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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79)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거장으로 떠오른 일본계 영국작가올해 노벨문학상은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미국 가수 밥 딜런에게 상을 안겨 충격을 주었던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이 유력시되었던 파울루 코엘류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손을 들어주었다.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미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작가는 1960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그는 1982년에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데뷔하여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했다.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낸 작품이다. 1989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상을 받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소설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또 한 번 화제가 된 바 있다.이시구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나를 보내지 마》는 타임지에서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미국 도서협회 알렉스상, 독일 코리네상 등을 받았다. 복제 인간의 사랑과 슬픈 운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다.감정의 힘을 담다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은 이시구로에게 2017년 노벨문학상을 안긴 스웨덴 한림원은 “감정의 거대한 힘이 담긴 소설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연결에서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감각 이면에 있는 심연을 드러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이시구로는 30여년 동안 장편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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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교보생명 신용호

    광화문의 교보문고는 그야말로 서울의 명소가 됐다. 앉고 서서 책을 읽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물론 책도 온갖 종류가 다 있다. 교보문고를 세운 사람은 보험회사인 교보생명의 창업자, 신용호 전 회장이다. 1980년 광화문에 교보빌딩을 신축한 뒤 건물 지하에 큰 책방을 넣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신용호 회장이다. 하지만 큰 반대에 부닥쳤다. 임원들부터 반대였다.베이징에서 곡물회사책방은 보험회사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교보는 교육보험의 약자다). 감독관청인 재무부도 보험사의 도서유통업 진출에 강력 반대했다. 본업과 관련 없는 업종이기 때문이었다. 신 회장은 서적 유통이 사회공헌 사업임을 내세워 설득에 성공했다. 신 회장은 교보문고가 ‘남녀노소, 부자, 가난한 자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 가 되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정작 신용호 자신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생인데 집안에 항일 민족 지사들이 많아서 일본인 학교를 다니기 어려웠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포기할 수 없었다. 17세부터 작정을 하고 3년간 매일 책을 읽으면서 독학을 했다고 한다. 19세가 되던 1936년 청년 신용호는 만주로 가서 대련중학교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집안 어른인 신갑범의 소개로 시인 이육사를 만나게 된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로 시작하는 그 시, <광야>를 쓴 시인 이육사 선생이다. 이육사는 그에게 민족자본을 만드는 일을 하라는 당부를 한다. 24세 되던 1941년, 돈을 벌기 위해 베이징으로 가서 북일공사라는 곡물회사를 세웠고, 거기서 번 돈으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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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윤윤수 회장과 ‘휠라 신화’

    오늘 소개할 기업가는 윤윤수 회장이다. 세계적 스포츠용품업체 휠 라의 경영자이자 대주주이다. 휠라는 1911년 이탈리아에서 휠라 형 제가 세운 기업으로서 세계 5대 스포츠브랜드 중 하나다. 윤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도 불린다. 대학을 졸업한 후 JC페니, 화승을 거 쳐 휠라코리아 대표로서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1994년에는 연봉이 무려 18억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샐러리맨의 신화가 됐다.혼자 남겨진 ‘흙수저’그러나 그의 출발은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였다. 1945년에 태어났는데, 100일 만에 친모가 세상을 떠났다. 가난하기까지 해서 아버지는 갓난쟁이 윤수를 안고 다니며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젖동냥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아버지마저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의사가 되겠다면 의대에 응시했지만 세 번 연속 낙방했다. 의사의 꿈을 접고 한국외국어대를 다니게 됐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정학까지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른 살에야 겨우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졸업 후 그는 미국 JC페니 백화점의 한국 구매사무소에 취직을 했다. 