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윌리엄 포크너 《곰》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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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하는 건 괜찮아. 그건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두려워하면 안 돼. 숲속 동물이 너 해치는 경우는 네가 그놈을 몰아붙일 때, 그리고 그놈이 네 두려움의 냄새를 맡을 때 말고는 없어.”

멋진 사냥꾼이 되기 원하는 16세 소년 아이작에게 샘 파더스가 들려준 말이다.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샘은 매년 11월이면 곰 사냥단을 이끌고 숲으로 향하는 노련한 노인이다. 오랜 기간 마을 사람들의 농사를 망치고 사냥개와 가축을 물어 죽인 곰, 올드벤은 영물의 경지에 올랐다. 올드벤은 이미 여러 번 총에 맞았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엄청난 덩치에다 사람들을 따돌리는 일에 능한 올드벤이 나타나면 말도 사냥개도 무서워 덜덜 떨기 일쑤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숲을 정복하며 두려움을 떨친 소년의 성장기
샘은 아이작에게 “올드벤과 상대할 만한 사냥개가 우리에게 없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어느 날 덩치 큰 개가 덫에 걸린다. 샘은 사납기 이를 데 없는 개를 매우 지혜로운 방법으로 훈련시킨 뒤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고 드 스페인 소령과 콤슨 장군, 샘 파더스와 분 호갠벡, 아이작과 사촌 매캐슬린이 올드벤을 잡기 위해 출동한다.

《곰》은 1949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쓴 성장소설이다. 이 작품은 처음에 ‘라이언’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로 발표되었다가 ‘곰’이라는 제목의 수정본으로 다시금 선보였다. 1942년 《모세여 내려가라와 다른 이야기들》에 연관성 있는 개별작품 7편이 실렸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곰’이었다. 올드벤과 라이언의 대결《곰》은 중편소설 분량으로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1, 2, 3장에서 올드벤을 사냥하는 내용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열 살 때부터 숲을 익힌 아이작은 혼자서 광활한 숲속에 들어가 길을 잃기도 하고 올드벤과 마주하기도 한다. 샘은 왜 아이작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에 대해 말했을까. 흔히 무서움과 두려움을 비슷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분명히 다르다.

올드벤과 직접 마주치면 누구나 무서움을 느끼게 될 텐데 이때는 피하거나 물리치면 된다. 숲으로 향하면서 곰이 보이지도 않는데 ‘올드벤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물리면 죽을 거야’라며 공포에 떠는 게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대결을 펼칠 수 없을 테고, 두려움이 깊어지면 병이 된다. 그래서 샘이 무서워하는 건 괜찮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숲속 동물이 너를 해칠 거라고 경고한 것이다. 아이작은 근거없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숲을 샅샅이 파악하고 사냥하는 법을 철저히 익힌다.

3부에서 라이언이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올드벤을 공격하고 늘 라이언과 함께 행동하는 분이 눈부신 활약을 펼쳐 올드벤을 처치한다. 하지만 함께 올드벤을 공격하다 큰 부상을 당한 샘과 라이언이 죽음을 맞이한다.

4부는 아이작과 친척 매캐슬린의 가족사와 함께 사냥을 떠난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도 소개된다. 아이작은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어지러운 가족사를 인지한 후 소유와 자유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남북전쟁과 흑인 노예문제, 자연개발까지 얽히고설킨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작은 가문의 유산을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소년의 흥미진진한 모험담5부에서는 2년 후 숲을 다시 찾은 아이작이 샘과 라이언이 묻혀 있는 땅을 밟는 얘기가 펼쳐진다. 숲속에서 아이작은 생명의 영속성에 대한 영적 체험을 하며 상념에 빠진다.

샘과 올드벤이 사라진 후 사냥 모임도 해체되고 무자비한 개발로 숲이 파괴되자 숲과 함께 성장한 아이작은 아픔을 느낀다. 80년 전의 소설이지만 자연 파괴로 어려움을 겪는 현재와 많은 부분이 닿아 있어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곰》은 한 소년의 성장담이자 한 가문의 일대기이며 남북전쟁을 전후한 미국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땅을 소유하는 행위, 자연을 훼손하는 개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같은 생각할 포인트가 많다. 1, 2, 3, 5장을 연결해서 읽으면 호기심 강한 10대 소년이 두려움의 대상을 물리치고 성장하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된다. 그래서 4장이 빠진 《곰》이 발표된 적도 있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알베르 카뮈가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로 평가한 윌리엄 포크너. 그의 작품 《곰》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비견되기도 한다. 나침반 하나 들고 올드벤을 찾아 혼자 숲속을 누빈 아이작을 《곰》에서 만나면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