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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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전쟁의 정당한 몫을 받기 위해 요구하라"…3000년 전에도 불거진 '분배 정의' 목소리
노력한 만큼 공평한 보상을 해달라는 ‘분배의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3000년 전 그리스 세계에서 처음 나왔다.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테르시테스가 처음으로 평등을 외쳤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전반적으로 귀족주의적 사상을 밑바탕에 둔 작품이다. 모든 좋은 것은 귀족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은 용모도 출중하고, 부유하며 용감하다. 성품도 훌륭하고 전투도 잘할 뿐 아니라 회의에서 말도 잘한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좁은 농경사회 전통이 강한 분위기 속에서 지도자들은 운명적으로 리더의 자질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왕에게 반기를 든 ‘예외적 평민’ 테르시테스반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명의 병사들은 영웅의 명예와 전공을 빛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병사 대다수는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배경이다. 주인공급을 제외한 호메로스 작품 속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단일하고 밀착된 존재다. 그들은 변덕이 심하고 무책임한 신들에 의해 장기판의 졸처럼 움직인다. 그들은 또 별다른 존재 가치가 없기도 하다.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전장에 나와달라”고 부탁하러 간 사람들(귀족들)은 자신들이 아카이아인 대다수를 대신해서 부탁하는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주인공 격인 영웅과 신을 제외한 인물들은 그나마 죽을 때에나 개인으로서의 존재가 조명받았다. 호메로스의 언어에는 생명을 가진 인간의 영혼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다. 육체에 해당하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 생명이나 삶으로 번역되는 희랍(그리스)어 ‘프쉬케’는 호메로스 작품 속에선 오로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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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44) 헤겔 (상): 헤겔의 변증법
헤겔 철학은 칸트가 멈춰선 바로 그곳에서 출발한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물자체’라고 하는 세계의 본 모습을 알 수 없으며 단지 그것이 나타난 현상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하며, 이성의 권한을 제한하는 지적 겸손을 보였다. 그런데 헤겔은 모든 것을 낳고 그 구석구석까지 꿰뚫어보는 신적 이성을 제시함으로써 칸트가 이성의 인식 능력의 한계라고 선언한 물자체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이 물자체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바로 헤겔 변증법이다.대부분의 사람은 ‘변증법’ 하면 헤겔을 떠올리고 그 내용이 ‘정(正)·반(反)·합(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헤겔은 변증법을 정·반·합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사실 정·반·합의 변증법은 독일 철학자 피히테가 말한 것으로, 헤겔은 이러한 변증법을 도식적이라고 비판한다. 헤겔은 변증법을 살아 있는 현실의 운동하는 원리 자체로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오늘 친구를 만났다. 나는 떡볶이를 먹고 싶은데, 친구는 야구장에 가자고 한다. 그럴 때 정(正)은 떡볶이를 먹는 것이고, 반(反)은 야구장을 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 둘의 합(合)은 무엇일까? ‘야구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논리는 변증법과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반’은 모순적으로 ‘정’에서 도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모순 관계이다. 그런데 앞의 예시는 모순이 아니라 반대 관계이다. 모순은 둘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밀알→잎과 줄기→새 밀알이제 변증법의 예를 살펴보자. 변증법이란 밀알이 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