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생글생글 715호 2021년 7월 12일

경제사 이야기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전쟁의 정당한 몫을 받기 위해 요구하라"…3000년 전에도 불거진 ''분배 정의'' 목소리


노력한 만큼 공평한 보상을 해달라는 ‘분배의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3000년 전 그리스 세계에서 처음 나왔다.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테르시테스가 처음으로 평등을 외쳤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전반적으로 귀족주의적 사상을 밑바탕에 둔 작품이다. 모든 좋은 것은 귀족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은 용모도 출중하고, 부유하며 용감하다. 성품도 훌륭하고 전투도 잘할 뿐 아니라 회의에서 말도 잘한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좁은 농경사회 전통이 강한 분위기 속에서 지도자들은 운명적으로 리더의 자질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왕에게 반기를 든 ‘예외적 평민’ 테르시테스
반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명의 병사들은 영웅의 명예와 전공을 빛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병사 대다수는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배경이다. 주인공급을 제외한 호메로스 작품 속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단일하고 밀착된 존재다. 그들은 변덕이 심하고 무책임한 신들에 의해 장기판의 졸처럼 움직인다. 그들은 또 별다른 존재 가치가 없기도 하다.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전장에 나와달라”고 부탁하러 간 사람들(귀족들)은 자신들이 아카이아인 대다수를 대신해서 부탁하는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주인공 격인 영웅과 신을 제외한 인물들은 그나마 죽을 때에나 개인으로서의 존재가 조명받았다. 호메로스의 언어에는 생명을 가진 인간의 영혼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다. 육체에 해당하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 생명이나 삶으로 번역되는 희랍(그리스)어 ‘프쉬케’는 호메로스 작품 속에선 오로지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가리킬 때만 사용됐다. 그런 호메로스가 이례적으로 아버지의 이름도 소개하지 않은 평민, 테르시테스의 주장을 상세히 소개한다. 《일리아스》에서는 정말 드문 비영웅적인, 예외적 인물 테르시테스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장면은 《일리아스》 2권 211~240행이다.

테르시테스의 외모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이 연상될 정도로 볼품없다. “일리오스에 온 사람 중에서 가장 못생긴 자로 안짱다리에다 한쪽 발을 절고, 두 어깨는 굽어 가슴 쪽으로 오므라져 있었다. 어깨 위에는 원뿔 모양 머리가 얹혀 있고 거기에 가는 털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라는 게 호메로스의 묘사다. 그는 외모만큼 성격도 좋지 않았다.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을 지속적으로 비난했고, 그 때문에 호메로스 서사시의 영웅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그런 테르시테스가 불멸의 명성을 남기게 된 것은 희랍 동맹군의 수장이자 거부인 아가멤논에게 직언을 하는 장면 때문이다.

“아트레우스의 아들(아가멤논)이여 무엇이 모자라서 불만이시오? 그대의 막사들은 청동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 아카이아인들이 도시를 함락할 때마다 고르고 골라 맨 먼저 그대에게 바친 여인이 많이 있지 않소! 그대는 나나 다른 아카이아인 누군가가 사로잡은 아들의 몸값으로 일리오스에서 황금을 가져오기를 바라는 것이오? 아니면 그대 혼자서 붙들어 놓고 사랑을 즐기기 위해 젊은 여인을 원하는 것이오. 아카이아인의 아들들을 불행으로 인도하는 것은 지휘자가 된 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오. 저 양반(아가멤논)은 이곳 트로이아 땅에서 명예의 선물이나 실컷 탐식하게 내버려두고 우리는 함선을 타고 고향으로 떠납시다.”

비록 무능하고 못난 병사이기는 하지만 왕이나 지휘관을 비난하고 불만을 늘어놓는 데서는 앞장서는 용감한 모습이다. 그는 아가멤논이 훌륭한 희랍군의 지도자 자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간의 불화로 희랍군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를 비롯한 보통의 평범한 희랍 병사들에게 있어 트로이와의 9년 전쟁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싸움이 아니었다.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명예를 찾아주고자 하는 일에 불과했다. 전쟁은 왕과 귀족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목숨 걸고 피 흘리며 싸운 전쟁의 성과물이나 노예는 모두 왕들의 차지가 됐다. 이런 상황을 놓고 테르시테스는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동료 병사들을 ‘계집’과 같다고 비난하면서 “정당한 몫을 받기 위한 요구를 하든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외받는 보통 병사들의 불평등에 대한 울분, 분노가 직설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후대 사상가들이 테르시테스의 역할 높게 평가
이 같은 테르시테스의 연설은 후대 사상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철학자 헤겔이 평민의 대변자로 테르시테스의 역할을 주목했고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니체부터 현대의 에드워드 사이드까지 ‘테르시테스주의’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테르시테스의 역할을 높게 평가했다.

테르시테스의 파격적인 주장은 오디세우스의 폭행과 폭언에 의해 제압됐다. 오디세우스는 그가 아가멤논을 조롱한 것을 두고 “테르시테스의 옷을 다 벗기고 매질로 응징하겠다”고 맹세하고 실행했다. 오디세우스에게 등과 어깨를 얻어맞은 테르시테스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테르시테스의 주장은 오디세우스로 대변되는 왕과 귀족 사회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형태임을 방증한 것이다. 하층계급의 분노는 공동체에서 승인받기 어려운 형태의 감정이었다.

동료 병사들은 테르시테스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테르시테스가 흠씬 두들겨 맞을 때도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테르시테스가 오디세우스에게 얻어맞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동료들도 괴로워했다고 호메로스는 기술했다. 모두들 겉으로 표현은 못 했지만 테르시테스에 대한 처벌이 부당하다고 느꼈다는 점은 시인한 셈이다. 인류사 최초의 ‘평등’의 목소리는 그렇게 반향을 얻었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
① 분배의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나눠주는 것일까 아니면 필요·능력·업적에 따라 나눠야 할까.

② 역사는 뛰어난 지도력과 도덕성 등을 갖춘 영웅(hero)에 의해 움직일까, 피땀을 흘리며 각자 맡은 일을 한 국민(people)이 이끌어갈까.

③ 그리스의 인본주의(휴머니즘)가 후대에 바로 이어지지 못하고 14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가서야 재조명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