한국 상품을 구매해서 미국 본사에 보내는 일이었다. 여기서의 경험을 밑천으로 화승그룹으로 직장을 옮겨갔다. 르카프 신발을 만드는 그 기업이다. 수출부장 직책을 맡아 미국시장에서 신발을 팔러 다녔고 제법 실적도 좋았다. 수출에 자신감이 생겼다. 1984년, 당시 유행하던 ET 인형을 대량으로 제작해서 수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미국 내의 저작권 문제로 수출길이 막혀버렸다. 회사에 80만달러의 손해를 입히게 되었고 퇴사를 해야 했다.휠라코리아를 세계 1위 휠라로그 후 독자적으로 한국 상품을 들고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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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훌리오 코르타사르… '드러누운 밤'

    삶은 우연과 예외의 연속이다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건 책을 덮은 후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환상소설이라면 알 수 없는 세계로 날아가 생각의 끈을 길게 늘어뜨리며 재미있고 신비로운 상상에 빠지기 딱 좋은 장르이다. 낯선 이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훌리오 코르타사르는 전 세계를 통틀어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단편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모호한 내용 속에 현실과 비현실이 마구 섞여 있는 코르타사르의 소설을 갸웃거리며 읽다 보면 어느덧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1914년에 태어나 70세에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 출신인 코르타사르는 생전에 “환상문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재미”라고 잘라 말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회 현실에 대해 적극 발언하고 참여한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소설에서 의도나 메시지를 찾으려는 시도가 많다. 코르타사르가 ‘우리 삶이 논리와 법칙에만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성과 예외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해 환상소설을 썼다’고 하니 편하게 읽고 각자의 느낌대로 환상 속을 거닐면 될 터이다.코르타사르의 탄생 100주년이던 2014년에 15편의 중단편을 담은 「드러누운 밤」이 발간되었다. 수록 작품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모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가 명확하지 않아 독자가 상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허다하다.단편 「드러누운 밤」의 주인공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친다. 눈을 뜨면 병실인데 잠이 들면 아스테카 전사들을 피해 다니던 밤처럼 은근하고 복잡한 냄새가 흐르는 곳이다. 전쟁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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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네이버 이해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모바일앱은 아마도 카카오톡일 것 같다. 필자도 최소한 하루 한두 번은 들어가는 것 같다. 국내 가입자 수가 4300만 명(글로벌 포함 4900만 명)이니 5000만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가입돼있는 셈이다(2017년 6월 말 현재).통장을 털어 독립하다그런데 고개를 들어 세계 시장을 보면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네이버가 출시한 메신저 앱, 라인은 카카오를 훌쩍 뛰어넘는다. 누적 이용자 수가 10억 명을 넘었고 월 활성화 이용자 수는 2억1500만 명도 더 된다. 2016년 3월의 자료이니 지금은 더 많아졌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이용자가 많은데도 우리가 피부로 못 느끼는 것은 사용자들이 일본과 대만, 태국 등에 주로 분포하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모바일 메신저 앱으로 세계시장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카카오톡 김범수와의 인연네이버는 1999년 삼성SDS 직원이던 이해진이 세웠다. 다들 잘 알고 있듯이 그 출발은 PC 기반의 검색 엔진이었다. 그는 인터넷이 막 등장하던 시절 검색의 매력에 푹 빠져서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개발 결과를 바탕으로 사내 벤처 1호 기업을 만들고 이름을 ‘검색하는 사람, navigator’에서 따온 네이버(Naver)로 짓는다. 본인과 팀원들이 각자의 통장을 털어 3억5000만원을 만들었고, 삼성SDS로부터 1억5000만원을 투자 받아 자본금 5억원으로 독립 법인 네이버컴을 출범시켰다.사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다음, 야후, 라이코스 등 선발업체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트래픽을 늘려야 했다. 마침 친구이던 김범수의 한게임이 네티즌들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2000년 4월 이해진은 네이버를 한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해 NHN을 설립했다. 김범수 한게임 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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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조제 마우로 데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세계를 감동시킨 제제『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언제 읽어도 깊은 감동과 깨끗한 마음을 안겨주는 성장소설의 고전이다. 