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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정중지와 (井中之蛙)

    ▶ 한자풀이井: 우물 정中: 가운데 중之: 갈 지蛙: 개구리 와가을 홍수로 황하에 물이 가득했다. 황하의 신 하백(河伯)은 천하를 얻은 듯 뿌듯했다. 한데 강을 따라가다 동해에 이른 하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해의 넓고 깊음은 황하에 비할 바가 못 됐다. 하백이 북해의 신 약(若)에게 한숨 지으며 말했다. “‘백 가지 도리를 들으면 저만한 사람이 없는 줄 안다’는 속담이 바로 저를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공자의 지식이 작고 백이의 절개가 가볍다는 말은 들었지만 지금까지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다의 끝없음을 보니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마터면 크게 깨달은 자들에게 오랫동안 비웃음을 당할 뻔했습니다.”약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에게는 바다를 얘기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평생을 우물에 갇힌 탓이지요. 여름 벌레에게는 얼음을 말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여름에만 매여 산 때문이지요…. 세상에는 나보다 큰 물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크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나 또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이니 조그마한 돌멩이나 작은 나무가 거대한 산에 있는 격이지요…. 모든 것을 만물이라 부릅니다. 사람은 그 만 중에 하나일 뿐이지요.”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다.어쩌면 우리 모두는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주제는 잊은 채 강을 말하고, 바다를 논하는지도 모른다. 시냇물이 목소리를 키우면 강이 되고, 강이 목소리를 키우면 바다가 되는 줄 착각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모른다(井中之蛙 不知大海). 평생을 좁은 공간에 갇힌 탓이다. 여름철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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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전긍긍 (戰戰兢兢)

    ▶ 한자풀이戰: 싸움 전戰: 싸움 전兢: 떨릴 긍兢: 떨릴 긍맨손으로 범을 잡을 수 없고 걸어서는 강을 건너지 못하네.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고 있지만 그외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戰戰兢兢) 마치 깊은 못에 임한 듯하고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공자가 편찬한 <시경> 소아편 ‘소민(小旻)’의 마지막 구절이다. 임금이 간신에 둘러싸여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것을 풍자한 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와 뜻이 맞물리는 ‘꾀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꾀하는 일이 잘되지 않는다’도 소민에 나오는 시구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신하가 많으니 나라가 임금의 뜻대로 다스려지지 않음을 비유한 구절이다.전전(戰戰)은 겁을 먹고 벌벌 떠는 모습이고, 긍긍(兢兢)은 지극히 조심해 몸을 움츠리는 태도다. 그러니 전전긍긍(戰戰兢兢)은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몸가짐이다. 소민은 만용과 소심을 대비시킨다. 맨손으로 범을 잡고, 걸어서 강을 건너는 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군주에게 만용을 부리면 단번에 목이 날아간다. 간신은 그걸 알기에 깊은 연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 위를 걷듯 임금의 눈치만 살핀다. 나라에 약이 되는 쓴 말은 삼키고 임금의 귀에 달콤한 단 말만 뱉어댄다.“미래는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약한 자에게는 불가능이고, 겁 많은 자에게는 미지(未知)이고, 용기 있는 자에게는 기회다.”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말이다. 빙판길에선 떨며 걷는 자가 더 자주 넘어진다. 두려움에 지면 뚜렷한 길이 흐려지고, 흐릿한 길이 아예 없어진다. 전전긍긍, 세상만사 너무 겁먹고 너무 소심하면 발을 내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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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하청 (百年河淸)

    ▶ 한자풀이百: 일백 백年: 해 년河: 물 하淸: 맑을 청춘추시대 정나라가 위기에 처했다. 초나라의 속국 채나라를 친 것이 빌미가 돼 초나라의 보복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정나라 대부들이 대책을 논했으나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강대국 초나라와 맞설 수 없으니 화친을 맺어 백성을 살리자는 주장과 화친을 맺는다는 것은 초나라의 속국이 된다는 것이니 끝까지 싸우면서 진나라에 구원을 청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양측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한 프로타고라스가 말하지 않았나. 모든 담론은 거대한 상반된 논리가 있다고.화친론과 주전론이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대부 자사가 나섰다. 그는 먼저 ‘황하(黃河)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면 인간의 수명으로는 부족하다. 점을 쳐 일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수선해지고 그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한다’는 주나라 시를 인용했다. 그리고 본론을 말했다. “지금 진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리는 건 백년하청(百年河淸)일 뿐이오. 진이 우리를 도우려 초나라와 전쟁을 일으킬 이유도 없지 않소. 초나라와 화친을 맺어 백성을 불안에 떨지 말게 합시다.” 결국 정나라는 화친으로 큰 고비를 넘겼다.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얘기다.백년하청(百年河淸), 백 년을 기다려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뤄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바로잡기 난망한 일, 가망이 없는 희망, 막연한 기다림 등을 비유한다.기다림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막연한 기다림은 때론 시간낭비다. 숙성은 세월을 그저 흘려보내는 게 아니다. 익히고 단련해 스스로를 영글게 하는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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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지십 (聞一知十)

