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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이코노미

    사람 대신 로봇 배달원 누비는 에스토니아…물류 일자리 지키고 경제도 성장한 비결은

    ‘수송과 농업에서 기계는 사실상 인간 근력의 필요성을 없애 버렸다. 인간은 무언가를 들고 옮기는 존재에서 벗어나 주로 켜고 끄는 존재, 맞추고 조립하고 수리하는 존재가 되었다.’ 197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실리 레온티에프의 1952년 저서 《기계와 인간》의 한 대목이다. 그는 트랙터가 소와 말을 대신했듯 인간을 기계가 대신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대량실업과 디지털 격차하지만 300년 이상 된 과학기술과 노동문제의 역사는 기술발전이 결코 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18세기 초 영국 노동자의 80퍼센트 이상은 농업 관련 일에 종사했다. 이 시기 짧은 낫을 긴 낫으로 바꿔 서서 일할 수 있게 하자 1에이커를 수확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 정도의 노동절약은 농장 일꾼들로 하여금 기술에 대한 분노를 유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의 기술개발에는 다르게 반응했다.1730년대 등장한 로더럼 쟁기는 기존 2명이 필요했던 노동력을 1명으로 줄였고, 파종기는 뿌리는 씨앗의 양을 70퍼센트나 줄였다. 1780년대 말 등장한 탈곡기는 1에이커 추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반나절로 줄였다. 그 결과 농장의 생산량은 1세기 전보다 1.5배나 늘어났다. 같은 양을 생산할 때 그만큼 노동자들이 덜 필요하다는 의미다. 결국 노동자들은 분노했고, 탈곡기를 파괴했다. 분노는 산업혁명시기에도 계속됐다. 방적공들은 방적기를 발명한 제임스 집을 급습해 기계를 박살냈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의 발전은 멈추지 않았고 일자리는 증가했다.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전환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에스토니아는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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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가 정밀·객관적이라는 건 착각 잘못된 해석은 잘못된 의사결정 부를 수도

    숫자는 정밀하고, 객관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불확실함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숫자에 끌리는 이유다. 과거 숫자를 사용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영역은 아니었다. 대량의 데이터 수집과 저장은 노동집약적이고, 분석 과정은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인 탓이었다. 하지만 전산화된 데이터베이스와 연산 도구가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데이터 세상은 더 민주적으로 변했다. 숫자 중심 의사결정1970년대 퍼스널컴퓨터의 발명이 그 시작이었다. 이전 세대에 선택된 소수만이 누렸던 것을 많은 수의 기업인, 투자자, 기자들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데이터 접속만이 아니라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도구도 대중화시켰다. 기계의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면서 의사결정에 숫자를 이용하려는 추세는 뚜렷하게 증가되었다.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어떤 제품을 생산하고, 얼마의 가격을 책정해 누구에게 판매해야 하는지 결정한다. 이뿐만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도 숫자가 의사결정에 활용된다. 야구가 대표적이다. 마이클 루이스는 그의 책 《머니볼》에서 프로야구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야구는 미국에서 역사가 오래된 스포츠로, 선수들에 대한 통계 수치가 해마다 산더미처럼 쌓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기간 야구에서 의사결정 중심에는 데이터가 아니라 유망주 스카우트와 경기 중 감독의 대응능력, 그리고 선수들의 타격이나 투구 방법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빌리 빈은 숫자의 힘을 이용해 야구 개혁을 일으켰다. 그는 경기에서 나온 무수한 통계 자료를 활용해 어떤 선수를 기용하고, 어떤 식으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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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금 두둑히 쌓아두기만 하고…혁신투자에 주저하는 혁신기업 왜

    2018년 미국 상장 기업들은 1조7000억달러의 현금을 사내에 유보하고 있었다. 전략적 결정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잉여현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애플은 당시 모든 기업이 납부한 연방 법인세보다 많은 2450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했지만, 2012년 이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혁신에 소극적인 기존 기업여전히 많은 모험가가 혁신적인 사업으로 세상에 자신들을 소개한다. 와츠앱과 같이 대기업에 인수되는 형태로 혹은 스포티파이, 우버와 같이 수십억달러의 민간자본을 유치한 뒤 기업공개를 하며 힘들게 혁신을 키워간다. 성공의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 기업 안에서 탄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기존기업도 모험정신에 대한 욕구가 크다. 많은 기존기업은 직원들에게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기를 촉구한다. 일부 기업은 아이디어경진대회를 열기도 하고, 혁신 전담 부서를 신설하거나 사내벤처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 성숙한 기업 내에서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위험에 대해 극단적인 이유기존기업이 혁신에 소극적인 이유는 조직과 개인이 갖는 편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손실회피다. 이는 1달러의 손실이 1달러의 이익보다 더 강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동전을 던져 뒷면이 나올 경우 100달러를 잃는 게임이 있을 경우 앞면이 나올 때 얼마를 받을 수 있어야 참여할지에 대한 결정이 손실회피의 정도를 결정한다. 200달러는 받아야 한다면 손실회피 계수는 2가 된다. 잃을 수 있는 금액이 100만달러로 커진다면 동전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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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왜 '덜 편한' 쿼티 자판을 쓸까

