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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모순덩어리 세상에서 안진진이 선택한 모순

    1998년에 발간된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은 100만 부를 기록한 후 지금도 종합베스트셀러 20위권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 개정판을 낸 이래 100쇄를 돌파하며 계속 각광받는 일은 극히 드문 현상이다.1955년생인 양귀자 작가는 1980~19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한 문인으로 <원미동 사람들>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모순>까지 연이어 세 권을 밀리언셀러에 진입시킨 전설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모순>이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다. 한 세대 전에 발간한 <모순>이 어떻게 이 시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억센 엄마와 우아한 이모<모순>의 주인공 25세 안진진은 오늘의 젊은 세대와 다름없는 아픔과 고민을 안고 있다. 안진진은 힘든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휴학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나영규와 김장우를 동시에 만나는 중이다. 안진진의 어머니는 쌍둥이로 태어났고, 자매는 똑같은 환경에서 살다가 25세에 결혼했다. 이후 자매는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걷는다.알코올의존자로 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집을 나가자 안진진의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하며 점점 억센 아줌마로 변모한다. 안진진의 이모는 멋진 저택에서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우아한 삶을 영위한다. 어린 시절 안진진은 부끄러운 엄마 대신 세련된 이모를 학교로 부르는 깜찍한 일도 벌인다.쌍둥이 자매의 자녀들도 극명하게 갈린다. 안진진은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두 번 가출했고, 동생 진모는 조무래기 부하 몇몇을 거느린 어설픈 조폭이 됐다. 이모의 두 자녀는 해외로 유학 가서 좋은 성적을 내며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한다.안진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크리스마스 이브 대소동 끝에 만난 사랑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소설은 대개 이브에 대소동을 겪은 후 기적의 성탄절을 맞이하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세 편의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얽혀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다 함께 웃는 < 렛 잇 스노우>는 고교생 세 쌍이 사랑을 찾거나 회복하는 이야기로 기적에 로맨스까지 더한다.모린 존슨 <주빌레 익스프레스>, 존 그린 <크리스마스의 기적>, 로렌 미라클 <돼지들의 수호신> 세 편으로 구성된 베스트셀러 <렛 잇 스노우>는 유니버설 픽쳐스에서 영화로도 만들었다. 3명의 작가는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최고의 청소년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특히 존 그린은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저자로, 마이클 L. 프린츠 상과 에드거 앨런 포 상 등 권위 있는 상을 다수 수상했다.새로운 사랑이 싹트는 크리스마스<렛 잇 스노우>는 50년 만의 폭설이 쏟아진 그레이스 타운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첫 번째 이야기 <주빌레 익스프레스>는 플로비 산타 마을 모형을 사러 간 주빌레의 부모가 과열된 구매 열기로 인한 다툼으로 유치장에 갇히면서 시작된다. 부모는 이웃집 변호사에게 전화해 주빌레가 플로리다의 할아버지 댁에 가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한다.16세의 고교생 주빌레가 탄 기차는 폭설로 그레이스 타운에서 멈추고 만다. 힘들게 와플하우스로 이동한 주빌레는 처음 만난 스튜어트의 제안으로 그의 집으로 향한다. 개울에 빠지는 등 온갖 고생 끝에 도착한 두 사람을 스튜어트의 어머니가 따뜻하게 맞이한다.주빌레가 전화로 기막힌 상황을 남자친구 노아에게 털어놓지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하루아침에 전신마비, 실명…"죽을 용기로 살았다"

    인생길이 늘 순탄할 수만은 없다. 때때로 고난이 찾아온다. 이겨내기 힘들 정도의 고난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기현 저자의 책 제목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처럼 마음을 단단히 먹고 행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무수한 어려움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건 미리 각오해야겠지만.김기현 저자는 1994년 수능 전국 석차 1%의 성적으로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첫 학기를 만끽하고 여름방학을 맞아 턱 부정교합 수술을 받은 것이 고난의 시작이었다. 수술 당시 의료진의 실수로 구강 내 출혈이 심하게 발생했고, 3분간 질식 상태에 빠지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회복 과정에서 극심한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하루아침에 전신마비와 실명이라는 장애를 입었다.힘든 재활훈련을 거쳐 서서히 몸은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나 끝내 눈은 보이지 않았다. 