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풀이
千 : 일천 천
篇 : 책 편
一 : 한 일
律 : 법 률
천 가지 작품이 한 가지 율조라는 뜻으로
어떤 것들이 특성 없이 엇비슷함을 일컬음 -《예원치언(藝苑言)》 등
개성의 시대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차 낡은 구호가 되어가고 있다. 이 시대는 내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일상에서 또는 신문기사 등에서 자주 쓰이는 천편일률(一律千篇)은 ‘천 가지 작품이 한 가지 율조’라는 뜻으로 여러 시문의 격조가 차별 없이 비슷비슷함을 이르는 말이다. 사물이 특성 없이 판에 박은 듯이 엇비슷함을 일컫는 데도 두루 쓰인다. 대동소이(大同小異)도 맥락은 비슷하다. 다만 대동소이가 가치중립적인 뜻을 내포하는 반면 천편일률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천편일률이란 표현은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왕세정(王世貞)은 명나라 후기 고문사(古文辭)파의 지도자가 된 문학가로,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의고주의(擬古主義)를 주창했다. 그의 문학·예술론이 담긴 《예원치언》에는 “백낙천(白樂天)은 나이가 들어 족함을 알라는 글을 썼는데 모든 작품이 천편일률이었다.(白樂天晩更作知足語, 千篇一律)”라는 구절이 나온다.
송나라 문호 소식(蘇軾)도 《답왕양서(答王庠書)》에서 “오늘날 시험에 제출한 문장들은 천 사람의 글이 하나의 격률이어서 시험관들도 역겨워한다(今程試文字, 千人一律, 考官亦厭之)”고 탄식했다. 허균은 《성소부부고》에서 “소식은 텅 빈 듯하면서도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과 경계를 다투지 않으셨다.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즐겁게 어울렸으니 유하혜의 화광동진(和光同塵) 풍모를 갖춘 분이었다. 나는 그분을 본받고 싶지만 역부족이다”라고 썼다. 유하혜는 춘추시대의 현자이고 화광동진이란 재덕을 감추고 속세와 함께한다는 의미다.
내가 스스로 가꾸지 않으면 ‘나다움’은 절로 생기지 않는다. 차별화된 DNA도 노력을 더해야 그 특성이 강해진다. 남들과 천편일률적인 삶이 아닌, 나다운 삶을 살려면 ‘진정한 나’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길은 ‘내가 내게로 돌아오는 길’이다.
千 : 일천 천
篇 : 책 편
一 : 한 일
律 : 법 률
천 가지 작품이 한 가지 율조라는 뜻으로
어떤 것들이 특성 없이 엇비슷함을 일컬음 -《예원치언(藝苑言)》 등
개성의 시대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차 낡은 구호가 되어가고 있다. 이 시대는 내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일상에서 또는 신문기사 등에서 자주 쓰이는 천편일률(一律千篇)은 ‘천 가지 작품이 한 가지 율조’라는 뜻으로 여러 시문의 격조가 차별 없이 비슷비슷함을 이르는 말이다. 사물이 특성 없이 판에 박은 듯이 엇비슷함을 일컫는 데도 두루 쓰인다. 대동소이(大同小異)도 맥락은 비슷하다. 다만 대동소이가 가치중립적인 뜻을 내포하는 반면 천편일률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천편일률이란 표현은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왕세정(王世貞)은 명나라 후기 고문사(古文辭)파의 지도자가 된 문학가로,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의고주의(擬古主義)를 주창했다. 그의 문학·예술론이 담긴 《예원치언》에는 “백낙천(白樂天)은 나이가 들어 족함을 알라는 글을 썼는데 모든 작품이 천편일률이었다.(白樂天晩更作知足語, 千篇一律)”라는 구절이 나온다.
송나라 문호 소식(蘇軾)도 《답왕양서(答王庠書)》에서 “오늘날 시험에 제출한 문장들은 천 사람의 글이 하나의 격률이어서 시험관들도 역겨워한다(今程試文字, 千人一律, 考官亦厭之)”고 탄식했다. 허균은 《성소부부고》에서 “소식은 텅 빈 듯하면서도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과 경계를 다투지 않으셨다.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즐겁게 어울렸으니 유하혜의 화광동진(和光同塵) 풍모를 갖춘 분이었다. 나는 그분을 본받고 싶지만 역부족이다”라고 썼다. 유하혜는 춘추시대의 현자이고 화광동진이란 재덕을 감추고 속세와 함께한다는 의미다.
내가 스스로 가꾸지 않으면 ‘나다움’은 절로 생기지 않는다. 차별화된 DNA도 노력을 더해야 그 특성이 강해진다. 남들과 천편일률적인 삶이 아닌, 나다운 삶을 살려면 ‘진정한 나’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길은 ‘내가 내게로 돌아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