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조세의 조건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 수입 비율이 지난해 17.6%까지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0위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기구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조세수입 비율은 15%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2025년 10월18일자 한국경제신문-
한국이 이른바 세금은 적게 걷지만, 그만큼 성장은 못 하는 ‘저세율·저성장 함정’에 빠졌다는 국제기구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기사를 보고 ‘이미 세금 너무 많이 내는 것 같은데 뭘 더 내라는 거지?’라고 느끼는 독자도 많을 텐데요, 한국은 2023년부터 2년 연속 세수(세금 수입)가 예상에 못 미치는 세수 결손 상태에 빠지면서 작년 한 해에만 105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한 바 있지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내는 세금만으론 나라 씀씀이를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것입니다.
세입은 국가가 경제를 굴리는 연료입니다. 세입은 일정 수준을 기준으로 경제성장과 양(+)의 관계를 갖습니다. IMF가 세계 169개국의 1800~2011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조세 비율 15%를 넘어서는 국가의 1인당 GDP는 15% 미만 국가보다 약 10%p 빨리 증가했다고 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 세금을 거두고, 그 재원으로 정부가 도로와 철도, 공항 등 인프라부터 교육과 기초과학 연구, 국방과 경찰 등 시장에 맡겨 공급이 충분치 않은 분야에 투자해야 경제성장이 이뤄질 수 있단 것이지요.
한국의 경우 지방세를 제외한 국세 수입 비율은 2024년 13.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2023년 기준 38개 선진국 평균(27.5%)의 절반 수준이고, 저소득 개발도상국 58개국 평균(13%)과 비슷하다고 하니 조금 특이한 것은 사실이지요.
오랜 기간 국내외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세수 기반은 넓히고 세율은 낮출 것”을 제안해왔습니다. IMF는 구체적으로 “법정세율을 높이기보다 부가가치세를 높이고 면세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는데요, 왜 이런 답을 제시하는 것일까요.
경제학에선 좋은 조세의 원칙 몇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형평성입니다. 비슷한 능력에는 비슷하게(수평적 형평), 더 큰 능력에는 그에 걸맞게(수직적 형평) 부담할 때 납세자의 저항이 최소화될 수 있습니다. 둘째, 확실성과 단순성입니다. 누가 얼마를 언제 내는지가 예측 가능해야 납세 순응도가 높아집니다.
셋째, 효율성(중립성)입니다. 세금이 소비·저축·투자 같은 의사결정을 과도하게 왜곡하지 않아야 합니다. 넷째, 충분성과 안정성입니다. 경기가 흔들려도 필수 지출을 감당할 세입이 확보돼야 합니다.
경제적 관점에선 중립성이 특히 중요합니다. 세금은 높은 확률로 시장을 왜곡시킵니다. 세금은 누구에게 부과되더라도 생산비(공급자 관점)나 구매 가격(소비자 관점)을 높입니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원하는 수준보다 소비를 적게 하고, 생산자 역시 최적 수준보다 덜 생산하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선 지불용의와 관계없이 재화나 서비스가 배분되는 왜곡이 일어나고, 사회 전체의 후생은 감소합니다. 조세의 중립성은 세금이 이처럼 경제주체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교란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세율은 낮게, 세원은 넓게”란 명제는 이 같은 조세 원칙에 기반합니다. 세율이 높아지면 탈세·회피 유인이 커지고, 근로·투자·생산 등 경제활동이 위축됩니다. 세금으로 인한 자원배분의 왜곡, 즉 사중손실이 커집니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100원의 조세가 부과되면 사회적으론 27원의 사중손실이 발생한다고 하지요.
광범위한 세원은 소수의 납세자에 세금 부담이 집중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세율은 낮추되, 최대한 많은 사람과 기업이 세금 부담에 참여하게 되면 세수의 안정성과 조세 형평성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작년 말 기준 한국 근로소득자의 33%가 소득세를 100% 면제받았습니다. 법인세를 면제받은 법인도 지난해 기준 54%에 달했습니다. 반면 소득세, 법인세와 함께 3대 세수인 부가가치세율(10%)은 OECD 평균(18%)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부가가치세는 인상하되 소득세나 법인세 세율은 낮추라는 전문가들의 제언은 경제학적으로 타당성이 있습니다. 부가가치세는 모든 재화나 용역에 동일하게 과세하기에 자원배분에 미치는 왜곡 효과가 최소화됩니다. 탈세 가능성도 적고, 소득세나 법인세에 비해 경기 변동의 영향도 덜 받아 안정적 세수 확보도 가능하지요.
반면 소득세나 법인세의 경우 가계나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취득·양도세 같은 거래세 역시 경제주체의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 자원배분의 왜곡을 야기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도 소비만 하면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만만찮습니다. 소득세나 법인세는 누진 구조를 통해 더 많이 버는 개인이나 기업이 더 세금을 많이 내지만, 부가가치세는 부자와 빈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반면 부자는 많이 번 만큼 비싼 물건을 사고, 빈자는 싼 물건을 사기 때문에 부가가치세가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NIE 포인트
2. 경제학적으로 좋은 조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3. 부가가치세가 형평성을 저해하는지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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