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정책 무력성과 정책 시차
“정부나 중앙은행이 경기침체에 더 빨리 대응했어야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 정책의 시행 시기를 둘러싼 논쟁은 항상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정책이 무력하거나, 오히려 경기 변동성을 확대한다고 보는 경제학파가 있었습니다. 새고전학파와 합리적 기대이론‘새고전학파’라 불리는 이들은 경기에 대응한 정책 시행이 오히려 경기 변동성을 높인다고 주장했지요. 이들 학파의 이론적 바탕이 된 배경에는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이 있습니다. 당시 주류이던 케인스학파는 물가상승을 주로 총수요 증가로 설명했기에 공급 충격으로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에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때 새고전학파는 시장의 불균형은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신속하게 조정되고, 모든 경제주체는 현재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합리적 기대 이론’으로 ‘정책 무력성’을 주장했지요.

[테샛 공부합시다]일관된 정책으로 시장 신뢰 얻는 게 중요
이들은 ‘예상된 정책’과 ‘예상하지 못한 정책’으로 나눠서 분석했습니다. 정책당국이 통화량을 늘릴 것이라는 점을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면, 명목임금과 가격을 선제적으로 조정하고, 그 결과 정책의 실질적 효과는 사라지고 물가만 상승합니다. 반면 당국이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정책을 시행하면 단기적으로 실업이 줄고 산출량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경제주체가 물가상승을 인지하면, 실질임금과 산출량은 다시 이전 수준으로 회귀합니다. 이 과정에서 물가는 상승한 상태로 남고, 장기적으로 실질 효과는 사라집니다. 결국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경제의 불확실성만 높아집니다. 그러나 경제주체가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어렵고, 가격 변수가 경직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이들의 가정이 현실에 모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정책 시행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그렇다면 실제로 경제정책이 경기 변동성을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정책 시차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책 시차에는 ‘내부시차’와 ‘외부시차’가 있습니다. 내부시차는 ‘인식 시차’와 ‘실행 시차’로 구분되지요. 인식 시차란 정책당국이 경제 상태를 인식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실행 시차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외부시차는 정책 시행 이후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재정정책은 내부시차가 깁니다. 경기침체를 인식하고 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입안부터 국회 통과, 사업 집행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지요. 반면 통화정책은 내부시차는 짧지만, 파급효과가 나타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 외부시차가 깁니다. 그래서 두 정책 모두 경기가 이미 회복되거나 하락한 이후에 효과가 나타나 오히려 경기 변동성을 심화할 수 있지요. 코로나19 시기 물가상승 조짐이 있었지만, 기준금리 인상이 늦어져 물가가 급등했고, 이후 급격한 금리인상은 경기 급랭을 초래했습니다. 이처럼 정책당국이 판단을 잘못해 정책을 시행하면 오히려 경기 변동성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경제지표를 고려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경제주체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