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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은 평등·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밀집한다

    “밀집 속에서는 가깝게 느끼고 커다란 안도감을 얻게 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는 이 ‘축복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인간은 군중을 형성한다.”“인간의 역사는 수많은 군중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을 숭상한다. 그들은 모두 시체 더미의 왕이다. 살아남는 최후의 인간이 되는 것이 모든 권력자가 원하는 것이다.”예술과 철학과 자연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은 왜 그런 끔찍한 범죄에 참여하고, 또 침묵했을까. 포악한 권력자의 명령이 있었다지만 히틀러 시대의 유대인 집단학살은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미스터리이자 공포로 기억된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거주하다가 ‘군중’의 위협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 강렬한 충격이 계기가 된 35년 연구의 결과물이 《군중과 권력》이다. 군중의 본질을 폭넓은 시각으로 조명한 이 저작을 아널드 토인비는 “인간사에 대한 포괄적 이해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했다. “군중 속 안도감은 순간의 환상일 뿐”카네티는 위협적 군중이 형성되는 이유를 “생존 본능의 발동”이라고 진단했다. 인간은 광활한 평원 위에 서서 돌아가는 풍차와 같다는 게 그의 관찰이다. “풍차와 이웃 풍차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뿐 다른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삶은 이 간격 속에서 펼쳐진다. 재산, 지위, 계급 등이 간격을 만들고 확대시킨다. 함께 모여야만 이 간격이 주는 중압감과 질곡에서 해방될 수 있다.” 군중이 밀집상태를 선호하는 이유다.《군중과 권력》은 밀집된 군중이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방전(放電)’을 꼽는다. 방전은 카네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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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이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손님 각자가 가지고 온 음식이 한 사람이 만든 요리보다 더 다양한 맛을 내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함께 내리는 판단이 훨씬 더 뛰어나다. 국가가 필요한 이유도 이와 같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국가 구성원들이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더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그리스 정치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행복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 가운데 최고의 선(善)이라고 여겼다. 그는 “행복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조건 안에서 가장 적절하게 스스로를 실현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잘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이런 개인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무엇인지 탐구한 책이 《정치학(politica)》이다. 그는 41세 때 마케도니아 왕의 부탁을 받고 왕자(훗날 알렉산더 대왕)의 가정교사가 됐다. 이 책은 그가 알렉산더에게 가르치기 위해 정리한 교재다. 폴리티카는 ‘폴리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지칭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비롯한 각 폴리스의 다양한 통치 형태를 관찰한 뒤 어떤 것이 바람직한 정치 시스템인지 제시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이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생존 때문이다. “인간이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다. 국가라고 불릴 정도의 공동체가 돼야 자급자족이 가능해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공유지의 비극 정확하게 인식두 번째는 국가에 소속돼야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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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의 선호가 도덕이 되면 중우정치(衆愚政治) 우려 커"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당하는 것이다. 민주정체는 무제한의 자유 탓에 욕심과 쾌락에 빠진 나라다.”“민주정은 대중의 선호가 도덕이 되는 중우정치로 변질할 우려가 농후하다. 개별 사물 너머 존재하는 ‘그 무엇’이 본모습이자 존재 이유다.”플라톤(BC 428?~348?)은 서구 사상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수학자 겸 철학자였던 화이트헤드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오늘날의 서양철학은 플라톤 사상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이 2500년 전 제기한 개념과 관점, 문제의식이 아직도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으며, 무수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상찬이다. 《국가론》은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주변 사람들과 ‘정의’를 주제로 나눈 대화를 10권 분량으로 엮어낸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아테네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이상국가 ‘칼리폴리스’에 대한 구상을 설파했다. 당시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는 “강한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것, 그게 정의”라는 생각이 득세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를 ‘권력 게임’이 아니라 ‘좋은 삶’이라는 주제의식으로 풀어낸 그 자체로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철인 왕’의 이상, 법치국가로 이어져플라톤은 1권에서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당하는 것”이라고 썼다. 최근 회자되는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인용구의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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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의 직업 윤리관이 근대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핵심"

