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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여성기업인들

    한국에서 여성이 기업가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성공은 고사하고 기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 그 자체가 금기처럼 여겨져 왔다. 옛날엔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하지 무슨 사업을 하느냐’며 남자들에게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었다. 대한민국 여성기업인 1호 인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성공도 그런 서러움을 극복해낸 후에 가능했다.한국에서 여성기업가란애경그룹은 1954년 채몽인이 세운 애경유지공업에서 출발했다. 비누 제조 기업이었다. 사업은 잘됐다. 1970년에는 울산에 석유화학 공장도 세웠다.생각지 못한 불행이 닥쳤다. 채몽인 사장이 갑자기 숨을 거둔 것이다. 막내 아들을 출산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기업주가 사라지자 애경유지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부인인 장영신은 남편의 회사가 망해가는 것을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남편의 주식을 상속받은 그는 1972년 7월1일 무작정 회사로 출근했고 8월 사장에 취임했다. 남편의 형제들이 말렸다. 회사 임원들도 여자 사장을 보려 하지 않았다. 여자 밑에서는 회사를 다닐 수 없다며 아예 사표를 던지고 나간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회계장부 공부부터 시작했다. 하나둘 직원들이 여자 사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1973년 7월 석유위기가 찾아왔다. 애경 계열사인 삼공화성도 생사의 기로에 섰다. 원료인 석유를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장영신 사장은 걸프사 한국법인 대표를 찾아가서 자기를 믿고 일본 미쓰비시가스에 원료 공급 요청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부탁이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그의 태도에 감동한 걸프사 대표는 장영신 사장의 청을 들어줬고 원료를 확보해서 생산을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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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트 등 신세계 이명희·홈플러스 이승한...복잡한 유통구조 개선해 생활혁명 일으켜"

    낙후된 유통구조 이명희, 구학서, 이승한은 한국형 유통혁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이명희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의 막내딸이다. 8남매 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들 했다. 신세계백화점을 상속받은 그는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으로 새롭게 성공시키고 싶었다. 3500억원이라는 상속세를 곧이곧대로 납부한 것이 그 첫걸음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찾다가 미국의 프라이스클럽 등을 모델 삼아 대형할인점을 시작했다. 1993년 11월 테스트 상점으로 서울 도봉구 창동에 이마트 1호점을 냈다. 월마트·까르푸에 도전하다 그다음은 믿을 만한 사람을 고르는 일이었다. “믿지 못하면 쓰지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사람을 쓰는 철학이었다. 1996년 이명희는 젊었을 때부터 눈여겨봐온 구학서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에게 거의 모든 것을 맡겼다. 정기적인 보고조차 받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 무렵 월마트, 까르푸 등 외국계 대형마트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후발주자로 살아남으려면 독특한 매력이 필요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창고형 매장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개별포장 제품을 늘리고 판매대의 높이를 낮췄다. 천장을 깔끔하게 단장해 백화점 느낌을 가미했다. 한국형 할인점은 이렇게 만들어져 갔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자국에서의 판매방식을 고집하던 월마트, 까르푸, 마크로 등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중 월마트는 2007년 12개 점포 모두를 이마트에 넘겼다. 외환위기는 이마트에는 도약의 기회였다. 다들 어떻게든 땅을 팔려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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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앙드레 지드…'좁은 문'

    평가가 상반된 작품한국 기독교 역사가 130년이 된 데다 성경에 기초한 서양문학이 우리와 친숙하기 때문인지 문학과 일상에서 기독교 용어 사용이 빈번해졌다. ‘좁은 문, 13일의 금요일, 새 술은 새 부대에, 솔로몬의 지혜, 선한 사마리아인, 에덴의 동쪽, 카인의 후예’ 등은 비유적으로 쓰이는 기독교 용어다. 누가복음 13장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앙드레 지드는 『좁은 문』을 썼고, 그의 대표작이 됐다.지드는 11세 때 아버지가 사망한 후부터 청교도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세 때부터 문학에 빠지면서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아 하이네를 탐독했고 그리스 신화와 성서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사촌 누나 마들렌은 그에게 예술혼을 유발시키는 평생의 동반자였다. 25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지드는 첫사랑인 마들렌과 결혼했다. 지드를 연상케 하는 『좁은 문』의 주인공 제롬이 외사촌 누나 알리사와 이뤄지지 않는 것과 반대다.『좁은 문』에 성경말씀이 계속 등장하는데, 알리사가 제롬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연유에는 ‘알리사식 성경 해석’이라는 걸림돌이 자리하고 있다. 성경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청교도 집안에서 갈등하며 자란 지드의 반감이 무신론적 사고로 변환돼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지드는 『좁은 문』을 18년에 걸쳐 구상하고 집필해 39세 때인 1908년 탈고했다.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으나 평가는 상반됐다. ‘내적인 삶에 대한 프랑스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소설 중 하나’ ‘새로운 전율과 마법이 가득한 책으로, 문체와 기법이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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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마키아벨리(상) 군주론