    널리 알려진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많지만,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 쿼티 키보드가 대표적이다. 1936년에 설계된 드보락 자판은 전체 키 중 70%가 자판의 중앙에 위치해 쿼티 자판보다 훨씬 수월하게 타이핑 할 수 있다. 드보락 자판의 우수함은 여러 차례 증명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쿼티 자판을 사용한다. 비디오카세트도 마찬가지다. 베타맥스 방식이 VHS보다 설계가 뛰어나고 가성비가 좋다는 점은 많은 사람이 인식했었지만, 시장을 장악한 것은 VHS였다. 혁신 수용의 어려움새로운 제품과 개념은 아무리 잘 포장되더라도 사회구성원이 가진 기존의 믿음과 사회 규범과 충돌할 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성능이 우수하고, 가성비마저 좋은 제품이 시장에서 선택되지 못하는 경우도 이에 속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더 사용하기 쉽고, 더 눈길을 끌면서도 값싼 제품을 만들어내지만 실패는 계속된다. 시장은 더 우수한 제품보다 익숙한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정책도 유사하다. 1960년대에 발생했던 인구변천 과정에서 등장한 산아제한은 당시의 사회적 규범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이었다. 당시의 한국 문화는 많은 자녀를 낳아 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믿음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던 탓이다. 높은 출산율은 사회적 지위와 개인의 성취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이런 상황에서 산아제한정책은 정착되기가 어려웠다. 물론 많은 자녀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은 선진국에도 존재했다. 차이점은 그들은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족계획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키기까지 몇 세대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의학과 식량 생산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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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상황 속 '강한 유대'…트위터를 띄웠다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점령하는 데 수년이 필요했지만, 코로나는 몇 주면 충분했다. 운송 네트워크의 발달 정도가 그 원인이다. 프랑스 마르세유에 흑사병이 처음 상륙했던 1347년과는 달리 코로나19가 활동을 시작한 2020년은 빠르고 효율적인 운송 네트워크가 존재했다. 엄밀하게 흑사병의 병원균은 세균이고, 코로나19는 바이러스지만 적절한 운송수단만 있다면 퍼져나가는 방식은 모두 동일하다. 강한 유대와 약한 유대하지만 흑사병과 코로나19의 확산 양상은 사회학자 그래노베터의 강한 유대와 약한 유대의 개념으로 살펴보면 조금 달리 해석할 수 있다. 강한 유대란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 같이 신뢰가능한 유대 관계를, 약한 유대란 가끔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의미한다. 강한 유대는 14세기 흑사병의 확산 통로였다. 그 이유는 단지 당시에는 약한 유대가 많이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대다수 사람은 서로 잘 아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평생을 보냈다. 공동체 밖의 세상은 낯선 곳이었다. 정체와 느린 기술과 강한 유대가 큰 특징인 세계였다. 하지만 현대의 운송과 통신기술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오늘날 우리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늘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접촉한다. 무작위로 연결된 이들과 지속적으로 사회적 유대가 형성되진 않지만, 약한 유대는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그래노베터는 강한 유대로 연결된 사람들은 분명 중요한 사람이지만, 대규모 확산의 대부분은 약한 유대로 연결된 사람들을 통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그 원인의 중심에는 중복성이 있다. 누군가 새로운 생각을 전파하려고 시도할 때 강한 유대 내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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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사용자 급증한 게 오프라 윈프리 덕분이었다고?