    “프로테스탄트(개신교)는 세속적인 직업에서 거둔 성공을 구원의 증표로 삼았고, 이윤 획득과 물질적인 성공을 신(神)의 축복으로 여겼다. 이런 새로운 사고방식이 전통주의적 경제 체제를 허물어버리고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평생에 걸쳐 산업사회의 새로운 발전 방식과 구조를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특히 큰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 자본주의 발전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개신교가 들어선 나라가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가톨릭 영향이 강한 나라에 비해 경제 성장이 빠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한 답을 담아 1920년 출간한 책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베버는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체제로 보지 않고 인간의 생활양식이나 가치관, 신념 등과 연관된 문화 현상의 하나로 보았다. 그는 “금욕적 개신교의 직업 윤리관이 합리적 생활을 중시하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탄생시킨 핵심이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면서 증명했다.베버는 “과거 가톨릭은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거나 저축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죄악시했고, 노동을 인간의 원죄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봤다”고 했다. 그러나 개신교가 등장하면서 모든 게 변했다고 베버는 설명했다. 직업 노동과 금욕적 절제를 통해 부(富)를 축적하는 것을 신의 축복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개신교 금욕주의, 자본 형성에 기여”베버는 개신교, 특히 칼뱅파의 교리에 주목했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구원받은 자와 저주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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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은 권력에 이익 될 수 있는 존재 만드는 게 목적"…권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 메커니즘 새 각도로 분석

    “권력은 감옥뿐만 아니라 군대 학교 병원 공장 회사 등 모든 장소에서 ‘몸(인간)’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일련의 기법을 동원한다.”미셸 푸코(1926~1984)는 자크 데리다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다.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등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일련의 상대주의적 지적 풍토를 마뜩잖게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푸코에 대해서만큼은 예외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푸코 신드롬’이 몰아쳤고, 그의 이름은 현대 사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인용 빈도 최상위권 학자이기도 하다.푸코는 ‘지식의 견고한 축적’이나 ‘이성의 점진적 진보’라는 전통적인 역사 이해 방식, 즉 역사주의를 거부한다. 대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권력’과 ‘권력의 폭력’에 천착했다. 그런 집요한 탐구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자발적 복종’ 부르는 ‘판옵티콘’ 사회1975년 출간된 푸코의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은 현대사회를 보는 기존과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권력과 그 권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 메커니즘 분석을 통해서다. 자발적 복종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권위에 복종해 그 상태를 편안함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상태”라는 게 푸코의 정의다.푸코는 프랑스혁명을 전후로 감옥제도와 함께 시작된 형벌제도의 변화를 ‘권력의 경제학’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감옥은 단순한 범죄자 수용소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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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굴종을 택해 조직 안에서 안주하려는 심리 있어"…능동적으로 자아를 실현시키는 적극적 자유 추구 강조

    “우리는 독일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싸운 그들의 선조와 같은 열성으로 자유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밖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에리히 프롬(1900~1980)은 독일 출신 미국 심리학자다. 유대인인 그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간 뒤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썼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인간 심리를 분석한 것이다. “이성적이고 지성적이라고 자부하는 독일에서 어떻게 나치가 등장할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다.왜 사람들은 수많은 투쟁을 통해 가까스로 얻은 자유를 포기하고 전체주의에 열광하는 걸까. 인간은 자유를 쟁취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걸까. 프롬은 근대 민주주의 체제가 사회의 여러 제약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켰다고 여기지만, 개인은 또 다른 권위에 예속됐다고 봤다.“자유 얻었지만 고독과 불안 뒤따라”프롬은 20세기 이전의 인류사를 자유 쟁취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종교개혁으로 개인의 해방이 가속화했다는 데 주목했다. 프롬은 “중세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적 고민뿐 아니라 탄생, 결혼, 죽음 등 인생 중대사를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결했다”며 “하지만 종교개혁은 우리로 하여금 혼자 신 앞에 서게 했다”고 했다. 종교개혁과 봉건체제 해체로 사람들은 종교, 정치,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됐다. 프롬은 이를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라고 했다.자본주의 발달도 ‘~로부터의 자유’를 촉진했다. &l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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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가의 지속적인 혁신이 자본주의 발전의 원천"…기업 초과이윤은 노동착취 아닌 '혁신의 대가'로 봐

