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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음모론에 기초한 흥미진진한 여정

    많은 작가가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만든다. ‘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해 파급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초강력 베스트셀러들은 영화, 게임, 음반,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장난감, 출판 등 다양한 장르로 퍼져나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렸다.2003년 출간된 <다빈치 코드>는 첫해에 700만 부가 팔린 뒤 2012년 1억 부를 넘어섰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다빈치 코드’의 진위를 가리는 다큐멘터리도 제작됐다. <다빈치 코드 깨기>와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와 같은 <다빈치 코드>를 반박하는 서적이 출간되기도 했다.<다빈치 코드> 출간 당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무섭고 복수심이 강한 미국인이 세계의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2006년 영화 <다빈치 코드>가 개봉될 당시 우리나라 개신교계에서 영화 관람 거부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성경’에 정면 도전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에 반발이 컸던 것이다.‘성경은 신의 작품이 아닌 인간의 작품이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닌 놀라운 영향력을 지닌 역사적 인물이었을 뿐이다. 예수는 부활해 승천한 것이 아니라 막달레나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지금까지 그 가문이 이어지고 있다. 예수를 신처럼 묘사한 복음서만 골라 윤색한 것이 성경이다.’ 주인공과 함께 추리해보라이런 내용과 함께 가톨릭을 나쁘게 묘사해 책이 나오자마자 질타가 쏟아졌다. 소설에 나오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 다양한 장소와 그림을 정확히 묘사한 부분도 많지만 <다빈치 코드 깨기>에 보면 음모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치열한 삶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이 문장을 외우면서 자기 성찰의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예전 번역본의 ‘아프락사스’가 ‘압락사스’보다 훨씬 익숙하다면서.<데미안>이 세계적인 고전이 된 까닭은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간 내면의 혼란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열 살 때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기까지 때마다 화두를 던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 수많은 과정을 이겨낸다.헤르만 헤세는 1877년 태어나 1962년 세상을 떠났다. 목사의 아들인 헤세는 수도원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서점과 시계공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원했으나 부적격 판정으로 실전에는 참전하지 못했다. 대신 스위스에서 ‘억류자들을 위한’ 잡지를 22권이나 냈다.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헤세의 소설은 자신이 겪은 역사적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시대 자체를 소설의 주제로 삼지 않고 ‘집단 인간’이 아닌 ‘개인 인간’을 조명한 소설을 썼다. 그로 인해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게 된 것이다. 데미안이 선물한 안전과 혼돈유복한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열 살의 싱클레어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했다가 동급생 크로머에게 협박당하고 조종당하게 된다. 데미안이 나타나면서 크로머로부터 벗어나지만 사고 자체가 흔들리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다. &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잔잔하지만 분명한 질문을 던지는 다섯 편의 소설

    노벨문학상과 부커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는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가는 대표적 거장으로 꼽힌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세계 전역의 독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비전이 담긴 소설을 쓰는 인터내셔널한 작가’를 지향하는 이시구로의 바람대로 그의 작품은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를 주로 다룬다.이시구로는 그동안 일곱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는데, 세 번째 소설<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앤서니 홉킨스와 에마 톰슨 등 톱스타를 기용해 제작한 영화가 소설을 섬세하게 표현해 화제가 된 바 있다.<녹턴>은 유일한 단편집으로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다섯 편의 소설에 싱어송라이터를 꿈꾸었던 이시구로의 음악적 취향이 잘 담겨 있다. ‘황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화자는 대개 음악을 연주하는 젊은이들이다. 일과 사랑, 묘한 함수관계다섯 편에 각각 다른 사람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펼치지만 ‘대부’의 테마가 넘나드는가 하면 첫 번째 소설 <크루너>와 네 번째 소설 <녹턴>은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크루너는 ‘나직하게 노래하다, 조그맣게 속삭이다’라는 뜻의 croon에서 파생된 단어로, 1930~1940년대 유행했던 부드러운 콧소리가 가미된 크룬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를 말한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서 연주하는 무명의 기타리스트는 어느 봄날 어머니가 좋아했던 전설적인 크루너 가수 토니 가드너를 만나 감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아이디어와 확신,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책

