 상황을 그리고 있다. 마크 트웨인의 작품 가운데 미시시피강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미시시피 강가로 이주하여 강과 함께 자랐기 때문이다. 미시시피강에서 수로 안내인으로 일한 마크 트웨인은 남북전쟁이 일어나 항로가 두절되자 26세 때 그 일을 그만두었다.『톰 소여의 모험』은 1876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1884년에 발표됐는데 두 작품을 연이어 읽으면 열네 살 난 톰 소여(톰)와 허클베리 핀(헉)의 모험 여행이 주는 기상천외한 유쾌함에 푹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장난이 심하긴 하지만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톰과 부랑아처럼 떠돌며 사는 헉은 아슬아슬한 모험을 하며 우정을 쌓는다. 우연한 기회에 살인자를 목격하고 그로 인해 둘은 각각 6000달러라는 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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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레이먼드 챈들러… '안녕 내사랑'

    51세에 첫 장편소설 발표하드보일드(hard-boiled) 탐정소설의 종결자. 레이먼드 챈들러를 수식하는 말이다. 하드보일드는 1930년을 전후하여 미국 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을 이르는 말이다. 불필요한 수식을 모두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글쓰기를 뜻한다. 하드보일드는 기자 수련 시절 습득한 ‘첫 문장은 최대한 짧게, 쓸데없는 수식어는 전부 삭제, 힘있는 영어로 쓰라’는 교훈을 소설 쓸 때도 활용한 헤밍웨이에서부터 시작됐다.‘레이먼드 챈들러, 대실 해미트, 로스 맥도널드’는 하드보일드 소설을 창조하여 완결한 3인방이다. 챈들러는 1888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1910년대에는 런던의 몇몇 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시와 수필을 썼다. 미국으로 건너와 많은 직업을 거친 끝에 석유회사의 부사장까지 올랐던 그는 48세 때부터 <펄프 매거진>에 범죄 단편들을 기고하면서 소설가가 되었다. 첫 장편소설 『빅 슬립』을 낼 때 그의 나이는 51세였고 1년 후 『안녕 내 사랑』을 발표했다. 그는 미완성작을 제외하고 모두 6편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남겼다.그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필립 말로는 소설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며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안녕 내 사랑』은 우리나라 독자들이 그의 소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 속의 말로는 다소 느긋한 성격의 정의감 넘치는 인물이다.사립 탐정인 필립 말로는 술집 앞에서 195㎝의 큰 키에 덩치까지 엄청난 무스 맬로이와 우연히 만난다. 감옥에서 나온 맬로이는 8년이나 못 본 ‘레이스 속옷처럼 귀여운 빨강 머리 벨마’를 찾아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