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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숫자로 읽는 세상

    TSMC "일본 2공장도 구마모토에 짓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규슈 구마모토 1공장을 찾았다. 최대 10조 원이 넘는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만큼 고용과 투자의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목적에서다. TSMC는 1공장과 같은 구마모토 기쿠요마치 지역에 2공장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반도체 부활’ 움직임이 갈수록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7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지난 6일 TSMC 구마모토 1공장을 방문해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 등을 만났다. 지난 2월에 개소한 이 공장은 시험 생산을 거쳐 올해 4분기 본격적인 상업 생산을 시작한다. 12~28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 수준의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월 5만5000장 이상 제조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이 공장 투자비 1조3000억 엔(약 11조5000억 원)의 절반에 달하는 4760억 엔을 지원한다.기시다 총리는 TSMC 구마모토 1공장에 대해 “일본 전체에 큰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라며 “현지 경제성장이나 임금인상, 고용 확대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공장의 현지 조달률이 2030년 6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규슈경제조사협회는 구마모토 지역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의 경제 효과가 2021년부터 10년간 10조5360억 엔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웨이 CEO는 기시다 총리에게 구마모토 2공장과 관련, “1공장이 있는 기쿠요마치에 건설한다”고 밝혔다. 2공장 건설 계획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입지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2공장은 연내 건설을 시작해 2027년 말에 가동할 계획이다. 일본 내에선 가장 첨단인 6nm 수준의 반도체를 생산한다. 일본 정부는 이 공장에도 7320억 엔을

  • 사진으로 보는 세상

    일본, 17년 만에 금리 인상…마이너스 금리 종결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지난 19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했다. 일본은행은 2016년 2월에 도입한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통해 은행이 돈을 맡기면 일부 자금에 -0.1%의 단기 정책 금리(당좌예금 정책 잔고 금리)를 적용해왔는데, 이번에 단기금리를 올려 0∼0.1%로 유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마이너스금리 정책에서 8년 만에 벗어나게 됐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 테샛 공부합시다

    경제정책 따라 희비 엇갈린 일본과 중국

    지난 12일 일본 도쿄 증시는 3년 6개월 만에 시가총액에서 중국 상하이 증시를 제쳤다고 합니다. 일본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지수(사진)도 33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기세가 무섭습니다. 주식시장은 외국인투자자가 해당 나라의 미래 성장성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두 나라의 희비가 엇갈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 장기 불황과 극복일본은 1980년대까지 세계 곳곳에 일본 상품을 수출하면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요. 물론 이에 반발하는 나라도 생겼습니다. 바로 미국이었죠. 당시 미국은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에 대한 달러화의 평가절하를 이루어냈죠. 일본은 엔화 가치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해지자 금리인하로 경기침체에 대응했지요.일본의 가계와 기업은 낮은 대출 금리로 국내외 부동산 및 주식에 집중 투자하자 이들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우려한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출을 규제하고 금리를 올리자 일본 장기불황이 시작됐습니다. 경제주체는 불황이 오자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빚을 갚아야 했죠. 이에 따라 기업은 투자와 고용 감소, 가계는 소비 감소로 물가 수준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물가가 상승하고, 정부가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산업 투자 장려와 주식 시장 활성화에 나서는 등 기나긴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탈출하는 모습입니다. 주가가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요. 중국

  • 역사 기타

    이기면 남는장사…배상금 뜯어내며 침략전쟁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부터 이토 히로부미가 서구식 내각 제도를 수립하고 초대 총리로 취임하는 1885년까지 일본은 하루도 쉬지 않고 근대화에 매진했다. 성실하게 두 번의 내전(보신 전쟁·세이난 전쟁)을 치렀고, 성실하게 구미(歐美)를 베끼며 내치를 다졌다. 이제 그만 성실해도 되련만 이들에게 뒤늦게 ‘중2병’이 찾아오면서 일본은 갑자기 성실한 불량 학생이 된다. 정한론(征韓論)으로 시작된 힘 자랑과 욕심 채우기를 전쟁이라는 최악의 방식으로 펼친 것이다. 외우기 편하게 이들은 10년 단위로 큰 전쟁을 치렀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14년 세계대전이다. 전쟁 목록은 이게 다가 아니다. 큰 전쟁 사이마다 작은 전쟁이 있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중간에 타이완 정복전쟁과 의화단 전쟁을 치렀고, 러일전쟁 후에는 대한제국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의병 투쟁을 진압했다. 이후에도 일본의 전쟁 주도 성장은 계속된다. 세계대전이 휴전 상태로 접어든 1918년에는 시베리아로 출병해 1922년까지 주둔했고(남들은 다 철수), 1931년에는 만주사변을,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1941년에는 대망의 대동아전쟁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전쟁으로 흥했다가 전쟁으로 망한 ‘전흥전망’의 나라가 19세기 말, 20세기 중반의 일본이다. 전쟁이 이익이 된다는 사실은 아편전쟁에서 배웠다. 자기들이 먼저 침략해놓고 상대가 반항하면 이를 진압한 뒤 배상금을 받아내는 수법이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챙긴 배상금은 랴오둥반도를 반환하면서 받은 환부금 포함 3억6000만 엔이다. 일본 1년 국가 예산의 3~5년 치인데(재정 규모가 7000만 엔에서 1억 엔까지 책마다

