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
“자발적 복종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권위에 복종해
그 상태를 편안함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상태다.”
“권력은 감옥뿐만 아니라 군대 학교 병원 공장 회사 등 모든 장소에서 ‘몸(인간)’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일련의 기법을 동원한다.”“자발적 복종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권위에 복종해
그 상태를 편안함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상태다.”
미셸 푸코(1926~1984)는 자크 데리다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다.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등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일련의 상대주의적 지적 풍토를 마뜩잖게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푸코에 대해서만큼은 예외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푸코 신드롬’이 몰아쳤고, 그의 이름은 현대 사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인용 빈도 최상위권 학자이기도 하다.
푸코는 ‘지식의 견고한 축적’이나 ‘이성의 점진적 진보’라는 전통적인 역사 이해 방식, 즉 역사주의를 거부한다. 대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권력’과 ‘권력의 폭력’에 천착했다. 그런 집요한 탐구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발적 복종’ 부르는 ‘판옵티콘’ 사회
1975년 출간된 푸코의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은 현대사회를 보는 기존과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권력과 그 권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 메커니즘 분석을 통해서다. 자발적 복종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권위에 복종해 그 상태를 편안함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상태”라는 게 푸코의 정의다.
푸코는 프랑스혁명을 전후로 감옥제도와 함께 시작된 형벌제도의 변화를 ‘권력의 경제학’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감옥은 단순한 범죄자 수용소가 아니라 권력이 사회를 통제하려는 전략 아래 창조된 ‘장치’라는 설명이다. 또 정교해진 형 집행기술이 사회 전반을 통제하는 국가 관리기술로 발전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판옵티콘(원형감옥) 감시사회’의 위험과 도래를 예견했다. 판옵티콘은 자발적 복종을 설명하기 위해 푸코가 제시한 장치다.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개념화한 것으로 ‘pan(모두)’과 ‘opticon(본다)’의 합성어다. 판옵티콘은 중앙에 감시탑을 두고 주위로 감방을 배열하는 형태의 감옥이다. 간수는 죄수들을 볼 수 있지만, 죄수는 높고 어두운 감시탑 안의 간수를 볼 수 없다. 굳이 폭력을 쓰지 않고도 감시당한다는 느낌, 내게는 상대가 안 보이지만 상대에게는 내가 보인다는 인식, 그런 것이 권력의 무서움이라고 푸코는 말한다. “죄수는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힘에 반항하기보다 어쩔 수 없이 기도를 올리고 복종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푸코는 또 권력은 “감옥 내의 여러 규율을 정하고 강제함으로써 신체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공격한다”고 진단했다. 물론 수감자는 이 같은 권력의 존재와 작용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비(非)가시성이 ‘현대 권력’이 원하는 것이며 ‘과거 왕권’과의 차이다.
18세기 이전까지는 사지를 찢어죽이는 등의 가혹한 신체형이 시행됐다. “잔혹한 방식은 왕이 신민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알리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는 게 푸코의 진단이다. 신체형이 성대한 의식처럼 집행된 이유다. 하지만 신체형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죄인들이 공감해 폭동을 일으키는 등의 부작용을 수반했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형벌이 감옥살이다. 감옥살이에 대해 푸코는 “정신 개조를 유도해 권력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나가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봤다.
그는 또 “감옥살이라는 ‘형벌의 인간화’는 계몽주의의 확산이라기보다 오히려 처벌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치”라고 했다. “몸을 구타하는 등의 물리적 가혹성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법과 규율을 어기면 반드시 처벌된다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증대시켰다”는 설명이다.
권력의 다양한 감시기법은 모세혈관처럼 뻗어나가 사회 전 영역을 관통한다. 푸코는 “감옥뿐만 아니라 군대, 학교, 병원, 공장, 회사 등 모든 장소에서 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일련의 기법을 동원한다”고 봤다. ‘길들여진 몸’을 만드는 여러 기법과 전술을 통틀어서 ‘규율’이라고 명명했다. 구성원들을 규율하는 사회, 나아가 그들의 정체성과 자화상 자체를 창출하는 장소가 바로 현대사회라는 게 푸코의 비장한 결론이다.
넘치는 감시·규율…자유는 확장됐나
이 같은 권력관계는 특정 사회 단위를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오리엔탈리즘’이 동양(orient)을 미신적이고 퇴영적이며 후진적인 이미지로 채우는 것도 서구 권력의 작용이다. 자연히 서양적인 것은 과학적이고 진보적이며 선진적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강자의 관점을 약자가 자발적으로 수용할 때 지배체제는 영속화된다.
《감시와 처벌》은 표준적인 역사 이해를 뒤집는다. 역사는 항상 진보해왔고 자유도 확장돼 왔다는 주류적 사고가 간과하는 은밀하고 새로운 종류의 억압과 통제에 주목한다. 근대화와 합리화의 과정을 더 입체적으로 볼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나아가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디지털 ‘장치’가 세계를 ‘거대한 감옥’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그 속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주체성을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백광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