만 19세의 명문대 여학생에게 시각장애인이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굴레였다. 죽을 용기로 살아보자가족들은 어떻게든 막내딸의 눈을 되살리기 위해 1년 넘게 일본, 중국, 미국에 있는 유명 병원을 돌았으나 “현대의학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라는 판정을 받았다. 굴하지 않고 전국의 온갖 민간요법을 찾아다니고 점쟁이와 무당도 만났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찰에 가서 30만 배 절도 해봤으나 별다른 차도가 없자 삶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때 ‘정말 지옥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다행히 ‘죽을 용기로 살아보자’는 생각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의료소송을 벌였으나 의사의 무혐의로 종결되어 억울함을 호소할 길도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하루키의 좌우명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다. “삶의 허무와 결핍, 고독한 문학세계 속에서도”라는 앞 문장을 보면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세계적 작가로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다.하루키는 소설가이면서 꾸준히 수필집을 발간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1996년에 출간한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는 여섯 권의 수필집에서 좋은 글을 엄선해 엮은 책이다.초기 작품을 제외하고는 소설에서 자전적 얘기나 자신에 관한 일을 비치지 않던 하루키는 105편의 수필에 직접 체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아낌없이 솔직하게 토로했다.‘어떻게 쓰는가와 어떻게 사는가’라는 수필에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은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삶이 곧 글이고, 글이 곧 삶이라는 뜻이다.‘나의 독서 이력서’를 읽으면 이미 10대 때 작가가 될 조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0대 시절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장 크리스토프> <전쟁과 평화> <고요한 돈강>을 세 번씩이나 읽었고, <죄와 벌>은 페이지가 적어서 불만이었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바로 나이 들면서 독서 이외의 활동에 시간을 많이 빼앗겨 책 읽는 시간이 줄었다는 개탄이 이어졌다.고교 때 영어 원서 읽어“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다지 책을 읽지 않게 된 것도 역시 독서 이외의 다양한 활동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대폭 할애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 하루키는 “한 사람의 글쟁이로서는 책이 별로 읽히지 않게 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한숨만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마음 저미는 저주받은 자의 비뚤어진 사랑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캣츠, 미스 사이공’을 세계 4대 뮤지컬로 꼽는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초연한 이래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흉측한 외모의 에릭과 아름다운 크리스틴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복잡하고 세밀한 서사를 통해 왜 에릭이 오페라의 유령이 되었는지, 아름다운 크리스틴은 왜 그를 의지했는지, 그의 실체를 안 뒤 어떻게 행동했는지 상세하게 드러낸다.1868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가스통 르루는 기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체험을 했다.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코넌 도일, 괴도 뤼팽을 창조한 모리스 르블랑에게 자극받은 가스통 르루는 <테오프라스트 롱게의 이중생활>과 <노란 방의 비밀>을 발표해 추리소설가로 이름을 떨쳤다. 1910년에 발표한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에 이어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오늘날까지 그의 명성은 계속되고 있다.소설 속 오페라극장은 ‘지하 5층 지상 25층’ 규모로 지하가 미로처럼 얽혀 있고, 지하 5층은 호수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프랑스 파리의 실제 오페라극장도 규모가 가히 압도적이다. 1879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높이에 지하 16m까지 내려갔다. 깊은 곳까지 땅을 파다 보니 지하수를 막을 공간이 필요했고, 그 공간이 작품에서 에릭의 거처인 호수가 된 것이다. 문 2531개, 벽난로 450개, 가스파이프라인 길이 총 25km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가 작품에 영감을 준 것이다. 추리소설이자 심리소설가스통 르루는 사건을 독자에게 보고하는 형식인 기사체로 소설을 시작한다. 안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슬픔속에서도 희망 잃지 않는 영원의 광채

