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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역린 (逆 鱗)

    ▶ 한자풀이逆: 거스를 역鱗: 비늘 린“유세가가 대신을 논하면 군주는 이간질로 여기고, 하급 관리를 논하면 권력을 팔아 사사로이 은혜를 베풀려는 것으로 여기고, 군주의 총애를 받는 자를 논하면 그의 힘을 빌리려는 것으로 여기고, 군주가 미워하는 자를 논하면 군주 자신을 떠보려는 것으로 여긴다.”유가와 법가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은 사상가 한비는 《한비자》 세난(說難)과 난언(難言)에서 말의 어려움을 실감나게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유세(遊說)가 어려운 것은 내 지식으로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유세가 진짜 어려운 건 상대의 의중을 헤아려 거기에 내 말을 맞추는 일이다.한비는 그러면서 용 얘기를 꺼냈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잘만 길들이면 등에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턱밑에 한 자쯤 거꾸로 난 비늘(逆鱗)이 있는데, 이걸 건드리면 누구나 죽임을 당한다. 유세하는 자가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목숨을 잃지 않고 유세도 절반쯤은 먹힌 셈이다.” 한비는 최고의 화술은 수려한 언변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讀心)임을 강조한다. 유세의 핵심은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인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고 감싸는 것이라 한다.동양인, 특히 한국인이 좋아하는 용이 나왔으니 용에 관한 얘기를 덧붙인다. 옛날 중국의 어떤 사람이 천만금을 주고 용 잡는 기술을 완벽히 익혔다. 한데 세상에 나와 용을 잡으려니 용이 없었다. 겉은 그럴듯해도 정작 쓰임새가 없는 것을 이르는 도룡술(屠龍術)의 배경이 된 얘기다. 대선 시즌의 단골 메뉴 잠룡(潛龍)은 《주역》이 출처다. 잠룡은 물에 잠겨 아직 날 준비가 안 된 용이고, 현룡(見龍)은 물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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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미 (白 眉)

    ▶ 한자풀이白: 흰 백眉: 눈썹 미촉나라 유비가 형주를 다스릴 때였다. 형주에는 자(字)에 모두 상(常)이 들어가는 다섯 형제가 있었다. 형주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불렀는데 하나같이 재주가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눈썹이 흰(白眉)’ 마량의 재주가 특출났다. 마량은 어려서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어서 형주 사람들은 그를 흰 눈썹, 즉 백미라고 불렀다. 유비는 그에게 두루 중책을 맡겼고, 제갈량은 마량과 의형제를 맺었다.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참했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마속은 마량의 동생이다.같은 또래, 또는 같은 분야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사람을 백미(白眉)라고 부르는 건 《삼국지》 촉지마량전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쓰임이 넓어져 현재는 사람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일컬을 때도 백미라는 표현을 쓴다. 백미는 재능에 보내는 최고의 칭찬이다.“거지가 시기하는 사람은 백만장자가 아니다. 그건 자기보다 조금 형편이 나은 거지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이다. 인간은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은 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러러보고 존경한다. 시기의 대상은 자기보다 처지가 조금 나은 사람, 자기와 엇비슷한 사람이다. 그러니 당신이 누군가를 시기한다면 그건 당신이 기껏해야 그와 같거나 그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니체는 “경기는 완벽하게 이길수록 좋다”고 했다. 그래야 상대가 아쉬움으로 상처받지 않고 승자를 오롯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거다. 인생이란 게임에서 완승하려면 갈고닦아야 한다. 재능을 닦고, 학문을 닦고, 인품도 닦아야 한다.백(白)은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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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주대토 (守 株 待 兎)

    ▶ 한자풀이守: 지킬 수株: 그루터기 주待: 기다릴 대兎: 토끼 토땀 흘리지 않은 결과물은 초라하다. 세월을 익히지 않은 열매는 조그맣고, 정성을 쏟지 않은 작품은 허접하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게 이치다. 행운이란 것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최선의 부산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춘추전국시대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다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고 죽었다. 뜻하지 않게 토끼 한 마리를 잡은 농부는 다른 토끼도 그렇게 달려와 죽을 줄 알고 쟁기를 세워둔 채 그루터기만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토끼는 다시 나오지 않았고, 농부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한비자》 오두편에 나오는 얘기다.‘토끼를 기다리며 그루터기를 지켜본다’는 수주대토(守株待兎)는 어떤 착각에 빠져 안 될 일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헛된 믿음으로 생각이 완고함을 꼬집는 말이다. 원래 한비는 요순(堯舜)의 이상적인 왕도정치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 이 얘기를 지어냈다. 사람들이 낡은 관습만을 고집하고, 새로운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참고로 어리석음과 연관된 고사성어에 나오는 인물은 주로 송(宋)나라 사람이다. 불필요한 인정을 베풀다 거꾸로 화를 입는다는 송양지인(宋襄之仁), 잔꾀를 부린다는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송나라 사람이다. 중국 역사에 송나라는 세 번 등장하는데, 하·은에 이어 세워진 주나라의 조그마한 제후국이 고사성어에 나오는 그 송나라다. 나라가 작고 세력이 약한 데서 연유하지 않았나 싶다. 남북조 시대의 송나라(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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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즉제인 (先 則 制 人)

