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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우정치의 늪…쇠퇴의 길 걷게 된 아테네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은 그리스의 몰락을 가져온 대사건이었다. 기원전 5세기 중반 도시국가 아테네는 최대 번영기를 맞았다. 페르시아 전쟁(BC 499~449)에서 초강대국 페르시아의 침공을 물리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며 스파르타와 함께 지중해 세계를 양분했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해상무역 주도권을 잡았다.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문화예술 분야에서 전성기를 이루며 세력을 확대했다. 아테네의 팽창에 대한 스파르타의 견제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페르시아에 맞서 함께 싸운 동맹국끼리 벌인 27년간의 내전으로 그리스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아테네 팽창과 스파르타의 공포 충돌”《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이 전쟁을 기록한 최고(最古)의 역사서다. 아테네 장군이자 역사가였던 투키디데스는 직접 참전했던 경험 등을 토대로 전쟁 상황을 실증적으로 기술했다. 아테네인이면서도 자국의 참담한 패배와 잔혹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등 균형된 시각을 유지하려 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국제적 역학관계 때문에 발생했다고 봤다. “아테네의 세력 신장이 스파르타인들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전쟁의 이유”라고 진단했다. 신흥 강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기존 패권국가가 전쟁을 벌이는 현상을 일컫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을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투키디데스는 케르키라 내전을 서술하면서 전쟁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번영을 누리는 평화 시에는 도시든 개인이든 원하지 않는데 어려움을 당하도록 강요받는 일이 없으므로,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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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의 칭찬만 좇는 지식인을 '사회의 적'으로 규정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는 지식인의 곡학아세(曲學阿世)와 위선을 맹렬하게 비판한 책이다. 루소는 지식 발전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는커녕 권력의 도구로 오용되면서 사회 풍속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문과 예술이 권위를 앞세워 대중에게 ‘불량 지식’을 강요하고, 기득권에 아부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물론 공격 대상은 학문 자체가 아니라 개인적 욕심과 오만으로 덧칠된 지식인들의 ‘학문 남용’ 행태다. “학문과 예술을 배우고 습득한 사람들이 세상에 끼치는 해악”에 주목한 것이다. 루소는 진리를 구하기보다 대중의 칭찬을 갈망하는 학자는 ‘사회의 적’이며, 그런 학문과 예술은 ‘껍데기’라고 거칠게 공격했다. ‘지적 기교’에 매달리는 불량 지식인들루소가 살다간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로 불린다. 인간의 이성과 사회의 진보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던 시대에 루소는 용감하게도 ‘지식의 폐해’를 강조했다. 학문이 ‘사회 진보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사회를 퇴보시킨다’고 주장했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루소의 도발적 주장은 동시대 계몽사상가들의 큰 반발과 따돌림을 불렀다. 하지만 “루소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시작한다”고 한 괴테의 평가처럼, 루소는 그 치열함을 통해 ‘진리를 위해 일생을 바친 철학자’라는 수식어를 얻었다.루소는 명예를 드높이는 일에만 집착하고, 얄팍한 학문과 지식으로 치장한 ‘못된 지식인’을 경계했다. 학자라는 이름 아래 사회 내부의 불신을 조장하고, 대중에게 왜곡된 지식을 제공하며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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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를 통제하는 힘, 물리력·부(富)에서 지식으로 이동"

    “지식의 장악이야말로 인류의 모든 조직체에서 전개될 전 세계적 권력투쟁에서 핵심 문제다. 앞으로의 권력투쟁은 더욱더 지식의 배분과 접근기회를 둘러싼 투쟁으로 바뀌어갈 것이다.”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가 1990년 펴낸 《권력이동》은 《미래쇼크》(1970년), 《제3의 물결》(1980년)에 이은 미래학 3부작의 완결편이다. 10년 주기로 출간한 세 책에서 ‘변화’를 공통 주제로 삼으면서도 각기 다른 렌즈로 현실을 들여다봤다. 《미래쇼크》가 변화의 ‘과정’에 주목했다면 《제3물결》은 변화의 ‘방향’에 초점을 맞췄다. 《권력이동》은 미래의 변화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 하는 변화의 ‘통제’를 다뤘다. “폭력·富→지식으로 권력 본질적 변화”토플러는 농업사회(제1물결)에서 산업사회(제2물결), 정보사회(제3물결)로 옮겨가면서 권력이 이동하는 현상을 탐구했다. 특히 단순한 ‘권력의 이동(power shift)’이 아니라 권력 본질 자체의 심층적 변화인 ‘권력이동(powershift)’에 주목했다. 토플러는 권력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새로운 부(富)의 창출체제’에서 비롯되며, 그 힘의 정체가 지식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아이디어·상징체계가 즉시 전달되는 ‘초(超)기호경제(super-symbolic economy)’가 낡은 ‘공장굴뚝(smokestack)경제’와 충돌하면서 권력의 원천인 ‘물리력(폭력)·부·지식’의 급진적 변화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사회를 통제하는 힘은 물리력과 부에서 지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식은 원자재·노동·시간·장소 및 자본의 필요를 감소시켜 선진경제의 중심적 자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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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다수 독일인은 나치즘의 피해자가 아닌 공범"

