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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식자우환(識字憂患)

    ▶ 한자풀이識: 알 식字: 글자 자憂: 근심 우患: 근심 환서서(徐庶)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소개한 인물이다. 유비가 제갈량은 얻기 전에는 유비의 군사로 있으면서 조조를 많이 괴롭혔다. 위나라 조조에 비해 세력이 크게 약했던 촉나라 유비가 ‘삼국’이라는 입지를 강화한 것은 제갈량의 공이 컸고, 그를 소개한 서서 역시 삼국의 지형을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조조는 모사꾼인 정욱의 계락에 따라 서서가 효자라는 것을 알고, 그의 어머니를 이용해 서서를 어머니에게 돌아가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학식이 깊고 명필인 데다 의리가 있는 서서의 어머니 위부인은 아들을 불러들이기는커녕 어머니 걱정은 말고 현군인 유비를 끝까지 한 임금으로 섬기라고 격려했다.조조가 꾀를 냈다. 중간에 사람을 넣어 교묘한 수법으로 위부인의 필체를 알아낸 뒤, 서서에게 어머니의 위조 편지를 전달하게 했다. 필체에 속아 서서가 집에 돌아오자 위부인은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 의아해했다. 아들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뒤 이 모든 것이 서서의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란 것을 안 위부인은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부터가 걱정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다(女子識字憂患)”라고 한탄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다.소동파의 시에도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는 구절이 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은 말 그대로 ‘아는 글자가 되레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너무 많이 알면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이 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또는 어쭙잖은 지식 때문에 일을 망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한국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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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곤일척 (乾坤一擲)

    ▶ 한자풀이乾: 하늘 건坤: 땅 곤一: 한 일擲: 던질 척건곤(乾坤)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이르는 것으로 천하 천지를 뜻한다. 건곤일척은 곧 천하를 걸고 한번 던져 승패를 겨룬다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제일의 문장가 한유(韓愈)는 옛날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양분하는 경계로 두고 싸움을 한 홍구를 지나다가 ‘과홍구(過鴻溝)’라는 시를 지었다. 시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용은 지치고 호랑이도 피곤하여 강과 들을 나누어 가지니(龍疲虎困割川原)이로 인해 억만창생의 목숨이 살아남게 되었네(億萬蒼生性命存)누가 임금에게 권하여 말머리를 돌리게 했는가(誰勸君王回馬首)참으로 한번 겨룸에 천하를 걸었구나(眞成一擲賭乾坤).’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두 사람의 싸움은 수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승부가 나지 않았고 홍구 지역을 기준으로 서쪽은 유방이, 동쪽은 항우가 갖기로 하면서 싸움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유방이 철군하려 하자 참모인 장량과 진평이 간곡히 요청했다. “한나라는 천하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들도 따르고 있습니다. 반면 초나라 항우의 군사는 몹시 지쳐있고 군량마저 바닥이 났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초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뜻이오니 당장 쳐부숴야 합니다.”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천하를 걸고 단판 승부를 벌였고, 항우는 대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나라는 이렇게 중국 천하를 다시 통일했다.여기서 유래한 건곤일척(乾坤一擲)은 승패와 흥망을 걸고 마지막으로 결행하는 단판승부, 또는 운명을 걸고 어떤 일에 나서는 대범한 용기를 가리키기도 한다.‘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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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양지귀 (洛陽紙貴)

    ▶ 한자풀이洛: 서울이름 낙陽: 양기 양紙: 종이 지貴: 귀할 귀좌사(左思)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제나라 수도 임치 출신으로, 가난하고 생김새도 추했지만 문장 하나는 탁월했다. 그는 집필 1년 만에 <제도부(齊都賦)>를 썼는데, 임치의 사물에 관한 글이었다. 자신의 작품에 흡족해한 그는 <삼도부(三都賦)>를 쓰기로 작정했다. ‘삼도’란 삼국시대 위나라 수도 업(), 촉(蜀)나라 수도 성도(成都), 그리고 오나라 수도 건업(建業)을 뜻한다.그가 작품 구상에 한창일 때 누이가 갑자기 궁중으로 불려 올라가게 됐고, 뛰어난 문사가 몰려 있는 중앙 무대의 분위기에 자극받았지만 집필은 지지부진했다. 자신의 공부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 좌사는 비서랑이 돼 궁중에 보관돼 있는 각종 문헌을 읽으며 학문적 시야를 넓혔다. 그런 노력 끝에 10년 만에 <삼도부>를 완성했지만, 처음에는 작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일품 벼슬인 사공(司空)이라는 직에 있는 장화가 좌사의 집에 찾아와 그의 작품을 한 번 보여달라고 했다.좌사는 선뜻 내키지 않는데도 <삼도부>를 장화한테 보여줬다. 중앙 문단에서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기도 한 장화는 <삼도부>를 읽은 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아니, 이런 훌륭한 작품을 가지고 무슨 당찮은 겸양이오. 내가 보기엔 반고(班固)나 장형(張衡)을 능가하고 있소이다.” 반고와 장형은 한나라 때 사람으로,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장화의 극찬은 금방 화제가 됐고, 글을 읽는다는 사람들은 앞다퉈 <삼도부>를 베껴 읽었다. 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가 갑자기 동이 나서 종이값이 폭등(洛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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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사유피 (虎死留皮)