    ▶ 한자풀이先: 먼저 선則: 법칙 칙, 곧 즉制: 절제할 제人: 사람 인중국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에 이어 2대 황제에 즉위한 호해는 무능한 폭군이었다. 곳곳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를 세워 스스로 왕에 오르는 자들도 생겨났다. 어느 날 강동 회계의 태수 은통이 오중(지금의 장쑤성 오현)의 실력자 항량을 불러 거사를 의논했다. 항량은 초나라 명장 항연의 아들로, 고향에서 사람을 죽이고 조카 항우와 함께 오중으로 도망친 뒤 뛰어난 통솔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젊은이였다. 은통이 속내를 드러냈다. “지금 곳곳에서 진나라에 반기를 드는 건 나라의 명운이 다했기 때문이오. 내가 듣건대 ‘선손을 쓰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先則制人), 뒤지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 했소. 나는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킬까 하오.”한데 ‘선수를 쳐서 적을 제압한다’는 선즉제인(先則制人)의 병법은 항량이 한 수 위였다. “거병을 하려면 환초를 찾아야 하는데 그의 행방을 아는 자는 제 조카 항우뿐입니다. 지금 밖에 있으니 그를 불러 환초를 데려오라 명하시지요.” “그를 들라 하시오.” 항량은 재빨리 밖으로 나가 항우에게 귀엣말로 일렀다. “내가 눈짓을 하면 즉시 은통의 목을 쳐라.” 은통의 목은 그렇게 날아갔다. 항량은 관아를 접수해 스스로 회계 태수에 오른 뒤 8000여 군사를 이끌고 함양(진나라 수도)으로 진격하다 전사했다. 뒤이어 회계 태수가 된 항우는 5년에 걸쳐 유방과 천하의 패권을 다툰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얘기다.역사는 용기 있는 자가 쓴다. 두려움에 지면 모든 길이 흐려진다. 공포에 지면 흐릿한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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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양지인 (宋 襄 之 仁)

    ▶ 한자풀이宋: 나라 송襄: 도울 양之: 갈 지仁: 어질 인명분은 순리와 이치를 앞세우고 실질은 현실을 중시한다. 베풂은 명분이고, 누구에게 어떻게 베풀지는 실질이다. 베풂이 상대에게 되레 해가 된다면 명분은 맞지만 실질은 어긋난 것이다. 베풂이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송나라 군사가 강을 두고 초나라 군사와 마주했다. 송나라 양공(宋襄)이 강 한쪽에 먼저 진을 쳤다. 막강한 초나라 군대는 송나라 진을 부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송의 군대가 턱없이 약하다고 판단한 장군 목이가 양공에게 간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양공은 듣지 않았다. “그건 의로운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참된 패자가 될 수 있다.”어느 새 초나라 군사는 강을 건너와 진용을 가다듬고 있었다. 목이가 다시 한번 간절히 진언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용을 미처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양공은 재차 무시했다.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싸움의 결과는 이미 짐작했을 거다. 원래 열세였던 송나라 군사는 참패하고, 양공 자신도 허벅지에 입은 부상이 악화돼 이듬해 죽고 말았다. 남송 말부터 원나라 초에 걸쳐 활약한 증선지가 편찬한 《십팔사략》에 나오는 이야기다.‘송양의 어짊’을 뜻하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과한 인정을 베풀다 되레 해를 입는 것을 비유한다. 누구는 조선 500년을 ‘명분의 시대’라고 꼬집는다. 명분만을 좇다 실질을 잃어 나라가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실질이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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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문불여일견 ( 百 聞 不 如 一 見 )

