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52) 발해는 한민족의 역사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52) 발해는 한민족의 역사


중국과 신라 기록에는 ‘진(振·震)’ ‘발해’ ‘북국’ 등의 용어가 있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태도를 바꿔 ‘말갈국’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발해인들의 자의식과 자기 발언, 일본의 기록으로 볼 때 첫 국호는 ‘고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구려 유민들로 구성된 발해발해는 대부분 고구려 유민들로 구성됐다. 《삼국사기》는 ‘발해말갈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 별종이다’, 또 발해를 무척 싫어한 최치원은 ‘고구려의 잔당들이 무리를 모아 북쪽의 태백산 밑을 근거지로 삼아 나라 이름을 발해라 했다’고 기록해 발해민은 고구려의 후예임을 알려줬다. 《삼국유사》는 ‘《신라고기》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옛 장수인 조영은 성이 대(大)씨이며, 남은 병사들을 모아 태백산 남쪽에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발해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중국의 《구당서》는 ‘(발해) 풍속이 고구려 및 거란과 같다’고 했고,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 별종이다(大祚榮者 本高麗別種也)’고 썼다. 중국은 ‘별종’을 강조하면서 다른 종족이라는 듯 주장하지만, ‘고려(고구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高麗本夫餘別種也)’나 ‘백제는 부여의 별종이다(百濟夫餘別種也)’ 등에서 볼 수 있듯 ‘별종’은 갈래 집단임을 표현한 단어다.
또 일본인들은 역사책 《류취국사》의 말갈 서술 부분을 인용해 발해의 지배층은 소수의 고구려 유민이고, 피지배층은 다수의 말갈인이라고 주장했고, 한국은 이를 추종했다. 그런데 이는 북만주와 동만주, 연해주 일대의 거친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숫자, 관리 방식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소수인 속말말갈(말갈의 한 부족)은 본래 고구려의 구성원이었고, 발해는 이를 계승했을 뿐이다. 당연히 ‘대씨’ ‘고씨’ 등의 고구려 유민들이 주도한 혼합종족체제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天孫으로 칭한 발해 왕고구려 계승성은 발해민들의 자의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속일본기》에는 발해 임금이 스스로를 ‘천손(天孫)’으로 칭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 정효공주묘의 묘지(墓誌)에 따르면 문왕은 ‘황상(皇上)’ ‘성법대왕’이란 호칭을 받았고, ‘대흥’ ‘보력’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이후 11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임금이 연호를 사용했다. 또 황제국체제처럼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이란 봉작을 사용했고, 지방 토착세력을 ‘수령’이라고 불렀다. 반면 통일신라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자의식이 미약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 밖에도 고구려 계승성은 온돌, 복식, 무덤과 축성 양식을 비롯해 제철 기술, 말 사육과 무역 등의 산업, 매사냥 등의 풍습 등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 기억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