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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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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가 연일 대폭락하면서 지난주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983년 뉴욕상업거래소가 원유를 거래한 이후 최저 가격이다. 유가 급락은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유·조선·건설 등 국내 전통 산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정유업체들은 원유를 정제해 생산한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원유 도입 가격보다 더 낮아 손실을 보며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석유를 뽑아내도 이익이 별로 남지 않으니 원유 관련 프로젝트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수요 감소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다.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반갑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주유소에서 싸게 기름을 넣을 수 있으니 개인의 가처분 소득도 증가한다.

하지만 석유 수요가 줄어들면 글로벌 경기가 악화되고 결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의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 경영이 악화되면 가계 경제도 도미노처럼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유가 하락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국제 유가 하락은 통상 국내 정유회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원재료 값이 떨어져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속도와 수요다. 최근처럼 유가가 두 달 사이 반토막 날 정도로 빠르게 떨어지거나 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면 정유회사는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처한다.

원유를 구입해 한국으로 실어와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기까지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두 달 전 가격으로 중동지역으로부터 원유를 들여온다. 유조선에 실려 들어온 원유를 울산과 전남 여수 등 정유공장에서 정제해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을 생산해 판매한다. 원유를 배로 실어 나르는 사이 국제 유가가 반토막이 난 동시에 석유제품 가격이 급락하면서 정유회사는 마진(수익)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재고 손실까지 떠안아야 하는 이중고에 몰리고 있다.

수요 위축과 석유제품 가격 하락으로 SK이노베이션(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업계의 정제마진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뺀 것이다. 4~5달러는 돼야 정유사들에 이익이 남는다.

지난달 국내 정유사의 정제마진은 배럴당 -1.1달러로 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 이마저도 고도화 설비를 100% 적용했을 때를 가정한 수치다. 지난해 3월 정제마진이 배럴당 4.5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유가 급락으로 고통받는 기업들

오래된 설비가 대부분인 국내 정유회사들의 정제마진 악화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게 정유업계 전언이다. 이를 고려하면 하루 250만 배럴가량의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정유사의 정제마진 손실 금액이 600억원에 달한다. 재고와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환손실을 추가하면 700억원까지 치솟는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동에서 원유를 수송하는 동안 유가가 급락하고, 석유제품 가격은 더 떨어지면서 제품 판매 손실과 재고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증권가에선 국내 정유업계 1분기 영업손실이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지만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것 외엔 딱히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현대오일뱅크가 올 하반기 예정된 충남 대산의 제2공장 정기보수를 이달 8일부터 앞당겨 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공장 가동률을 100%에서 85%로 낮춘 SK에너지는 울산 공장의 정기보수를 앞당겨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에쓰오일도 조만간 정기보수 계획을 발표할 방침이다.

저유가 공포는 건설사와 조선업체로 넘어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국내 건설사 해외 수주의 60%를 차지하는 중동 산유국의 플랜트 공사가 취소되거나 발주가 잇달아 연기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세계 선박 발주량은 236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1년 전(820만CGT)보다 71.2% 급감(클락슨리서치)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배럴당 50~60달러 선에서도 가뭄에 콩 나듯 하던 해양 플랜트 발주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LNG선 유조선 등 건조 수요도 덩달아 줄었다. 해외 자원 개발을 주도해온 국내 종합상사들도 저유가 직격탄을 맞았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미얀마 가스전 사업은 유가 급락으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국내 휘발유 값은 왜 ‘찔끔’ 떨어질까

국내 휘발유, 경유 등의 가격은 한 달 전 L당 1500원대에서 최근 1300원대로 13~15% 떨어졌다. 원유 가격이 반토막 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찔끔’ 하락한 상황이다. 휘발유 가격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높은 세금 비중 때문이다.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 가격에는 약 60%의 세금이 고정적으로 부과된다. 휘발유가 1300원이면 800원이 세금이란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휘발유·경유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선 세금 인하를 통해 소비자 가격을 그만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NIE 포인트

①유가 하락이 국내 에너지 비용 감소와 세계 경제 침체에 따른 국내 수출 감소 중 어디에 더 영향을 미칠까.
②국제 유가 급락에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③세계 경제 침체에도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석유 수입과 해외자원 개발을 계속 확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