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요즘 로펌의 신입 변호사 수요가 많이 줄고 있다고 합니다. 판례 분석, 법률 조항 검색 같은 업무를 주로 신입 변호사에게 맡겼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이 AI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입을 뽑아 차근차근 가르쳐가며 전문 인력을 양성하던 시스템이 AI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국내 고용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상용직 근로자 수는 총 1674만 명으로 1년 전보다 7000명 감소했습니다. 이런 일이 26년 만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30대 상용직 근로자 중 전문·과학·기술 서비스 업종에서만 7만6000명이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다수가 연구개발·건축·엔지니어링·법무·회계 서비스 등 고숙련 전문직에서 발생했습니다. 혹시 AI 영향 때문은 아닐까요?
이런 현상을 놓고 ‘화이트칼라 전문직 노동의 종말’, ‘화이트칼라 대학살’이란 자극적 표현도 나옵니다. 과연 그렇게 봐야 할지 아직은 헷갈립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챗GPT 출시 이후 전체 고용률 자체엔 뚜렷한 변화가 없었지만,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에서 초년차 근로자의 고용이 16% 줄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적어도 전 직종의 붕괴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분명한 것은 “AI는 내 동료”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AI가 사람과 함께 출근하고 어떤 경우엔 사람 대신 출근하는 시대가 얼마 안 있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이는 생글생글에서 몇 번 다룬 주제인데요,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빨라 한 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AI라는 망치, 제대로 때릴 줄 아는 능력이 중요"
분야의 본질을 아는 숙련자 될 때 생존할 수 있죠
음악시장에선 AI의 상업적 성과가 숫자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디저에 따르면 전 세계 플랫폼에는 하루 평균 5만 곡의 AI 생성 음악이 업로드됩니다. 이는 하루 신규 업로드 트랙의 34%에 달합니다. 품질도 크게 뒤지지 않습니다. 8개국 9000명을 대상으로 한 디저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선 응답자의 97%가 인간이 만든 음악과 AI 생성 음악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일반인이 AI로 작곡한 곡을 동호인 등과 공유하며 즐기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빌보드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실험적 장르가 아닌, 흐름의 가속화”라고 평가했어요.
“AI는 조력자”…재편되는 일자리
직업별로 AI를 활용하는 사례를 보면 일자리가 소멸한다기보다 재편되는 쪽에 가깝습니다. 교사를 돕는 AI가 대표적입니다. 경기도교육청의 AI 학습 플랫폼 ‘하이 러닝’의 AI는 학생별 학습 데이터를 진단해 기초학력 부진 학생에게 맞춤형 보충 콘텐츠와 챗봇 기반 학습 가이드를 제공합니다. 사람 교사는 학생의 상황을 이해한 다음,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지요. ‘AI는 거들 뿐, 교육은 교사가 한다’는 원칙이 작용한 결과인데요, 사람과 AI 간에 적절한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에서 전 세계 일자리의 22%가 5년 안에 새로 창출되거나 소멸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가장 빠르게 줄어드는 직군은 데이터 입력원, 비서직, 계산원처럼 반복적인 사무직입니다. 반면 빠르게 늘어나는 직군은 AI 전문가, 재생에너지 엔지니어, 돌봄·교육 관련 직무입니다. 이런 AI가 과연 ‘일자리 파괴자’인지, ‘사람의 최대 조력자’인지 따져볼 일입니다.
‘경력 사다리’ 유지도 중요
그렇다면 사람 노동자는 어떤 경쟁력을 갖춰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한때 AI 엔지니어는 살아남을 것이란 전망에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기업이 AI 모델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정교한 질문(프롬프트)을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일을 맡는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거대언어모델(LLM)이 점점 더 대화를 잘 이해하고 맥락을 잘 읽게 되면서 완벽한 질문을 던지는 기술은 전문가만이 아닌, 모든 사용자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 됐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과 보스턴컨설팅그룹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AI를 활용해 생산성이 가장 향상된 집단은 AI 공학 기술은 부족해도 특정 분야의 지식은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AI라는 망치를 쥐었을 때 어디를 때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 분야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 AI로부터 가장 큰 효용을 얻은 것이죠. 질문의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아는 안목이 진짜 경쟁력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회계·법률시장에선 고도의 판단과 자문 능력을 갖췄느냐가 생존의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영 지표와 법 조문 너머의 맥락을 읽고 책임을 지는 인간 노동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방송에선 속보 전달 외에 뉴스 현장의 판단력, 깊이 있는 취재력 등이 부각되고, 교육에선 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신뢰를 쌓아가는 관계 형성과 윤리적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겁니다. 물론 AI 때문에 견습과 신입 단계의 노동자를 숙련된 일꾼으로 길러내는 시스템이 파괴될 위험성은 있습니다. 각 분야의 ‘경력 사다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NIE 포인트 1. AI가 잘하는 일과 사람이 잘하는 일은 어떻게 구분될까?
2. AI는 노동자를 대체하는가, 생산성 향상을 돕는가?
3.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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