  • 생글기자

    일본 원전 오염수, '과학'과 '과학의 한계' 동시에 봐야

    일본 정부가 올해 예정대로 후쿠시마원전 방사능 오염수(냉각수)를 바다로 방류할 계획이다. 정화시설(ALPS)을 거치면 대부분의 방사능 물질이 걸러지며, 남아 있는 삼중수소도 바닷물에 희석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1000개에 달하는 저장 탱크에 보관 중인 오염수는 이미 ALPS 처리 과정을 거쳤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일본 정부의 해양 방출 계획은 기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염수 방류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한국 등 주변국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작년 후쿠시마 근해에서 잡힌 생선에서 기준치의 14배에 달하는 세슘이 검출되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안전하다”는 주장은 ALPS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오염수에 남을 최종 방사성 물질이 무엇인지도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반면 삼중수소와 관련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방류되는 오염수는 태평양을 돌아 4~5년 뒤 우리 근해에 도달하겠지만, 우리 해역의 삼중수소 농도를 불과 10만분의 1 증가시킬 뿐이다. 또 후쿠시마에 저장된 삼중수소의 방사능은 1년에 빗물로 동해에 떨어지는 삼중수소의 방사능과 비슷하다고 한다. 무의미한 수준의 삼중수소 방출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다. 오염수 방류 문제는 정치 공방을 위한 괴담 수준이 아니라 철저하게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 물론 과학의 한계를 동시에 봐야 한다. 아울러 국제사회가 신뢰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의 오염수 관리를 통제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김유민 생글기자(동탄고 2학년)

  • 커버스토리

    세계 6위 수출강국 한국 올해 일본을 추월하나?

    한국 수출액이 일본을 추월하기 직전입니다. 지난 1월부터 9월 말까지 한국의 수출액은 5247억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은 5585억달러입니다. 한국이 일본보다 338억달러 적습니다. 수출 격차가 역사상 가장 많이 좁혀졌습니다. 일본을 넘어설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말이 나옵니다.한·일 수출액 역전이 실현되면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나올 반응은 극과 극일 겁니다. 수출 규모에서 우리가 일본을 넘어선 적은 없습니다.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약 40년 전인 1980년대 수출 실적을 보면 두 나라의 격차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우리의 수출액이 일본의 13.4%에 불과했으니까요. 일본이 세계 시장에서 날아다닐 때 우리는 걸음마 단계에 있었던 거죠.2022년이 끝나기 전에 역전할 수 있다는 예측이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 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우리의 총수출액은 69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추세가 나쁘지 않습니다. 지난 9개월간 우리의 수출 증가율은 2021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3% 증가했지만, 일본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연말까지 우리는 늘고 일본은 줄어든다면 338억달러 차이는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9개월 실적으로 따지면 한국은 세계 6위입니다. 일본이 5위죠. 5, 6위가 바뀔까요? ‘월드컵 16강 진출’만큼 흥미진진합니다. 한국 무역(수출+수입) 스토리를 공부해봅시다. 올해 한국 수출총액 6900억달러 예상…일본을 추월한다면 세계가 놀랄 뉴스죠수출은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라 안에서 많이 생산해서 나라 밖에서 많이 내다 판다는 뜻이니까요. 100만원어치보다 1억원, 10억원, 100억원어치를 파는 것이 훨씬 낫죠. 일자

  • 숫자로 읽는 세상

    엔저에 수입물가 치솟아…日, 4분기 만에 '역성장'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4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했다. 엔화 약세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이 경제 성장을 짓눌렀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내수 위축도 원인으로 꼽힌다.일본 내각부는 지난 3분기 물가 변동 영향을 제외한 실질 GDP가 전 분기보다 연율 기준으로 1.2% 감소했다고 15일 발표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1.2%)를 크게 밑도는 성적이다. GDP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3분기(-2.5%) 후 처음이다.일본 경제는 지난 2분기까지만 해도 4.6%에 달하는 고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엔화 약세로 원자재 등 수입 비용이 불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3분기 수출이 직전 분기보다 1.9% 늘어난 반면 수입은 5.2% 급증했다. S&P 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의 다구치 하루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엔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면 일본 기업들은 비용 증가로 타격을 받는다”며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품에 비용을 쉽게 전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코로나19 재확산으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8월 일본에선 하루 신규 확진자가 20만 명대를 기록했다.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소비가 둔화했다. 지난 2분기 1.3%를 기록한 민간 소비는 3분기 0.3%로 감소했다.허세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 커버스토리

    이건희 타계 1주기…기업가 정신을 되새기다

    생글생글은 3주 전 아이폰을 만든 ‘미국의 영웅’ 스티브 잡스를 기리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가 아이폰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애플을 어떤 기업으로 성장시켰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획이었습니다.생글은 이번주에 타계 1주기(10월 25일)를 맞은 ‘한국의 영웅’ 이건희 삼성 회장을 되돌아보는 커버스토리를 준비했습니다. 자원과 기술이 척박했던 한국에서 이 회장이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 사업을 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삼성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되짚어 보려는 것이죠.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1987년 삼성 지휘봉을 잡은 이 회장은 30년 만에 삼성을 반도체와 휴대폰 부문에서 ‘월클 레전드’ 기업으로 올려 놨습니다. 이 회장이 이룬 업적은 잡스의 업적보다 결코 못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는 돈도, 자원도, 인재도, 시장도 넘치지만 한국 사정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꽉 잡고 있던 반도체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세계적 기업들이 쥐락펴락하는 휴대폰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이 회장은 다 바꿀 것을 삼성 식구들에게 호소했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냈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봐”는 그가 남긴 대표적인 말입니다. 그리고 삼성에 초일류 DNA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이 회장이 월급쟁이 경영자였다면 이런 변신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는 미래라는 불확실성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혁신한 기업가였습니다. 설탕, 밀가루, 라디오, TV 생산에 만족하면서 회사를 꾸렸다면 지금 같은 삼성은 없었겠지요. 이것을 우리는 기업가 정신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