    1469년 5월 피렌체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인문주의 명사들의 영향을 받았다. 피렌체의 실제 통치 권력이던 메디치가가 추방되고 난 뒤 들어선 피렌체 공화정의 외교관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이후 다시 메디치 가가 복귀하면서 그는 반(反)메디치 인물로 낙인찍히고 공직에서 쫓겨났다. 마키아벨리가 현실 정치에서 추방 됐을 때 ‘군주론’이라는 불후의 고전이 탄생한다. 마키아벨리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 ‘군주론’을 집필하게 된 과 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메디치가에 저술을 바치다“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서재에 들어간다. 서재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하루 종일 입었던 진흙과 먼지가 묻은 옷을 벗고 궁정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렇게 적절히 단장한 후 옛 선조들의 궁정에 들어가면 그들이 나를 반긴다…나는 그들과 얘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그들의 행적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유를 캐묻는다. 그들은 친절하게 대답한다. 네 시간 동안 거의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며, 모든 근심과 가난의 두려움을 잊는다…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선조들에게 맡긴다. 단테는 우리가 읽은 것을 기록해놓지 않으면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성과를 기록해서 ‘군주국에 관하여’라는 소책자를 썼다.”피렌체를 위해 공직에서 일하기를 원하던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군주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군주론’을 저술해 바쳤지만 공직에 복귀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마키아벨리가 공직 생활에서 추방된 후 은둔 생활 동안 집필한 저작들을 통해 그는 정치철학자로서 불후의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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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나도향… '나도향 단편집'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나도향은 이상, 김유정과 함께 20대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천재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20년에 ‘청춘’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나도향은 1926년 폐결핵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단편 23편, 중편 1편, 장편 2편, 미정고 장편(유고) 1편을 남겼다. 19세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만큼 초기 소설에는 ‘주관적인 애상을 벗어나지 못해 감상적’이라는 평이 있었으나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 남긴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은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뿐만 아니라 영화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줘 몇 번이고 재해석되면서 사랑받고 있다.나도향은 가문 대대로 의업(醫業)을 이어오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의사 할아버지와 양의사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나도향도 경성의전에 진학했으나 소설과 시집을 밤새워 읽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의대를 그만두고 방랑하는 아들을 집안에서 도와줄 리 없어 나도향은 힘든 생활을 이어갔지만 ‘백조’ 동인에 참여해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했다.초기 작품인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와 명작 ‘벙어리 삼룡이’를 살펴보자. 소설은 그 시대의 풍속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역사서이며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1922년에 발표한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의 주인공은 열두 살 난 여자아이다. ‘벙어리 삼룡이’는 당연히 삼룡이가 주인공이지만 사건의 불씨를 제공하는 인물은 열일곱 살 난 새신랑이다. 1920년대의 10대는 작품에서 어떻게 그려질까.소학교 4학년인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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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전문경영인 손길승