성장소설은 어린 주인공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아에 눈뜨고,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 화자의 영악하지만 순수한 행동을 통해 독자들도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면서 동질감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여섯 살이 채 안 된 제제, 우리나라 셈으로 따지면 일곱 살쯤 된 아이일 것이다. 1968년에 브라질 작가가 발표한 작품 속의 제제와 50년이 지난 지금의 어린이는 얼마나 다를까. 환경은 차이가 나지만 어른들이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발표 당시 브라질에서 유례없는 판매기록을 세웠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19개국 32개 언어로 번역돼 미국을 비롯, 유럽과 공산권에까지 소개됐으며 파리 소르본대에서 교재로 채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1978년에 소개돼 지금까지 30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 바스콘셀로스는 제제처럼 포르투갈계 아버지와 인디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이 너무 가난해 어린 시절을 친척집에서 보내야 했다. 작가의 유년시절 체험을 눈에 보일 듯 재미있고 진솔하게 그린 것이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도를 넘은 악동 기질로 주변 사람을 종종 위험에 빠뜨리는 제제는 반대로 너무도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 동생 루이스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단단한 제제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구두닦이로 나설 정도로 철이 바짝 든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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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미래에셋 박현주… 금융의 새 시대 열다

    ‘백할머니’를 만나다미래에셋을 세운 사람은 박현주다. 그는 1984년 내외증권연구소라는 초보적 형태의 투자자문사를 여는 것으로 금융업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다니던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주식투자를 직접해보기 위해 집에서 목돈으로 보내준 학비와 하숙비로 벌인 일이다. 이때 박현주의 멘토가 된 사람은 명동의 큰손 ‘백할머니’였다고 한다. 당시 대다수 주식투자자는 감이나 루머에 의존해 주식을 사고팔았는데 특이하게도 백할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유망한 회사의 주식을 사서 2년이고 3년이고 묵혀 뒀다가 주가가 오르면 팔아서 큰돈을 벌곤 했다. 요즈음 말하는 ‘가치투자’를 그 당시부터 하고 있었던 셈이다. 박현주는 백할머니에게서 가치투자를 배웠다.1986년에는 내외증권연구소의 문을 닫고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1988년엔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독특한 영업전략으로 약정실적 전국 1위를 달성했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직원이 모였고 ‘박현주 사단’이라는 이름까지 등장하게 됐다.증권사 거쳐 창업투자사 설립1997년에는 동원증권을 나와서 투자자문사인 미래에셋창업투자를 설립했다. 박현주 사단의 멤버 상당수가 창업에 동참했다. 창업 직후 외환위기가 닥쳤지만 미래에셋에는 오히려 기회였다. 채권에 200억원을 투자해 50억원을 남겼고 벤처기업 ‘다음’에 24억원을 투자한 것이 1000억원으로 커져서 돌아왔다. 가치투자가 빛을 발한 것이다.1998년 법이 개정돼 간접투자가 허용됐다. 즉 남의 돈을 맡아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박현주는 ‘박현주 1호’라는 한국 최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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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와 톰과 데이지의 무모한 선택《위대한 개츠비》는 대단한 타이틀을 많이 갖고 있다. 미국 뉴욕 랜덤하우스 출판사에서 ‘20세기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을 선정했을 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가 두 번째로 꼽혔다. ‘옵저버’ 선정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 ‘타임’ 선정 현대 100대 영문소설 등 명작을 선정할 때 《위대한 개츠비》는 가장 먼저 거론되는 작품이다. 그와 함께 F 스콧 피츠제럴드는 포크너,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 미국소설의 삼총사로, 세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위치를 굳혔다.《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일명 ‘재즈시대’로 불리던 시절이다. 당시 미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전쟁의 승리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다. 상류계층은 재산을 늘릴 최적의 기회를 맞아 도덕적 타락과 부패를 일삼으며 개인의 욕망을 채웠고, 비정상적인 팽창으로 1929년에 증권시장이 몰락하면서 미국 사회는 대공황을 맞게 된다.1920년대에 미국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전쟁의 참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청년들 가운데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껴 프랑스로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위대한 개츠비》는 ‘잃어버린 세대’로 지칭하는 젊은이들과 당시 사회상을 실감 나게 묘사하면서 최고의 작품으로 떠올랐다. 1896년에 태어난 피츠제럴드가 자신이 온몸으로 겪은 시대를 작품에 반영해 걸작을 탄생시킨 것이다.소설을 읽으면 제목을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라 ‘어리석은 개츠비’로 바꿔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역시 개츠비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