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자유로부터의 도피》

“중세까지 사람들은 인생 중대사를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결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우리로 하여금 혼자 신 앞에 서게 했다.”

“인간은 자기 뜻대로 하는 자유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굴종을 택해
조직안에서 안주하려는 심리도 있다. 귄위주의는 자동순응형 인간을 만들어낸다.”
에리히 프롬
(1900~1980)

미국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사회심리 학자이다.
에리히 프롬 (1900~1980) 미국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사회심리 학자이다.
“우리는 독일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싸운 그들의 선조와 같은 열성으로 자유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밖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에리히 프롬(1900~1980)은 독일 출신 미국 심리학자다. 유대인인 그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간 뒤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썼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인간 심리를 분석한 것이다. “이성적이고 지성적이라고 자부하는 독일에서 어떻게 나치가 등장할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다.

왜 사람들은 수많은 투쟁을 통해 가까스로 얻은 자유를 포기하고 전체주의에 열광하는 걸까. 인간은 자유를 쟁취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걸까. 프롬은 근대 민주주의 체제가 사회의 여러 제약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켰다고 여기지만, 개인은 또 다른 권위에 예속됐다고 봤다.

“자유 얻었지만 고독과 불안 뒤따라”

[다시 읽는 명저] "인간은 굴종을 택해 조직 안에서 안주하려는 심리 있어"…능동적으로 자아를 실현시키는 적극적 자유 추구 강조
프롬은 20세기 이전의 인류사를 자유 쟁취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종교개혁으로 개인의 해방이 가속화했다는 데 주목했다. 프롬은 “중세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적 고민뿐 아니라 탄생, 결혼, 죽음 등 인생 중대사를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결했다”며 “하지만 종교개혁은 우리로 하여금 혼자 신 앞에 서게 했다”고 했다. 종교개혁과 봉건체제 해체로 사람들은 종교, 정치,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됐다. 프롬은 이를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라고 했다.

자본주의 발달도 ‘~로부터의 자유’를 촉진했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을 뿐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증대해 자아를 성장시키는 데 공헌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자유를 포기하고 도망하려는 걸까. 억압적 권위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권리와 개성을 발휘할 조건이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고독과 불안이라는 짐도 함께 지워졌기 때문이다. 프롬은 “개인은 교회 등 조직에서 느끼던 안정감을 잃으면서 고립됐고 무기력해졌다”며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마주하게 됐다”고 했다. 예전에는 왕이나 교회가 어떤 문제든 해석과 결정을 내려줬다. 이에 따라 개인이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책임지는 부담은 없었다. 그러나 자유와 함께 찾아온 부담감이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 메커니즘으로 파괴성, 자동인형적 순응, 권위주의 등을 꼽았다. 파괴성은 외부 세계와의 단절, 고립으로 인한 무력감을 공격으로 표출시켜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다. 외부 세계의 압도로부터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극단적인 도피 메커니즘이다.

프롬이 특히 주목한 것은 자동인형적 순응이다. 자유를 포기하고 절대적 권력에 자신의 자유를 의탁하면서 안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이 무력감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자아를 다른 권위에 종속시키는 행위다. 남으로부터 지배받고자 하는 도피 메커니즘이다. 개인은 자기 주위에 있는 자동순응성 인간형과 동일하다고 느낄 때라야 고독과 불안을 떨쳐내게 된다. 대세에 순응하는 것으로, 자아 상실을 뜻한다. 비판적인 사고가 마비되면서 사람들은 수동적인 삶 속에서 무력함과 불행의 구렁텅이로 내몰린다. 이런 도피 메커니즘이 나치를 탄생시킨 원인이었다는 게 프롬의 견해다. 프롬 이전까지는 나치 등장 원인을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정치·경제 혼란에서 찾는 게 일반적이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선 패전 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로 곤경에 처했고,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독일 국민이 히틀러라는 독재자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롬은 인간 본연에 전체주의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 안주하려는 노예 근성이 있다고 봤다. “인간이 자기 뜻대로 하는 자유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굴종을 택해 조직 속에서 안주하려는 심리도 동시에 있다. 권위주의는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에게는 복종하고 열등한 인간에게는 모멸과 멸시를 주는 체제이고, 이게 자동순응형 인간을 만들어낸다.”

“개인 독자성 우선의 적극적 자유 추구를”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불안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적극적인 자유로 향하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프롬에게 진정한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향한 적극적 자유, 즉 ‘~로의 자유(freedom to~)’다. “복종이나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아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적극적인 자유다. 이런 자유는 개인의 독자성을 충분히 긍정한다. 독자적인 개인의 자아보다 더 높은 힘은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이 그의 삶의 중심이고 목적이다.”

그러나 프롬은 적극적인 자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프롬 자신도 “이 책은 해결보다는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적극적인 자유를 향한 도전은 여전히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