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지난 60년간 양국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일본은 제국주의 침탈에 사과하는 듯하면서도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는 등 헷갈리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가깝고도 먼 나라’였죠. 그런데 숫자를 보면 놀랍습니다. 양국 교역액은 작년 773억 달러를 기록하며 60년간 350배 늘었습니다. 한국의 수출국 순위에서 일본은 4위, 일본 수출국 가운데엔 한국이 3위에 올라 있습니다. 인적·문화적 교류도 급팽창했어요. 작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일본인은 322만 명, 일본 방문 한국인은 822만 명에 달했습니다.
지금 세계는 미국발 관세전쟁, 곳곳의 군사적 충돌 등으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지난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만난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이런 어려움에 주목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집 같은 관계”라며 “양국이 많은 부분에서 협력하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시바 총리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간단치 않았던 한·일 국교 정상화의 과정과 이후 역사, 현재 양국의 위상을 살펴보고 미래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극심한 국론분열 부른 한·일 국교정상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기준점 잡아줘

‘경제 마중물’ 대일 청구권 자금
박 대통령은 비밀 협상을 밀어붙인 끝에 1965년 6월 22일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합니다. 이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차관 1억 달러 등 총 8억 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을 받게 됩니다. 무상이란 갚을 의무가 없는 것이고, 유상은 상환 의무가 있는 부채를 말합니다. 식민지 피해 배상을 위한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의 경협 자금을 받은 겁니다.
문제는 개인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누락된 점입니다. 이는 위안부와 강제징용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는 계기였습니다. 함께 체결된 어업협정 등에선 독도 인근의 어로 구역을 공동수역으로 설정해 독도 영유권 분쟁의 불씨가 되고 말았죠.
경협 자금은 공교롭게도 지금의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종잣돈이 됐습니다. 대표적으로 8억 달러 가운데 7370만 달러가 포항제철(현 포스코) 건립 자금으로 쓰였습니다. 박태준 당시 포철 회장은 “선조들의 핏값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건설하는 만큼 실패하면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한다”는 ‘우향우’ 정신으로 직원들의 분발을 촉구했어요. 회사 창립 5년 만인 1973년 6월, 한국 역사상 최초로 대형 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낸 포스코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일본 “통절한 반성” 했지만…
우리나라는 1988년 민주화 이후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적인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노력이 컸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해야 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한·일 간 안보협력이 중요해졌죠. 그래서 김 대통령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등 유화정책을 쓰며 일본에 다가갔습니다.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김 대통령은 당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갖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 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 국민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습니다. 통절은 ‘뼈에 사무치게 절실한’이란 뜻인데요, 어려운 한자이기도 해서 당시 큰 화제를 모았어요. 선언은 또 43개의 행동계획(액션플랜)을 통해 정치·경제·문화 등 분야에서 전방위적 교류와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이 선언은 일본이 식민 지배에 대해 명확히 사과하고 한국은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어가자고 다짐한 데 의의가 있습니다.
역사 갈등 해법 찾아나갈까
이후에도 신사참배나 독도 망언 등이 부른 역사 갈등은 양국 관계의 발목을 계속 잡았습니다. 특히 2018년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측에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 지으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죠. 다음 해인 2019년 일본은 반도체 제조의 핵심 소재 3종에 대해 한국 수출을 규제했어요. 이는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성격이 짙었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겠다며 강경하게 대응했죠. 이런 날 선 대립도 달라진 세계정세 앞에선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지난주 한·일 정상회담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했고, 이시바 일본 총리도 “한·일 간 협력이 세계에 더 많은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질곡의 역사 갈등이 해법을 찾아갈지 주목됩니다. NIE 포인트 1.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구체적 내용과 역사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2. 일본의 역사 인식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3,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서 반일 감정이 과학적 사고를 방해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대등한 수준된 한국과 일본
미래세대의 상호 이해로 협력할 때

강점 명확한 한국과 일본
정부도 그랬습니다. 1960~1980년대 한국 정부는 일본식 모델에 따라 중화학공업 육성, 수출주도형 경제,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구축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선 일본의 장기 침체를 교훈 삼아 신기술과 정보기술(IT) 등 신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이제 한국의 경제 성적표는 일본에 필적합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이 3만6700달러 수준으로 일본(3만4500달러대)을 제쳤습니다. 제조업 경쟁력과 국가신용등급 등에서도 뒤지지 않아요. 하지만 경제 규모(국내총생산 기준)는 아직 일본이 우리나라의 3배입니다. 기초과학·소재·부품 등 원천기술 분야에선 일본이 여전히 앞서 있습니다. 서로 힘을 합치면 장단점을 보완하고 도울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됐습니다.
경제안보 시대 협력 중요
지금은 경제가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경제안보 시대입니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국발 관세전쟁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경제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양국은 모두 중국에 대한 원자재·부품·시장 의존도가 높아 미·중 갈등이 심화될 경우 공급망 단절 위험에 직면합니다. 양국이 공급망 다각화와 기술 표준화 등에서 협력해야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요. 전문가들은 한·일 양국이 ‘전략적 미들파워(middle power)’로서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글로벌 무역 질서와 규범 창출에 기여할 기회라고 지적합니다.
민간에선 이런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오하이오에서 일본 혼다와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산한 배터리는 미국 내 혼다 공장으로 옮겨집니다. 미·중 갈등으로 미국 현지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일본 해운사가 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중국에서 HD현대중공업으로 돌린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 안보협력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어요. 중국의 군사력 강화, 러시아의 군사행동,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동북아 안보 환경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통으로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는 과거만 극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어요.
“미래세대, 더 많이 만나야”
건전한 한·일 관계의 기초는 이미 마련돼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인의 최고 관광지이고, 한류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이자 문화현상입니다. 지금 일본에선 ‘4차 한류’가 불고 있다고 합니다. 만두 같은 한국 식품부터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생활을 바꾸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일본 수입 화장품 가운데 한국산은 2022년부터 프랑스를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세대의 상호 이해입니다. 혐한·혐일 등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려면 서로 자주 만나야 하죠. 예를 들어, 비교역사 수업의 도입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이는 양국 청소년이 상대국의 역사를 ‘적의 시선’이 아닌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배울 수 있는 수업을 말합니다. 한·일 대학생 교류와 같은 프로그램도 주목됩니다. 이런 모임에서 기후위기나 디지털 분야 협력 과제를 논의하고 공동의 해답을 찾아가다 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지고 깊어질 겁니다. NIE 포인트 1. 우리나라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 사례를 살펴보자.
2. 한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 국가경쟁력 순위 등 비교 자료를 찾아보자.
3. ‘공급망 재편’이 무엇이고, 어떤 파급효과가 있는지 공부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