    ‘홀로코스트(대학살)’로 상징되는 잔혹했던 나치즘은 일반적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소수 추종집단의 악행으로 인식된다. 밀턴 마이어(1908~1986)가 1955년 출간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이런 상식에 반기를 들며 나치즘과 현대사 이해의 폭을 확장시킨 저작이다. 미국 언론인 겸 교육가였던 마이어는 독일인 나치전력자 10명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나치즘은 무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한 악마적인 소수의 독재가 아니라 다수 대중의 동조와 협력의 산물이었다”고 진단했다. 많은 독일인이 원했고, 또 참여했던 열광적인 대중운동이었다는 설명이다.“평범한 다수의 침묵과 권력 편승이 나치즘과 세계대전의 비극을 부른 ‘역사의 범죄’가 되고 말았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 참관 후 1963년 펴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기한 ‘악의 평범성’ ‘무(無)사유’와도 깊이 맞닿아 있는 인식이다.목수, 고교생, 빵집 주인, 교사, 경찰관 등 ‘버젓한 사람들’이 도대체 왜, 어떻게 나치가 됐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에 가담했던 10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대중의 무관심이 부른 오욕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위기의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방관자와 나치 동조자들의 생각을 꼼꼼히 추적해냈다.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나치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평가받는 이유다.“대다수 독일인은 나치즘의 공범”인터뷰에 응한 10명의 나치 전력자는 겉보기에 선량하고, 가정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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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영의 지름길은 '좋은 시장'만이 유일한 대안"

    멘슈어 올슨(1932~1998)의 《권력과 번영》은 무엇이 한 사회의 경제적 성쇠를 좌우하는지를 파고든 저작이다. 미국 공공선택학회장을 지낸 올슨은 정치학 개념인 ‘권력’과 경제학의 관심 주제인 ‘번영’을 결합해 풍요를 부르는 권력 구조와 사회 시스템을 탐구했다. 그가 제시한 답은 ‘시장 확장적인 정부’다. △재산권 보호 △계약이행 보장 △분쟁해결 장치를 특징으로 하는, 강하면서도 제한된 정부를 의미한다. 무수한 이익단체의 공세를 뿌리치고, 이 세 가지를 충족하는 방식으로 권력이 행사되는 사회체제만이 경제적 번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올슨의 결론이다.올슨은 권력을 ‘다른 폭력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것을 수탈해 내 것으로 만드는 힘’으로 파악했다. “모든 권력자의 행동 유인은 이기심이며, 권력이 국민 재산권 보호에 나서는 것은 생산의욕을 고취해 장기적으로 더 많이 수탈하기 위해서”라고 진단했다. 이익집단, 권력, 국가에 대한 《권력과 번영》의 이 같은 도발적 관점은 정치학·사회학에서도 여러 논점을 형성시켜 사회과학 전반의 발전에 기여했다. “권력은 정주형(定住型) 도적일 뿐”독재권력이든 민주권력이든 모든 권력은 권력에서 소외된 집단을 수탈한다는 게 올슨의 시각이다. ‘유랑형 도적’과 ‘정주형 도적’에 비유하며 권력의 속성을 설명한 이유다. 유랑형 도적은 강도질로 얻은 이익을 누릴 뿐 그로 인한 ‘사회적 생산 감소’라는 폐해에는 무관심하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 뿌리내린 정주형 권력은 많은 경우 세율을 낮추고 생산의욕을 고취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공공재 투자에도 큰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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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성 말살하는 전체주의 실상을 풍자적으로 비판

