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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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기자
중국의 역사·문화 왜곡, 강경하게 대응해야
중국의 이른바 ‘문화 공정’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중국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복이 명나라에서 유래한 것이라거나 김치의 원조가 중국의 파오차이라는 등의 주장을 했다.중국이 이처럼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중국이 자신들의 전통 문화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국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당시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추진하면서 고유의 전통을 파괴해 버렸다. 이는 중국의 문화 역량을 크게 해치는 결과를 낳았고,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의 문화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그다음으로는 소수 민족의 독립을 막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 중국에는 한족 외에 55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중국의 전통과는 다른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매우 두려워하는 일 중 하나가 이 소수 민족들의 독립 움직임이다. 중국이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이유도 이 지역의 독립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다.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 민족의 문화를 자국 문화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역사마저 자국의 역사라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도 이런 움직임의 하나다. 중국의 역사·문화 왜곡은 언젠가는 우리에 대한 침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역사 왜곡, 문화 침탈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천지윤 생글기자(대전성모여고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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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고구려 영토와 부여의 풍속 계승한 '황제국' 발해…중국·일본 옛 기록도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 서술
나라가 망해 포로가 돼서도 굴복하지 않은 채 30년 동안 기회를 노리다가 복국(復國)의 희망을 안고 대탈출을 감행한 발해인들. 2000여 리(里·800여㎞) 길에 겪은 고생도 그렇지만, 그 마음과 꿈을 떠올리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2002년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을 추진하면서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변조하고, 발해를 말갈인이 세운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모든 박물관, 전시관, 역사책, 교과서에서 ‘발해’를 지웠으며, 때때로 ‘발해도독부(都督府)’라고 서술한다. 첫 국호는 ‘고려’로 추정발해는 우리의 역사인가? 중국의 역사인가? 발해의 고구려 정통성과 한민족 계열성은 국호와 주민들 성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727년에 2대 무왕은 유민들의 상황을 살펴보고, 국교를 수립할 목적으로 일본국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그런데 하이(아이누족) 땅에 표착한 24명 가운데 수령인 고제덕 등 8명만 생존했다. 갖고 간 국서(國書)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 부여에서 전해 내려온 풍속을 간직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3대 문왕이 보낸 국서에도 ‘고(구)려의 왕 대흠무가 말한다…’고 썼다. 일본 또한 ‘발해는 옛날 고구려다’고 기록했으며(《속일본기》), 발해에 파견한 사신을 ‘고려사’라고 불렀다. 초기에 파견한 사신단에는 유민으로 정착한 ‘고려씨’들이 포함됐고, 당시 목간이나 그릇, 파편 등에는 ‘고려’라는 글자가 남아 있다.중국과 신라 기록에는 ‘진(振·震)’ ‘발해’ ‘북국’ 등의 용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