    ▶ 한자풀이百: 일백 백聞: 들을 문不: 아니 부(불)如: 같을 여一: 한 일見: 볼 견판단은 빗나갈 때가 많고, 추론도 오류가 잦다. 책을 단 한 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달랑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논하고, 그게 다 맞다고 우기면 대책이 없다. 조약돌만 한 소견으로 태산을 논하는 건 무지의 오만이다.한나라 9대 황제 선제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의 유목 민족인 강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진압에 나섰으나 대패했다. 선제가 오늘날 검찰총장격인 어사대부 병길에게 토벌군 장수로 누가 적임인지를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에게 물어보라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76세 백전노장이었지만 군사를 거느릴 정도로 힘이 넘쳤다. 7대 황제 무제 때 흉노 토벌에 나선 그는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진해 한나라 군사를 모두 구출했다. 이런 전공으로 싸움터에 나갈 때 깃발을 들고 앞서는 거기(車騎)장군에 임명된 명장이었다. “내가 적임이오. 이 노신을 능가할 자가 어디 있겠소.” 병길이 선제의 뜻을 전하니 그는 선뜻 그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다.조충국이 명장임을 아는 선제가 그를 불러 강족 토벌 대책을 물었다.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군사는 얼마나 필요하겠소.” 그가 답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란 싸움터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니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핀 후 계책을 올리겠습니다.” 선제는 기꺼이 허했다.현지를 둘러본 조충국은 기병보다 둔전병(屯田兵·평시엔 농사를 짓다 전시엔 싸움에 동원되는 병사)을 두는 게 좋다는 방책을 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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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란지위 (累 卵 之 危)

    ▶ 한자풀이累: 포갤 루卵: 알 란之: 갈 지危: 위태할 위먼 나라와 손을 잡고 이웃 국가를 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을 주장한 범저는 본래 위나라 출신이다. 그는 돈도 없고 인맥도 부족해 유세에 나설 노잣돈조차 없었다. 그래서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 수가를 섬겨 그를 수행했다. 한데 범저의 사람됨을 알아본 제나라에서는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많았다. 제나라 양왕은 범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까지 했지만 범저는 이를 사양했다.범저의 인기에 마음이 상한 수가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가 위나라의 기밀을 누설한 대가로 선물을 받았다”고 거짓으로 일러바쳤다. 범저는 모진 고문 끝에 겨우 목숨은 건졌다.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탈출한 범저는 마침 그 무렵 진(秦)나라에서 온 사신 왕계를 따라 진나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범저는 왕계를 통해 진나라 왕을 알현하고자 했는데 그때 그는 왕계를 통해 이런 말을 왕에게 전하도록 했다.“지금 진나라는 ‘달걀을 겹쳐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합니다(累卵之危)’만 신의 유세를 들으신다면 평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범저는 1년여 뒤에 왕을 만나 자신의 계책을 유세했고, 그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은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알을 겹겹이 쌓아놓으면 언젠가 무너져 깨지듯이, 누란지위는 상황이 매우 위태로움을 나타내는 말이다.범저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수가는 어떻게 됐을까. 수가는 범저가 진나라 재상에 오른 사실을 모른 채 다시 진나라에 사신으로 간다. 범저는 몰래 사신 수가의 숙소를 찾았고, 깜짝 놀라 안부를 묻는 수가에게 “날품팔이로 연명한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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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단 (壟 斷)

    ▶ 한자풀이壟: 밭두둑 농(롱)斷: 끊을 단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에 세금이 부과된 연유가 《맹자》 공손추편에 나온다. 맹자가 말했다. “누군들 부귀해지기를 원하지 않겠는가마는 ‘유독 높은 곳’에서 혼자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자가 있다.” 농단은 여기서 언급된 ‘유독 높은 곳’이다. 언덕 농(壟) 끊을 단(斷), 즉 깎아지른 듯이 높은 언덕이 농단이다.맹자의 말을 더 풀어보자. 옛날 시장은 남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모자라는 물건과 맞바꾸는 장소였다. 시장 관리는 그 교환이 바른지를 지켜보는 정도였다. 한데 한 사내, 맹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 천부(賤夫)가 시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壟斷)에 올라가 사람들의 움직임을 꿰고 시장 이익을 그물질하듯 거둬갔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고, 그 이후로 시장에는 세금이 생겼다. 농단은 본래 가파른 언덕 꼭대기란 뜻이었지만 높은 곳에 올라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를 이용해 이익을 독식한다는 뜻으로 쓰임이 옮겨갔다.인간은 누구나 높아지기를 바란다.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이 높아지고, 인기가 높아지기를 꿈꾼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려는 건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높은 곳에선 두루 보인다. 정보가 보이고, 이익이 보이고, 사람이 보인다. 그러니 누구나 높이 오르려 한다. 한비자의 말처럼 한 자 나무도 꼭대기에 서 있으면 천 길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건 나무가 높아서가 아니라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인간은 가장 높을 때, 그리고 가장 낮을 때 민낯을 드러낸다. 높은 곳에서는 거만하고, 낮은 곳에선 비굴해진다. 높은 곳에서 낮추는 게 진정한 인격이다. 높은 곳에서 군림하지 않고, 이익을 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