    ‘디스토피아(dystopia)’는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와 반대되는 가상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1868년 영국 의회 연설에서 영국의 아일랜드 억압을 비판하며 처음 사용했다. 디스토피아의 전형인 통제사회는 많은 작가들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소재가 됐다.조지 오웰(1903~1950)이 1949년 발표한 《1984》는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체제 아래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말살되고 파멸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웰의 마지막 작품으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예브게니 자미아틴의 《우리들》과 더불어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오웰은 사회주의자였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통일노동자당 민병대에 입대해 파시즘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그곳에서 체감한 것은 스탈린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의 위험성이었다. 오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스탈린 체제를 예리하게 풍자한 《동물농장》을 펴내 일약 명성을 얻었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는 2차대전 당시 동맹국이었던 소련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여서 출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949년은 냉전의 광기가 전 세계를 덮치던 시기였고, 《1984》는 소련의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자유 억압한 스탈린 전체주의 비판오웰이 《1984》에서 그린 미래 세계는 육체적 자유는 물론이고 인간의 사고나 감정까지 당(黨)이 지배하는 암울한 세상으로 묘사된다. 소설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내부당원, 외부당원, 무산계급(프롤)의 3개 계층으로 나뉜 전체주의 국가다. 당은 영원히 늙지도 않고,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헷갈리는 ‘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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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산권 보장과 법치가 富國의 으뜸 조건"

    “확고한 재산권 보호와 법치주의가 장인들의 혁신 본능을 자극했고, 과학적 합리주의가 그들에게 도구를 제공했으며, 자본시장이 그들의 놀라운 발명품을 개발하고 생산할 자본을 제공했다. 수송 수단의 발달은 성장과 부(富) 창출의 급류를 만들었다.”미국의 투자이론가이자 경제사학자인 윌리엄 번스타인은 2004년 펴낸《부의 탄생》에서 세계 경제가 특정한 시점과 장소에서 갑자기 성장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부국(富國)의 원천이 무엇인지 짚었다. 그에 따르면 동면(冬眠) 상태에 있던 세계 경제는 1820년 전후 유럽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왜 이 시기 특정 장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경제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 즉 부의 원천을 네 가지 요인에서 찾았다. △재산권 보장과 법치주의 △과학적 합리주의 △활성화된 자본시장 △수송·통신의 발달이다. “1820년 전후 경제 폭발적 성장 시작”번스타인은 재산권과 이를 지켜줄 법치주의가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권력자, 범죄자 등에 의해 자기 재산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면 누구도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을 게 뻔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치주의 확립이 필수 요소라고 본 것이다. “법률에 따라 재산 보호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분노와 갈등, 혼란이 난무하고 각 분야에서 생산성이 높아질 수 없으며, 국력은 추락할 것이다.”과학적 합리주의는 자신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험을 걱정하지 않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실험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경제적 진보는 사상의 발전과 밀접하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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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를 만드는 목적은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의 보호

    “자연이 제공한 것에서 자신의 노동을 섞어 무언가 보태면 그것은 배타적인 소유가 된다. 이는 자연상태 때부터 존재하는 개인의 고유 권리다. 국왕이라도 이런 개인의 소유권, 처분권에 대해 사사로이 침해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소유물을 보전하지 못하거나 탈취하려 할 경우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존 로크(1632~1704)는 《통치론》을 통해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치론》은 절대왕정을 전복시킨 영국의 명예혁명(1688) 이듬해 출간됐다. 로크는 이 책에서 자유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국가는 어떤 체계로 구성되고,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설계도를 그렸다. 정치·사회의 운영원리로 다수결의 원리, 입법, 집행(행정), 재판관(사법) 등의 개념도 제시했다.또 인간 이성의 합리성, 개인 자유의 신성함, 사유 재산의 절대성, 불합리한 통치에 대한 저항권 등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들도 이 책에 담았다. 이런 개념들은 근대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리로 정착됐다. 로크의 자유주의 개념은 왕권신수설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당시 왕권신수설을 내세운 로버트 필머 경은 “하느님이 아담의 후손인 통치자들에게 영토와 함께 신민(臣民)을 준 것이기 때문에 신민은 통치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의무가 있다”며 “신민의 재산 역시 왕이 시혜로서 준 것이기 때문에 통치자는 신민의 동의 없이 이를 처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대 자유민주주의 이론적 틀 제공이에 대해 로크가 왕권신수설에 기초한 절대왕정 체제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내세운 것이 사회계약론이다. 로크는 “인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