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뱅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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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주도한 민간 채무탕감 기관 ‘주빌리은행’이 부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새 정부 출범 후 금융당국이 시민단체 등 비영리법인도 부실채권을 매입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나서면서다. -2025년 6월10일자 한국경제신문-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빚을 조정, 탕감하는 ‘배드뱅크(Bad bank)’ 설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누적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금융 기구인 배드뱅크를 설립해 연체 채권을 사들여 소각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입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코로나19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만기가 연장된 대출금액은 약 50조원에 달합니다. 이 빚은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으로 만들어진 만큼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고, 채무 탕감이 실물 경제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란 게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생각입니다. 하지만 경제학계 일각에선 일회성 채무조정이 오히려 자영업자의 자활과 실물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배드뱅크는 은행 등 기존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부실채권을 인수한 뒤 이를 정리·재조정하는 특수목적기구입니다. 업계에선 정부가 한국자산관리공사, 신용회복위원회, 민간 재단 등 공공기금이나 비영리법인을 핵심 축으로 금융권으로부터 취약계층 부실 대출을 싸게 사들여 소각하는 방식을 유력하게 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론 주빌리은행 모델이 유력하게 거론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출범시킨 주빌리은행은 채무 탕감을 위해 금융회사의 장기 연체 채권을 원금의 3~5% 가격에 사들였습니다. 그러고는 연체된 채무자가 원금의 7%를 갚으면 나머지를 전부 소각해줬습니다. 현재는 재정 문제로 채권 소각이 중단됐지만 총 5만1500여 명의 채권자가 8100억원 규모의 채무를 탕감받았습니다.

배드뱅크 정책을 추진하는 측은 이 같은 채무 탕감이 거시경제 전반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은행권은 부실채권을 외부로 이전해 대차대조표를 건전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이 회복되고, 신용공급 여력이 회복돼 중소기업과 가계에 대한 신규 대출이 촉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동성 확대는 이른바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를 통해 실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측의 주장입니다. 정부나 금융기관이 자금을 공급하면, 그 자금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며 추가적인 소득과 고용 창출로 이어집니다. 특히 소비 성향이 높은 소상공인 계층의 채무를 탕감해줄 경우, 그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 예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는 연방주택융자조정프로그램(HAMP)을 통해 채무자의 대출 조건을 완화했는데요, 이를 통해 총 170만 가구가 주택 압류를 피했다고 합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HAMP에 참여한 가구가 재연체율이 낮았고, 소비가 더 빨리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중장기적으론 더 큰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입니다. 정부가 부실채권을 떠안아주는 선례가 반복되면 채무자들은 위험 감수 없이 과도한 차입을 하게 됩니다. 채무자들은 정부가 채무를 탕감해줄 것을 알지만, 정부는 채무자들의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금융기관들 역시 문제가 생겨도 결국 정부가 부실을 막아줄 것이라 믿으면 대출 심사를 느슨하게 운영할 유인이 생깁니다. 채무 탕감 정책이 오히려 부채 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요.

형평성 문제도 상당합니다. 지난 코로나19로 진 빚을 갚기 위해 그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원리금을 상환해온 자영업자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채무 탕감 정책은 이처럼 성실한 상환자들이 상대적으로 손실을 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채무 탕감이 결국은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정부가 직접 부실채권 인수에 나서거나, 공공기금이 이를 뒷받침할 경우 결국 국가 부채가 증가하게 됩니다.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시장에 채권 공급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채권 가격이 하락하며, 결국 채권 금리가 올라가게 됩니다.

높아진 국가채무비율이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져 우리 금융기관의 조달 금리 자체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금리인상이 다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금융비용 증가라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재명표 채무 탕감 정책은 경기 회복을 위한 ‘신의 한 수’가 될까요. 아니면 또 다른 부실의 시작이 될까요. 귀추가 주목됩니다. NIE 포인트
황정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황정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1. 이재명 정부의 배드뱅크 정책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2. 채무 탕감이 어떻게 경기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 분석해보자.

3. 이 정책이 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