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112) 영국 경제위기의 역사
‘신사의 나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축구 종주국.’ 이 모두를 지칭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영국입니다. 대영제국이라 불렸을 만큼 한때 세계 패권을 쥐기도 했고, 현재 국내총생산(GDP) 세계 6위를 기록하며 저력을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요즘 영국 경제 문제로 세계 경제가 시끄럽습니다. 1976년과 1992년 영국의 위기
[테샛 공부합시다] 잘못된 정책 방향은 선진국도 경제위기에 빠뜨려
먼저 1970년대 영국 경제위기를 살펴봅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복지제도를 강화하고 정부 규모를 키웠죠. 그러자 재정은 악화되고, 생산성도 하락해 고비용·저효율의 노동시장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1970년대는 ‘오일쇼크’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죠. 이에 따라 영국의 무역적자는 심화됐고, 재정적자와 치솟는 물가가 결합해 파운드화가 폭락했습니다. 결국 영국은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했고, 집권당인 노동당은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에 패배하죠.

1990년대에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번엔 환율 문제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 속해 독일 마르크화를 기준으로 환율 변동폭을 관리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통일 후 동독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고, 물가를 관리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매우 높게 올렸습니다. 이에 따라 ERM에 속한 여러 나라도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외환 보유액을 풀어 환율을 방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극심해지면서 여러 나라가 ERM을 탈퇴했죠. 하지만 영국은 유럽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ERM 체제에서 파운드화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1992년 9월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파운드화 공매도에 나섰습니다. 이와 함께 국제 투자자의 매도가 이어지자 환율을 방어하느라 영국의 외환 보유액은 크게 줄었습니다. 파운드화 위기가 발생했고, 보수당은 경제위기를 가져온 책임으로 총선에서 노동당에 패배합니다. 트러스 내각이 붕괴된 이유는?최근 영국은 사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으로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감세안이 왜 국제 시장 참가자들에게 외면받았을까요? 영국은 9월 물가 상승률이 작년 같은 달 대비 10.1%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40년 만의 최고치죠.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니 영국중앙은행(BOE)은 기준금리를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올리고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경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50년 만의 최대 규모인 450억파운드(약 70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감세에 따른 공공지출 축소가 필요하다고 봤죠. 시장의 물음에도 트러스 총리는 감세안만 밀어붙였고, 시장 참가자들은 영국 파운드화와 국채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과거와 이번 위기의 공통점은 정부가 경제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지 않고 정책을 펴면 국민 경제를 어렵게 하고 정치 지형까지 바꾼다는 점입니다. 경제정책 실패는 민심도 돌아서게 합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