    “경제발전은 외부 여건 변화에 의한 단순한 순응과 수용이 아니라 경제 체제 내부에서 발생한다. "“신용이란 본질적으로 기업가에게 양도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구매력의 창조이며, 경제발전이 수행되는 방법을 특징짓는다.”고전 경제학 세계에서 경제 주체는 시장에 수동적인 존재다.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의 효용을 추구하면 경제는 균형 상태에 도달한다. ‘균형’은 그들이 생각한 경제의 일반적인 상태였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경제는 항상 균형을 깨고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면서 질적인 발전을 해왔다.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이런 자본주의의 균형을 파괴하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주목했다. 과거엔 기껏해야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외부적 요소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힘의 원천이 경제 내부에 있다고 믿었다. 슘페터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쓴 《경제발전의 이론》(1911년 출판)에서 “경제발전은 외부 여건 변화에 의한 단순한 순응과 수용이 아니라 경제체제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기업가의 혁신, 즉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이 경제발전을 자극하는 원천”이라고 주장했다.슘페터는 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엄격히 구분했다. 그가 말하는 발전은 ‘점진적 변화(성장)가 아니라, 경제의 틀과 궤도 자체를 바꾸는 혁명적인 변화’다. 소매점에 백화점이 들어선 것이 성장이라면, 역마차에서 기차로 바뀐 것은 발전이다. 그 발전의 원동력이 혁신이다.기업의 초과 이윤은 ‘혁신의 대가’슘페터에 따르면 기업가 혁신은 다섯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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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비관하는 대중이 '광기의 파시즘' 불렀다"…파시즘은 '이즘' 아닌 '결집된 열정'이 만든 비극

    17~18세기는 ‘이성의 시대’였다. 이성의 근육을 키운 인류는 19세기에 번영을 달렸고, 그 들뜬 분위기는 20세기 초입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파시즘이 등장하자 20세기는 한순간에 야만과 반(反)지성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은 파시즘의 전개 과정과 이면을 치밀하게 복기한 노작(勞作)이다. 전후 60여 년 지속된 파시즘 관련 여러 논쟁을 잠재웠다는 평가를 받는다.‘20세기의 악몽’ 파시즘은 ‘천의 얼굴’을 보였다. 전형적인 형태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파시즘 국가(1922~1943년)와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국가사회주의 나치 국가(1933~1945년)다. 비슷한 시기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스페인 벨기에 영국 핀란드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파시즘 운동이 꼬리를 물었다.팩스턴은 “파시즘은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났다”고 봤다. 당시 시대상에 대해 팩스턴은 “종전 무렵 유럽은 재건 불가능한 구세계와, 그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신세계로 분열됐다. 인플레는 부르주아적 가치를 비웃으며 통제불능 상태로 치달았다”고 썼다. 또 1917년 러시아에서 레닌이 거둔 승리와, 더 산업화된 독일에서마저 레닌 추종자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중간계급과 상류층을 두려움으로 몰았다고 진단했다.파시즘은 ‘이즘’이 아니라 ‘결집된 열정’그리하여 낙관적 미래 전망이 불신받고 ‘인류의 자연스러운 조화’라는 자유주의적 가정은 의심받았다.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같은 기존 정치제도의 역량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경제적 긴장이 야기됐다”는 게 팩스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