    ▶ 한자풀이虎: 범 호死: 죽을 사留: 머무를 유皮: 가죽 피누구도 어딘가를 완전히 떠나지 못한다. 떠나도 그곳에 흔적이 남는다. 그러니 떠나도 머무는 셈이다. 누구나 삶의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바로 ‘나’이고, 바로 ‘당신’이다.5대10국(五代十國) 시대는 중국 역사의 큰 혼란기다. 907년에 당나라가 멸망한 뒤 979년 조광윤이 중국을 통일해 송나라를 세우기까지 불과 70년 동안에 수많은 나라가 흥하고 망했다. 5대(五代)는 화북의 중심을 지배한 나라로 양(梁)·당(唐)·진(晉)·한(漢)·주(周)의 다섯 왕조를 말한다. 10국(十國)은 화남과 지방에서 흥망한 지방정권을 뜻한다.5대 왕조 중 하나인 양나라에 왕언장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성격이 우직하고 전쟁에선 누구보다 용감했다. 싸움에는 항상 쇠창을 들고 나가 별명이 ‘양철창(王鐵槍)’이었다. 산서에 있던 진나라가 국호를 후당(後唐)으로 바꾸고 양나라로 쳐들어왔다. 왕언장은 크게 패해 파면까지 당했다. 얼마 후 후당이 양나라를 재침공했고, 다시 군사를 맡은 왕언장은 포로가 되고 말았다.왕언장의 용맹을 높이 산 후당 왕이 귀순을 회유했다. “당신은 두 번이나 지고 이리 붙잡힌 신세까지 되었소. 돌아가도 좋은 대접은 없을 터이니 나와 같이 일해 보는 게 어떻소.” 왕언장은 단호했다. “아침에는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나라를 섬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오.” 분노한 왕은 그의 목을 치라고 했다. 형장으로 가는 그는 참으로 의연하고 태연했다. 그는 평소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虎死留皮),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人死留名)”는 말을 자주 했다. 실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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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호빙하 (暴虎憑河)

    ▶ 한자풀이暴:사나울 포(폭)虎:범 호憑:업신여길 빙河:물 하안회는 학문이 깊고 덕행이 높아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였다.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제자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안회를 꼽고 ‘그는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다(不遷怒 不貳過)’고 했다.어느 날 공자가 안회에게 말했다. “왕후에게 등용되어 포부를 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를 깊이 간직해 두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는 아마 너와 나 두 사람 정도일 것이다.”무사 기질의 자로가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은근히 샘이 나 스승 공자에게 대뜸 물었다. “도를 행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군을 이끌고 전쟁에 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학식과 덕은 몰라도 군사나 병법만은 인정받고 싶다는 속내였다. 한데 대답은 기대했던 ‘그건 너지’가 아니었다. 공자가 말했다.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거나 배도 없이 강을 건너려는(暴虎憑河) 자와는 행동을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얘기다.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고 배 없이 강을 건너는 포호빙하(暴虎憑河)는 용기는 있으나 현실을 무시한 무모한 행위를 일컫는다.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있지. 나는 남의 잘못을 떠벌리는 자, 윗사람을 험담하는 자, 난폭함을 용기로 아는 자를 미워하네. 자네도 혹시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번에는 자공이 답했다. “저는 주워들은 것을 자기 것인 양 여기는 자, 무례함을 용기로 아는 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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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철살인 (寸鐵殺人)