    우리나라의 전문경영인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아마도 손길승일 것이다. 오너 가족이 아닌데도 1998년 SK그룹 회장이 됐 고, 2003년에는 전경련 회장으로도 선임됐다. 전경련은 대기업 오너, 즉 소유경영자들의 모임인데 전문경영자인 손길승을 회장으로 모 신 것이다.사업 파트너이자 동지1965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손길승은 중소기업인 선경직물(SK의 전신)에 입사했다. 대기업에도 충분히 갈 수 있던 그가 작은 방직공장을 선택한 것은 당시 부사장이던 최종현의 포부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최종현은 후일 SK를 세계적 기업으로 길러내는 창업 1세대 오너 기업가다(생글생글 5월22일자).손길승은 회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일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고 말할 정도였다. 심지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1971년 당시 선경그룹은 대연각호텔 건물(지금의 명동 입구 대연각타워)의 9~11층 건물을 임차해서 쓰고 있었다. 그해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호텔에 큰불이 났고 선경 사무실도 화염에 휩싸였다. 손길승은 선경직물의 경리과장이었다. 회사 서류들이 타버린다면 큰일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그는 불도 다 꺼지기 전에 사무실로 뛰어 올라가 금고와 서류들을 챙겨나왔다. 회사 일을 자기 목숨만큼 중히 여겼던 셈이다.최종현 회장은 그런 손길승을 사업 파트너이자 동지로 여겼다. 회사의 거의 모든 결정을 그와 상의해서 처리했다. 그렇게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일도 맡겼다. 섬유회사에 불과하던 선경이 자기보다 10배나 큰 공기업, 유공을 인수해서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고 세계 최초로 CDMA 방식 무선통신의 상용화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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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웅진그룹 윤석금

    외판 사원으로 출발해서 큰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가 있다. 윤석금 웅 진그룹 회장이다.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2012년 이후 사세가 많이 줄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30대 대기업 안에 들 었다. 1945년생인 윤석금은 26세 되던 1971년, 브리태니커라는 영국의 백과사전 판매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영어로 된 그 책을 팔아야 했다.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배고팠던 외판원 시절첫 고객 앞에서는 말도 한마디 못 꺼내고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단단히 마음먹고 고객을 설득해 나갔다. ‘독해지기’ 위해서 식사비도 없이 출장길에 나섰을 정도다. 배가 고파서라도 게으름을 부릴 수 없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용기가 자라났고, 요령도 생겼다. 9년 후 전 세계 54개국 브리태니커 영업사원 중 최고 판매 실적을 기록할 정도가 됐다. 판매왕이 된 것이다.승진도 했고 돈도 좀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다. 남의 나라 책이 아니라 한국어로 된 어린이용 도서를 만들어서 팔고 싶었다. 출판사를 만들자면 누군가로부터 투자를 받아야 했다. 어떻게 할까? 누구도 해보지 않은 방식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외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무작정 일본 도쿄에 내렸다. 호텔을 잡은 후 전화번호부를 뒤져 출판사들로 전화를 돌렸다. 내가 대한민국의 판매왕 윤석금인데 출판업을 하려고 하니 투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모든 상대방들이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 요청을 귀담아들은 출판사가 있었고 결국 투자를 받아냈다. 그렇게 해서 1983년 헤임인터내셔날이라는 출판사가 출범했다. 투자도 영업사원 방식으로 받아낸 셈이다.사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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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조지프 콘래드… '발전의 전초기지'

    16세 때 배를 타다세계적인 소설가 중에는 복잡한 삶의 배경이나 순탄치 않은 성장 과정을 거친 이들이 많다. 소설은 경험이 많이 반영되는 장르인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이 고달프면 그만큼 스토리가 생겨나니 한때의 고난이 언젠가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폴란드 태생 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니는 조지프 콘래드는 러시아 속국이던 폴란드에서 1857년에 태어났다. 반정부 운동에 가담한 부모의 전력 때문에 5세 때부터 부모를 따라 유배생활을 해야 했고 8세 때 어머니가, 11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아가 된 콘래드는 외삼촌의 보호 아래 자랐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실질적인 교육을 받기 어려웠다. 독립투사이자 문필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폴란드어로 교육받고 프랑스어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광범위한 독서를 하였으며 그중 항해와 탐험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다.16세에 학업을 중단한 콘래드는 선원이 되기 위해 프랑스 마르세유로 향했다. 프랑스에서 수습 선원으로 4년을 보낸 뒤 영국으로 건너가 23세와 27세에 각각 이등항해사와 일등항해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29세에 영국으로 귀화한 콘래드는 그해 11월에 일반 선장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누비며 선원생활을 하다가 37세에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으니 파란만장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영문학 작가로 평가받는 콘래드는 해양소설의 대가로 불린다. 대표작인 『로드 짐』은 동남아시아 항해 얘기를 담았고, 『노스트로모』는 1876년의 서인도 제도 항해를 바탕으로 했다. 해양소설 외에도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