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일지 라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 그 건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는 데서 나온다.”

“성찰하지 않는 인간이 어떤 가공할 결과를 초래하는지, 서로 죽고 죽이는
폭력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아이히만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
(1906~1975)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이자 작가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전체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폭력의 세기》는 사회적 악과 폭력의 본질을 다룬 저서다.
한나 아렌트 (1906~1975)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이자 작가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전체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폭력의 세기》는 사회적 악과 폭력의 본질을 다룬 저서다.
“나치 독일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는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악마가 아니었다. 입신양명을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가 역사적인 범죄자가 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려 들지 않은 ‘생각의 무능력’ 때문이었다.”

1960년 5월11일 리하르트 클레멘트라는 이름의 남자가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붙잡혔다. 이스라엘로 압송된 그는 예루살렘 법정에 섰다. 그의 본명은 아돌프 아이히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이주와 학살 실무 책임을 맡은 독일 나치 친위대 간부였다.

독일 출신 유대인으로 나치 학대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이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갔다. 평소 “어떻게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끔찍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될 수 있었는가”라고 의문을 품어왔던 터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부터 사형 집행까지 1년여 동안을 취재해 ‘뉴요커’에 연재했고, 이를 묶어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간했다.

“아이히만의 죄는 ‘무(無)사유’”

[다시 읽는 명저] "타인의 입장과 자신 행위에 대한 생각 포기는 최악"…'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생각의 무능력' 비판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살육에 번득이는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가장이라는 데 놀랐다. “아이히만은 셰익스피어에 등장하는 맥베스 같은 악(惡)의 화신을 떠올리게 하는 사악함도 없었고, 유대인 혐오자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명령 복종을 의무로 여기고, 의무를 지키는 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아이히만의 정신 상태를 감정한 의사 6명도 “아이히만은 끔찍할 정도로 정상적”이라고 결론내렸다. 아이히만이 나치당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무직(無職)에 할 일이 없어서”였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악의 집행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끄집어냈다. 그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며 “그런 악한 행위는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데서 나온다”고 했다. ‘악의 평범성’을 떠받치는 것은 ‘생각의 무능력’이라는 지적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아주 부지런한 인간이었다. 타인의 입장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한 것이 결정적 결함”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의 무능은 이성과 보편적인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고, 말하기와 행동에서의 무능을 낳는다. 아이히만은 나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그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명령의 옳고 그름을 따져 옳지 않은 명령을 거부할 줄 아는 도덕적 능력이 없었기에, 지시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나는 괴물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고, 희생자”라고 했다. 또 “오직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죽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자리에 있었어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렌트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체주의 악령은 이런 무사유, 성찰 없는 맹목성에 기인한다. 아렌트는 “성찰하지 않는 인간이 어떤 가공할 결과를 초래하는지, 서로 죽고 죽이는 폭력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아이히만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권력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될 때 옳고 그름을 가리는 판단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런 상태에선 악을 악으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게 아렌트의 지적이다. 그는 “성실하고도 효율적으로 과업을 완수했던 아이히만은 국가가 원한 도구적 이성의 노예였고, 거기서 악은 정당성을 획득했다”고 했다.

아렌트는 나치의 ‘언어규칙’에도 주목했다. ‘언어규칙’이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사람들이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고안해낸 나치의 전략이었다. 가령 유대인 학살을 ‘최종해결책’이라고 포장했다. 유대인을 수용소에 감금해 죽음으로 몰아간 일을 ‘재정착’이라고 했고, 살인이라는 말 대신 ‘안락사 제공’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언어규칙’은 아이히만이 현실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게 아렌트의 분석이다.

“악행 멈추게 하는 것은 깊은 성찰뿐”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 이론은 유대인 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적지 않은 유대인은 아렌트가 학살자 아이히만 개인을 실질적으로 용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이히만이 재판정에서 사형을 면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고, 아렌트가 이에 속아 넘어갔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렌트의 많은 친구는 절교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아렌트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히만은 분명히 유죄”라며 “다만 다른 사람의 입장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유가 없는 사회에선 유대인 학살과 같은 만행이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무(無)사유가 인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나치즘의 광기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하는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오직 깊이 성찰하고 사유하는 것뿐이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