    오프라 윈프리의 첫 번째 트윗은 자신의 토크쇼에서 이뤄졌다. 2009년 4월 17일, 윈프리는 수백만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트위터에 첫 번째 트윗을 올렸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그달 말에 트위터는 사용자 수가 약 2800만 명으로 불어났다. 윈프리 스토리는 스타트업 성공에 인플루언서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네트워크 주변부의 중요성하지만 윈프리가 트위터를 사용한 것은 트위터의 성공 원인이 아니라 트위터 성공의 결과였다. 윈프리가 첫 번째 트윗을 올릴 무렵 이미 트위터는 성장 곡선에서 가장 빠른 구간에 진입한 상황이었다. 2009년 1월부터 매달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트위터는 사용자가 2월 800만 명에서 4월 초 약 2000만 명으로 치솟았다. 윈프리가 트위터를 사용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네트워크다이내믹스 그룹의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데이먼 센톨라 교수는 그의 책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통해 “어떻게 윈프리의 힘을 빌려 트위터를 확산시켰느냐?”가 아니라 “윈프리마저 트위터를 사용해 이익을 얻을 만큼 트위터가 크게 성장한 비결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으로 작은 스타트업을 누구나 아는 기업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연결이 많은 소셜 스타가 아니라 주변의 행위자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물리학자 라다 아다믹 역시 네크워크 효과의 핵심은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주변의 행위자들이라고 강조한다. 2008년 그는 연구를 통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전체 수보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서 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에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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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실' 못 갖춘 스타트업…팬데믹 후 한계 드러날 것

    가짜 혁신은 시장 교란의 출발점이다. 많은 경우 기존 기업들이 기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시장 교란이 시작된다. 제품에 실질적인 가치 증가와 무관한 기능을 추가하거나 비용 절감 효과나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회원제 클럽을 신설하는 전략, 온라인 예매가 현장보다 복잡한 영화관 시스템, 교육자원이 아닌 고급 숙박 시설에 투자하는 대학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경영진이 내리는 민간요법과 같은 처방이다. 신생기업의 시대기존 기업이 기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품질과 가치를 높이지 못하면 핵심사업이 위태로워진다. 신생기업은 그 틈을 파고든다. 과거에는 그 속도가 빠르지 못했다. 자본을 공급하는 측과 경영진 사이에 힘의 균형이 존재했던 탓이다. 1990년대에는 기술 스타트업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환영받지 못했다. 원대한 비전을 품은 엉뚱한 백인 청년들은 결국 회사 확장을 위해 데려온 나이 들고 노련한 경영자에게 밀려났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설립한 지 5년 만인 1985년 회사에서 쫓겨난 일화는 유명하다. 엉뚱한 백인 청년들로부터 시작된 아이디어는 덜 괴팍한 백인 남자들의 자본으로 확장됐다.하지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 되자 힘의 균형추는 창업자들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있었다. 5년 만에 애플 컴퓨터를 6억달러 가치로 키운 스티브 잡스는 괴팍하고 변덕이 심하다는 이유로 쫓겨났지만, 돌아온 뒤 20년간 애플의 가치는 200배나 증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 역시 자기 회사 가치를 1000억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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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버·아마존 등 거래시 문제 발생하면 중재자 역할

    신용카드 사용이 처음부터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이 카드 발급에 적극적일 만큼 카드를 받아주는 상점이 많지 않았고, 상점들로 하여금 카드를 받도록 설득할 만큼 카드를 소지한 소비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였다. 하지만, 1958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임원 조지프 윌리엄스는 이를 극복하며 신용카드 사업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캘리포니아 주민 200만 명에게 임의로 카드를 발송한 것이다. 신용카드를 들고 있는 소비자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2만여 곳의 가맹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멕스 카드의 성공 사례신용카드는 전형적인 플랫폼 사업이다. 소비자에게는 대출이자와 연체료를, 상점으로부터는 신용카드 거래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부과했다. ‘닭과 달걀의 문제’를 해결하며 플랫폼에 시동을 걸었지만 윌리엄스의 시도는 실패했다. 문제는 연체율이었다.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보유율을 높이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민 중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관련된 고객 200만 명에게 카드를 원하는지와 무관하게 우편으로 발급한 것이 문제였다. 당초 예상 연체율은 4%였으나, 실제로는 25%에 가까웠다. 결국 1959년 말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면서 그의 시도는 끝이 났다. 반면, 1957년 신용카드 사업의 첫발을 뗀 아메리카익스프레스(아멕스)는 달랐다. 아메리카익스프레스는 이미 처음으로 여행자수표 제도를 도입해 소비자로부터 신망이 높았다. 게다가 1차 세계대전 때 미처 유럽을 빠져나오지 못한 미국인들을 아멕스 유럽 지사가 지원하면서 그 명성이 매우 높았다. 아멕스는 자신의 이미지를 잘 활용했다. 아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