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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87호 2020년 12월 14일

경제사 이야기

양념이 어떻게 금보다 비쌀 수 있을까


인류가 향신료를 이용한 것은 BC 300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메르의 기록에 향신료와 허브에 관한 내용이 있다. 고대 이집트는 미라의 방부 처리에 여러 가지 향신료를 사용했다. BC 1224년 사망한 파라오 람세스 2세 미라의 코에서 후추 열매가 여러 개 발견되었다. 영생과 부활을 기원한 것이다. 후추는 인도가 원산지라는 점에서 당시에도 인도와 이집트 간에 교역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향신료는 적은 양으로도 고기의 풍미를 확 바꿔준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부패를 막는 효과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향신료를 약재로 이용했다. ‘향신료의 왕’으로 불린 후추는 화폐로도 통용되어 세금 납부나 뇌물 수수에 이용되었다.
현금처럼 다 되는 후추
향신료는 매우 다양하다. 고추 생강 마늘 겨자 파 부추처럼 향이 나고 매운 식물은 모두 향신료로 분류된다. 식물의 잎, 꽃, 열매, 줄기 등 다양한 부위에서 얻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주목받은 열대식물인 후추 계피 정향 육두구를 이르러 ‘4대 향신료’라고 한다. 후추와 계피는 지금도 흔하지만 정향과 육두구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다. 정향은 향신료 중 유일하게 꽃봉오리에서 얻는데 꽃봉오리의 생김새가 한자 ‘丁(정)’자를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이다. 치약이 없던 시절에 주로 구취 제거, 치통 완화, 감기약 등으로 쓰였다. 육두구는 20m까지 자라는 육두구나무 열매의 씨앗이다. 영어로 ‘nutmeg’는 ‘사향냄새가 나는 호두’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위장을 보호하고 설사를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어 중국에서는 BC 2000년께부터 쓰였다.

4대 향신료는 원산지와 주된 수요처 간 거리가 멀었기에 비쌀 수밖에 없었다. 흔히 후추, 계피를 금값에 비유했지만 정향과 육두구는 그보다 10배 더 비쌌다. 향신료 무역은 고대부터 인도양의 이슬람 상인이 주도했다. 동방의 향신료가 인도양, 홍해를 지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모이면 지금의 레바논, 시리아 일대인 레반트의 상인들이 유럽 각지로 공급했다. 중국은 4000년 전부터 향신료를 다양한 용도로 이용했다. 이렇듯 인도, 동남아를 중심으로 향신료를 각지로 공급하던 유라시아 대륙의 육로와 항로를 통틀어 ‘스파이스 로드’라고 부른다.
향신료 찾아 3만 리
12~13세기 십자군전쟁으로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이 싸우면서 스파이스 로드가 크게 위축되었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슬람권에서 들여오는 향신료는 양이 턱없이 부족했고 가격도 비쌌다. 설상가상으로 오스만튀르크제국이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한 뒤 향신료에 엄청난 세금을 붙여 가격은 더 뛰었다. 유럽 각국이 직접 향신료를 구하러 나서게 된 배경이다.

근대사 초기는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한 유럽 열강들의 각축전으로 출발했다. 인도네시아의 몰루카제도에 첫발을 디딘 것은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은 유럽 서쪽 끝에 위치했고, 이슬람 지배를 오래 받으면서 기술적으로는 다른 유럽 국가들을 앞서 있었다. ‘항해왕’ 엔히크 왕자의 후원 아래 15세기 국가 사업으로 대항해에 나서며 먼저 인도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은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며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다.

이에 자극받은 스페인에서는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3척의 배를 이끌고 남미의 최남단 마젤란해협을 돌아 태평양을 횡단했다. 이듬해 3월에는 필리핀을 거쳐 몰루카제도에 도착해 포르투갈과 반대로 서쪽을 도는 항로를 개척했다. 마젤란은 필리핀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사망했지만, 그의 부하들이 에스파냐로 귀환해 세계 일주를 완성했다. 이후 몰루카제도는 포르투갈이 독차지했고, 스페인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다.

향신료 무역의 독점권을 잃게 된 오스만제국은 홍해 함대를 인도양에 파견해 인도양의 포르투갈 무역 거점들을 공격했다. 설상가상으로 포르투갈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이슬람 세력에 패해 국왕이 전사하는 위기에 처했다. 이 틈을 비집고 스페인이 향신료 무역을 잠식했다. 급기야 1580년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 왕을 겸하는 병합 상태가 1640년까지 이어졌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vs 영국 동인도회사
16세기 말에는 유럽 항로를 장악한 해양 강국 네덜란드가 향신료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네덜란드는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다국적 기업인 동인도회사(VOC)를 설립했다. VOC는 국가가 아닌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운영하면서도 국가로부터 군사 행정 권한을 위임받은 사실상의 정부 기구였다. VOC는 영국 동인도회사(EIC)보다 2년 늦게 설립됐지만, 자본금 규모는 거의 10배에 달했다.

네덜란드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158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기에 처음에는 영국과 우호적이었다. 두 나라의 동인도회사는 향신료 무역의 첨병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무역 항로를 쟁취하는 데도 공동보조를 취했다. 1620년대에 네덜란드가 차지한 인도네시아에 EIC 상인들이 진출했던 연유다. 영국은 포르투갈의 인도 항로를 탈취해 후추 무역에 나섰지만, 값비싼 정향과 육두구는 네덜란드가 독차지했다.

네덜란드는 1641년 말레이반도 끝자락의 말라카항까지 점령했다. 네덜란드는 향신료 독점으로 17세기에 호황을 누렸다. 네덜란드는 2차 영국-네덜란드전쟁의 대가로 육두구 산지이자 반다제도의 작은 화산섬인 룬섬을 지키는 대신 뉴암스테르담(뉴욕)을 영국에 넘겼다. 향신료에 국가 역량을 집중했지만 이는 훗날 오판으로 드러났다. 18세기 들어 향신료 재배지가 확대되자 가격이 폭락한 탓이다. 반면 영국은 동인도제도에서 밀려나 인도 공략에 치중했다. 인도는 엄청난 노동력에다 면화 후추 커피는 물론 아편까지 재배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물품화폐 역할을 한 후추 등과 달리 여전히 금이 높은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② 십자군 전쟁이 유럽 역사에 미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무엇일까.

③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와 영국에는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는 상업거점 확보를 통한 식민지배의 첨병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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