    ▶ 한자풀이寸: 마디 촌鐵: 쇠 철殺: 죽일 살人: 사람 인말이 너절하면 힘이 없다. 글이 너절하면 뜻이 얕다. 길이 너절하면 발길이 헷갈린다. 최고의 맛은 담백하고, 최고의 소리는 고요하고, 최고의 덕은 은미한 법이다. 창이 너무 길면 적을 정확히 겨냥하기 어렵고, 말이 너무 길면 본질이 흩어진다.나대경은 남송의 학자다. 그의 <학림옥로>는 밤에 집으로 찾아온 손님들과 나눈 담소의 모음집이다. 천(天)·지(地)·인(人)으로 분류해 문인이나 선인의 말을 시화(詩話)·어록·소설의 문체로 실었다. 거기에 보면 종고선사(禪師·선종의 교리를 통달한 스님)가 선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어떤 사람이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왔다고 해서 살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한 치도 안 되는 칼만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한 치도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은 이 문구가 출처다.여기서 ‘살인(殺人)’은 원래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마음속의 속된 생각을 없앤다는 뜻이다. 번뇌를 없애고 마음을 모으면 ‘작은 것’ 하나로도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촌철(寸鐵)은 손가락 한 개 폭 길이의 무기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말 한마디,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짧은 경구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니체는 “거짓을 말하는 자는 수다스럽다”고 했다. 수다로 거짓을 가리고, 감추고 싶은 데로 쏠리는 타인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공자는 “말을 꾸미는 자에게는 인(仁)이 드물다”고 했다. 부풀리고 과장하고 왜곡하는 말은 거짓이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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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상계 (走爲上計)

    ▶ 한자풀이走: 달릴 주爲: 할 위上: 윗 상計: 셈할 계용기는 물러서고 나아가는 것을 아는 거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고,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는 거다. 물러서야 할 때 나아가는 건 만용이고, 나아가야 할 때 물러서는 건 비겁이다. 병사를 보전해야 후일을 도모하고, 힘을 모아야 큰일을 꾀한다. 진퇴를 아는 건 삶의 큰 지혜다.중국 남북조시대 제나라 5대 황제인 명제는 제나라를 세운 고제의 증손인 3, 4대 황제를 차례로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했다. 즉위 후에는 고제의 직손은 물론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무참히 죽였다. 개국 공신인 회계 태수 왕경측이 두려움에 떨었다. 명제 역시 그가 불안했다. 명제가 대부 장괴를 장군에 임명해 회계 인접 지역으로 파견하자 왕경측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 도읍으로 향했고, 도중에 농민들이 가세해 병력이 1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병석에 누운 명제를 대신해 국정을 돌보던 태자 소보권이 피란을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경측이 껄껄 웃었다. “서른여섯 가지 계책 중 도망치는 게 최고의 계책(三十六計走爲上計)이라고 했다. 너희 부자에게 남은 건 이제 도망가는 길밖에 없느니라.” 한데 왕경측은 자신의 운명은 몰랐다. 그는 난전 중 관군에게 포위당해 목이 잘려 죽었다. <자치통감> <제서>에 전해오는 얘기다.<삼십육계>는 36가지 전술을 여섯 항목으로 묶은 병법서다. 5세기까지의 고사(故事)를 17세기 명나라 말에서 청나라 초기에 수집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고사와 교훈이 곳곳에 들어 있어 <손자병법>만큼이나 자주 인용된다. 여기에 나오는 전술 중 하나가 ‘세가 불리하면 도망쳤다가 후일을 도모하는 게 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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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령모개 (朝令暮改)

    ▶ 한자풀이朝: 아침 조令: 하여금 령(영)暮: 저물 모改: 고칠 개‘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 도가의 정수를 담은 <도덕경>에 나오는 문구다. 작은 생선은 별로 먹을 게 없다. 더구나 굽는다고 이리저리 뒤집으면 뼈만 남는다.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100년은 고사하고 10년도 안 돼 이리저리 뒤집으니 그 토대가 허약하다. 뭐가 자주 바뀐다는 건 질서가 여전히 어지럽다는 얘기다.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어사대부 조착은 재정에 밝았다. 백성을 아끼는 마음 또한 지극했다. 당시 흉노족이 수시로 변방을 침략해 곡식을 약탈해 갔다. 허리가 휘는 건 백성이었다. 약탈로 굶주리고, 부역으로 쉴 날이 없었다. 보다 못한 조착이 문제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논귀속소(論貴粟疏), 곡식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상소였다.“부역이 가혹해 다섯 식구 농가에서는 두 사람이 부역에 나갑니다. 홍수나 가뭄을 당한 자에게조차 세금을 징수하고 부역을 시킵니다. 더구나 세금과 부역의 시기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영을 내렸다가 저녁에 고치는(朝令暮改) 일이 많아 백성들은 더 힘이 듭니다….”<사기> 평준서에 나오는 그의 상소문은 백성을 아끼는 마음으로 그득하다. 그는 특히 조령모개(朝令暮改),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치는 식으로 법령을 자주 바꿔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는 자주 법령을 바꿔 위세를 과시하고 이권을 챙기려 한다. 그런 조착은 당연히 조정 대부들에게 눈엣가시였다. 결국 그는 관료들의 시기를 사 죽임을 당했다. 어찌보면 간신보다 충신이 더 많이 사약을 받은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