    ‘칼릴 지브란’ 하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은 <예언자>다. <예언자>는 엘리엇, 예이츠의 시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집으로 평가받는다. 1923년 40세에 쓴 <예언자>는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눈물과 미소〉는 지브란의 첫 번째 작품으로, 32편의 시와 산문이 실려 있다. 지브란이 1908년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하던 25세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이 책을 번역한 김승희 시인은 지브란의 언어를 “단순하면서도 사색적이고, 음악적이며 아름답다”고 평했는데, 시와 산문을 읽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불의와 폭력에 대한 저항 정신 가득한 젊은 패기와 함께 깊고 넓은 사색의 열기를 가득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글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지브란이 깊이 있는 글을 쓴 배경에는 녹록지 않은 삶의 여정이 있었다. 지브란은 1883년 레바논 베샤르에서 태어났다. 교회 사제의 딸로 예술에 천부적 재능이 있었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음악과 미술,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지브란이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화가로 활동하게 된 배경에는 문화적 분위기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있었다.12세 때 지브란에게 어려움이 닥쳐온다. 세무 관리이던 아버지가 세금을 잘못 관리해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투옥되자 어머니는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지브란은 15세에 레바논으로 돌아와 아랍 문학을 공부한다. 19세, 다시 미국으로 가던 중 누이 술타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듬해 3월에는 형, 6월에는 어머니가 연이어 세상을 떠난다.삶의 고초가 담긴 32편의 글삶의 고초를 겪으면서 깊어진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사계절 속 서울…이방인이 포착한 우리의 삶

    서울을 다녀간 해외 유튜버들이 “깨끗하다. 질서를 잘 지킨다. 안전하다.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면서 “고대와 현대가 잘 어우러진 점, 도심에서 바로 산에 오를 수 있는 점, 깨끗하고 편리한 지하철, 빠른 통신”에 놀라움을 표한다.사계절을 지낸 외국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에 삽니다>를 쓴 안드레스 솔라노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난 작가로, 영국 문학잡지 ‘그랜타’가 2010년 ‘스페인어권 최고의 젊은 작가 22인’ 중 1명으로 선정한 인물이다.콜롬비아는 한국전쟁 때 남미에서 유일하게 군인을 파병한 나라다. 안드레스는 2007년 첫 장편소설 <나를 구해줘, 조 루이스>를 발표한 이후 한국전쟁 콜롬비아 참전용사를 다룬 <네온사인 공동묘지>를 펴낸 바 있다.<한국에 삽니다>는 콜롬비아에서 먼저 발간되어 2016년 ‘콜롬비아 도서관 소설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안드레스의 아내인 이수정 씨가 번역해 2018년 출간됐다. ‘서울 이태원 4계절 체험기’부터 책과 영화,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 세계 여행 기록, 콜롬비아에서의 삶까지 광범위하게 담겨 있다. “버스는 오전 일곱 시에 부산 터미널을 출발했다. 흰 벽에 붓을 칠하듯 경부고속도로를 활주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부터 문학적 향취를 듬뿍 풍기는 책이다. 이태원에서 사계절 보내기서울 이태원에 도착한 30대 중반의 안드레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앞에 짐을 내려놓고 부동산 중개소로 열쇠를 가지러 간 것이다. “보고타였다면 광장의 비둘기가 떼로 몰려와 한 줌의 쌀알들을 먹어 치우는 사이에 이미 가방은 없어졌을 것이다”라고 감탄한다.서울에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갈 곳 없는 철학자가 추적했던 마지막 늑대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전 국민이 기뻐하며 축하했다. 2025년 노벨문학상은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크러스너호르커이에 대해 “종말론적 공포의 한가운데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금 증명해내는 강렬하고도 비전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한다”고 평가했다.크러스너호르커이는 2015년 헝가리 작가 최초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떠올랐다. 한강 작가는 이 상을 2016년에 받았다.<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라스트 울프> <서왕모의 강림> <세계는 계속된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까지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 6권이 거의 팔리지 않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라스트 울프’와 ‘헤르먼’ 두 작품으로 구성된 중편집 <라스트 울프>는 국내에 2021년에 소개됐는데, 2015년 해외 출간 당시 평단으로부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적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1954년에 태어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유학했고, 그리스·중국·몽골·일본·미국 등 여러 나라에 체류했다. 다양한 나라를 경험한 만큼 <라스트 울프>의 등장인물은 독일 철학자와 헝가리 바텐더, 스페인 통역사까지 다국적이다.종말론적 세계관종말론적 세계관이 두드러지는 그의 작품은 단락 구분이 거의 없는 데다 문장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심지어 <라스트 울프>는 맨 마지막에 마침표가 단 한 번 찍혀 있을 뿐이다. 하지만 68페이지로 내용이 길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