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수렁'에 빠진 경제

1953년 1인 소득 67弗 최빈국
2017년 처음 3만불 넘었는데
성장 둔화되고 환율 상승
선진국 대열서 다시 이탈 우려
서울 명동거리가 최근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1.3% 줄었다. 연합뉴스
서울 명동거리가 최근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1.3% 줄었다. 연합뉴스
한국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하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제는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며 2017년 3만1734달러를 기록했다. 이때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3050클럽(인구 5000만 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인 국가)’에 진입한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한국 외에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이 클럽에 가입했다.

하지만 올해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밑돌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뒷걸음질치고 있어서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원화가치마저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하고 있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달러로 환산한 국내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70년 새 1인당 국민소득 500배 불어

195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67달러)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낮았다. 1963년(104달러) 처음 100달러를 돌파했지만 당시 가나(208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은 물론 콩고(154달러) 캄보디아(118달러)보다도 낮았다.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1~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바탕으로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1977년(1053달러)에는 1000달러를 넘어섰다. 1994년에 1만357달러를 기록하며 1만달러대에 진입했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1만3351달러를 달성한 19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8190달러) 1만달러를 밑돌기도 했지만, 이듬해 다시 1만달러대로 복귀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2006년(2만1664달러)에는 2만달러대로 올라섰지만 3만달러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08~2009년 2년 연속 1인당 국민소득이 쪼그라들었다. 2010년부터는 2015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증가한 결과 2017년에 마침내 3만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500배가량 불어났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10년 만에 최대폭 감소

불어나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꺾인다. 3만2115달러로 전년(3만3564달러)에 비해 4.3% 감소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줄어든 것은 2015년(-1.9%) 후 처음이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0.4%) 후 최대 감소폭이었다. 국민소득의 흐름은 크게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원화가치에 좌우된다. 지난해는 이들 지표가 모두 나빠졌다. 지난해 실질 GDP 증가율은 2.0%에 그쳤다.

이 와중에 지난해 평균 원화가치는 미국 달러에 비해 5.9% 하락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8년 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21위였다. 하지만 지난해 감소하면서 순위가 20위권 중후반대로 밀려났을 것이란 추정이 나오고 있다.

올해 3만달러 선마저 위협받아

코로나19 충격이 확산하고 있어 올해 1인당 국민소득과 성장률 전망도 어둡다. 1인당 국민소득은 올해도 줄어들 것이 유력한 가운데 3만달러 선을 유지하기조차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0.2%로 제시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민간소비·수출·설비투자 등이 일제히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은은 민간소비 증가율을 종전 1.9%에서 -1.4%로 대폭 낮춰 잡았다. 이는 1998년(-11.9%) 이후 최저치다. 소비자들이 장기간 바깥 활동을 자제하면서 지갑을 닫고 있다는 점이 반영됐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4.7%에서 1.5%, 상품수출 증가율은 1.9%에서 -2.1%로 줄줄이 낮춰졌다.

1인당 국민소득을 결정하는 또 다른 변수인 환율도 흔들리고 있다. 올해 1~5월 평균 원·달러 환율은 1207원34전으로 지난해 연평균(1166원7전)을 크게 웃돈다. 그만큼 원화가치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시장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전개 상황과 미·중 갈등 수위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올해 연평균 환율이 1233원60전을 웃돌면 3만달러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밑돌 경우 다시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그리스는 2008년 3만달러를 돌파했지만 이듬해 2만달러대로 떨어져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은 2007년 3만달러를 넘었다가 남유럽 재정위기를 겪던 2012년 2만달러로 추락한 이후 2018년에야 겨우 3만달러를 넘어섰다. 독일은 1995년 3만달러를 넘었다가 1997년 2만달러대로 추락한 뒤 2003년에야 3만달러대로 복귀했다.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lovepen@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선진국, 중진국,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을 가르는 기준이 학자마다 다른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선진국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까.
② 6·25전쟁을 겪은 최빈국이며 천연자원이나 축적된 자본도 없었던 대한민국이 세계 일곱 번째로 ‘3050클럽’에 가입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③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코로나19 사태로 2만달러대로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4만달러대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