    ▶ 한자풀이聞: 들을 문一: 한 일知: 알 지十: 열 십세계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공자는 인(仁)을 강조한 유가(儒家)의 창시자다. 그의 유가적 사상은 특히 동양적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음악, 주역, 시(詩) 등에도 두루 조예가 깊었다. 제자가 3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자들의 재주도 각자 달랐다. 누구는 학문에 뛰어나고, 누구는 언변이 좋았고, 누구는 장사에 밝았다.자공(子貢)은 재산을 모으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어 공자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유세하는 자금의 대부분을 뒷받침했다. 안회(顔回)는 가난했지만 총명하고 영리할뿐더러 효심이 깊어 공자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하루는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자공아, 너는 안회와 비교해 누가 낫다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답했다. “저를 어찌 안회와 비교하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치는(聞一知十)’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깨칠 뿐입니다.” 겸손한 듯하지만 실은 자기도 꽤 안다는 의미의 답변이었다. 자공은 자신의 재주를 믿고 자만심이 강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지적을 듣기도 했다. 자공의 속내를 떠본 공자가 말했다. “그래, 어림없느니라. 너만이 아니라 나도 한참 미치지 못 하느니라.”‘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 매우 영특함을 의미하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은 <논어> 공야장 편에 나온다. ‘그는 문일지십의 영재다’ 등으로 쓰인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책을 통해 스스로 익히는 것은 하나를 들으면 둘 셋을 깨우치려는 ‘지적 내공’을 강화하는 훈련인 셈이다.참고로 예(禮)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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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지용 (無 用 之 用)

    ▶ 한자풀이無: 없을 무用: 쓸 용之: 갈 지用: 쓸 용세상 만물은 모두 각자의 쓰임이 있다. 다만 제자리에 있지 못한 따름이다. 성을 부수는 데는 들보가 제격이지만 조그만 구멍을 막는 데는 조약돌이 더 요긴하다. 하루 천길을 달리는 천리마도 고양이를 잡는 데는 쥐만 못하다. 쓰임이 모두 다른 까닭이다. 쓰임 역시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다.장자(莊子)의 무위(無爲)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거다. 인위적으로 가르지 않고 전체를 두루 보는 거다. 장자는 쓰임 또한 가르지 말라 한다. 닷섬들이 박이 너무 커서 쓸모가 없다는 친구 혜자의 말에 장자는 “호수에 띄워 배로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크기만 하고 가지들이 굽은 나무를 보고는 “광막한 들판에 옮겨심고 그 아래 그늘을 노닐면 좋지 않겠느냐”고 한다.“당신의 말은 아무 데도 소용이 닿지 않는 것뿐이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우화와 비유의 달인(?) 장자가 반박했다. “쓸모없는 것을 아는 자라야 무엇이 참으로 쓸모 있는지 말할 수 있소. 광야가 아무리 넓어도 그곳을 걷는 자에게는 두 발 둘 곳만 있으면 되오. 그렇다고 발 둘 곳만 남기고 주위를 천길 낭떠러지로 파 버린다면 사람이 그 길을 갈 수 있겠소?” “그건 안 되지요.” 장자가 속뜻을 꺼냈다. “그렇소. 주변의 쓸모없는 땅이 있기에 발 둘 땅이 쓸모 있게 되는 것이오.” <장자> 외물편에 나오는 얘기로, 쓸모없는 것이 되레 크게 쓰인다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이 유래한 고사다.장자는 쓰임에만 매이는 인간을 꼬집는다. “기름불의 기름은 제 스스로를 태운다. 계피는 먹을 수 있기에 그 나무가 베어지고, 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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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경지수 (明 鏡 止 水)

    ▶ 한자풀이明:밝을 명鏡:거울 경止:그칠 지水:물 수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 왕태(王)라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 있었다. 노나라에는 그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만큼이나 많았다. 공자의 제자인 상계가 불만 섞인 투로 물었다. “스승님, 많은 사람이 왕태를 따르는 까닭은 무엇이옵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흘러가는 물에는 비춰 볼 수가 없고 고요한 물에 비춰 보아야 한다. 오직 고요한 것만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장자> 덕충부 편에 나오는 얘기로, 명경지수(明鏡止水)는 맑은 거울과 조용한 물이라는 뜻으로 티 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뜻한다.‘맑은 거울’을 뜻하는 명경(明鏡)은 <장자>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온다.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는 정자산이라는 사람이 위세를 과시하려는 신도가를 나무라는 대목이다. “자네는 지위를 내세워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네. 듣건대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끼지 못하고, 먼지가 끼면 거울이 맑지 못하네. 어진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하네(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 則無過). 세상에는 잘못을 변명하는 사람은 많으나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받는 죄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네”라며 정자산을 꾸짖었다. 이처럼 명경지수는 본래 도가(道家)에서 주창하는 무위(無爲)의 경지를 가리켰으나 후일 그 뜻이 변하여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사람은 수시로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성찰은 고요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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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가일몽 (南 柯 一 夢)

    ▶ 한자풀이南:남녘 남柯:자루 가一:한 일夢:꿈 몽당나라 때 강남 양주 땅에 순우분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는 몇 아름이나 되는 큰 괴화나무가 수십 평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는 여름철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그 나무 밑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 하루는 술에 취해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는데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 절을 올렸다. “괴안국 국왕의 어명을 받잡고 대인을 모시러 온 사신입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괴화나무 구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괴안국의 부마가 되어 영화를 누리다 남가(南柯) 태수로 부임해 20년간 남가군을 태평하게 다스리고 다섯 아들은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고 딸은 왕가에 시집보냈다.하지만 20년이 되던 해 단라국 군대에 크게 패하고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벼슬을 내놓고 돌아왔다. 한데 그의 명성 때문에 찾아오는 이가 많아 역적 음모를 꾸민다고 조정에 투서가 들어오자 왕은 그에게 근신을 명령했다. 순우분의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을 알게 된 왕은 그를 달래 고향에 다녀오라 했다. 순우분이 놀라서, “저의 집이 여긴데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하고 반문하자, “그대는 본시 속세 사람으로, 여기는 그대의 집이 아닐세” 하며 웃었다. 그는 놀라며 꿈에서 깨어났다.‘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으로 덧없는 한때의 꿈이나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은 중국 당나라 이공좌의 소설 <南柯記(남가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그의 10년 노력은 결국 남가일몽이었다’ 식으로 쓰인다. ‘한바탕의 봄 날 꿈’을 뜻하는 일장춘몽(一場春夢), <장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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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형난제 (難 兄 難 弟)

    ▶ 한자풀이難:어려울 난兄:형 형難:어려울 난弟:아우 제후한 말의 학자 진식(陳寔)은 태구의 현령으로 적은 녹봉을 받으면서도 덕망이 매우 높았다. 그의 아들 진기(陳紀)와 진심(陳諶) 또한 학식과 덕망이 높아 당대 사람들은 그들 부자를 세 군자(君子)로 불렀다. 어느날 손님이 진식의 집에 머물러, 진식이 두 아들에게 밥을 지으라 했는데 어른들의 토론에 귀를 기울이다 밥이 죽이 되고 말았다. 진식이 그 연유를 알고 물었다. “그래, 우리가 나눈 얘기를 조금이라도 외우고 있느냐?” “네,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진기와 진심은 요점을 잡아 들은 얘기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진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다. 죽이면 어떠냐.”진기의 아들 진군(陳群)도 역시 뛰어난 수재로 재상까지 올랐다. 진군이 어렸을 때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과 놀다가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을 논했는데 서로 자기 아버지가 낫다고 하여 결말을 짓지 못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인 진식에게 여쭸다. 진식이 답했다. “형이 낫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가 낫다고 하기도 어렵구나(難兄難弟).”난형난제는 원래 ‘형이라 하기도 어렵고, 동생이라 하기도 어렵다’는 뜻이지만 현재는 사람이나 사물이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함을 일컫는다. ‘최근 몇 년 새 축구에서 한국과 일본은 난형난제다’ 등으로 쓰인다.누가 맏형이고 누가 둘째 형인지 모른다는 난백난중(難伯難仲), 어느 것이 위이고 어느 것이 아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막상막하(莫上莫下), 서로 형세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움을 일컫는 백중세(伯仲勢)나 백중지세(伯仲之勢), 역량이 우열을 가리기 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