    생글생글 독자들은 고명환 작가를 잘 모를 게 분명하다. 1972년 태어나 1997년 MBC 공채 개그맨이 되어 ‘코미디하우스’에서 ‘와룡봉추’라는 코너로 인기를 누렸던 인물이다. 개그맨에서 연기자로 보폭을 넓혀 드라마 ‘해신’에 출연했던 그가 2005년 의사가 사흘을 못 넘긴다고 판정했을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기적적으로 회복돼 두 달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50권의 책을 독파하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퇴원 이후 매일 새벽 4시 일어나 하루 10시간 넘게 독서하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삶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2017년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에 이어 올해 9월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냈는데 책과 매출, 책과 돈을 논하지만 두 권의 책 내용을 요약하면 ‘책을 읽으면 삶이 보인다’로 요약할 수 있다.저자는 교통사고 나기 전에 여러 사업을 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그런데 2014년 시작한 ‘메밀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식당이 매년 1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TV 프로그램 ‘서민갑부’에 소개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비결은 책을 읽으며 모든 트렌드를 분석해 ‘건강에 도움이 되면서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사랑받는 업종’을 찾은 덕분이다. ‘인건비를 감당하려면 정상 영업시간 안에 마치자,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니 여름 장사를 하자’는 계획과도 딱 맞아떨어진 것이 메밀국수였다. 핸드폰 검색보다 책으로 사색하라‘메밀꽃이 피었습니다’가 개업 첫날부터 잘되자 지점을 내고 싶다는 요청이 밀려들었다. 받아들였다면 500개 넘는 지점을 내면서 100억원은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불만 가득한 남자의 어쩐지 설득되는 이야기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콘트라바스>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출세작이다. <향수> <좀머씨 이야기>를 펴낸 세계적인 작가 쥐스킨트도 이 작품을 내기 전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무명작가였다. 1984년 스위스에서 <콘트라바스>를 발표한 뒤 유명 작가 대열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독일어권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희곡으로 사랑받고 있다.명계남, 박상원 같은 배우가 열연을 펼쳐 우리나라 연극 무대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다음에는 어떤 배우가 무대에 오를지 궁금해지는 연극이 바로 <콘트라바스>인데, 단 한 사람이 무대를 꽉 채워야 하는 만큼 웬만한 내공을 가진 배우가 아니면 도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이 작품은 쥐스킨트가 발표한 지 9년 만인 1993년 <콘트라베이스>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선보였다가 2020년 리뉴얼판이 나올 때 <콘트라바스>로 제목이 바뀌었다. 출판사의 변은 ‘독일어권에서 콘트라바스로 부르는 악기를 영어권에서 더블베이스로 부르다 보니 정체불명의 단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국어사전에 표준어로 자리하고 있는 데다 워낙 익숙한지라 본문에서는 ‘콘트라베이스’로 쓰는 게 자연스러울 듯하다. 나에게 책 읽어주는 느낌우선 이 작품은 100페이지 남짓이어서 읽는 데 부담이 없다. 독서를 하다 보면 얇은 책에 이토록 심오한 내용을 매우 심드렁한 어투로 담았다는 데 감탄하게 된다. 남성 모노드라마여서 무미건조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매우 재미있으면서 이야기에 밀도가 있다. 대부분의 희곡은 여러 등장인물이 대사를 주고받는 형식이어서 읽기 불편할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단 한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엄청난 행운을 만난 핍의 행로를 따라 가보자

    부모님을 일찍 여읜 핍은 자신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누나 집에 얹혀산다. 핍에게 자주 손찌검을 하는 누나는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남편도 퍽퍽 때릴 정도로 과격하다. 대장장이인 매형 조와 핍은 함께 수난을 받으면서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친해졌다. 아무리 마음씨 좋은 매형이 있다 해도 누나에게 구박받으며 희망 없는 삶을 살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나에게 진짜 부모가 있어서 어느 날 짜잔 하고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나에게 큰 유산을 남겼다면 그 돈으로 뭘 할까.’핍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낯선 변호사가 조의 지도 아래 4년째 대장장이 훈련을 받고 있던 핍을 찾아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으니 즉시 일을 그만두고 신사 교육을 받으러 가자”고 말한다.찰스 디킨스가 1861년 출간한 <위대한 유산>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 아래 오늘날까지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차례 이상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된 이 소설은 ‘영국 독자들이 뽑은 가장 귀중한 책’ ‘한국 문인이 선호하는 세계명작소설 100선’ 등 다양한 기록도 갖고 있다. 이 소설이 주간 잡지 ‘연중일지’에 연재될 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도 작품에 푹 빠져 디킨스를 흠모했다고 한다. 누가 재산을 남긴 걸까<위대한 유산>의 어떤 면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걸까. 우선 160년 전 발표된 소설임에도 소설 속 인물과 그들의 행동, 여러 갈등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친근하고 생생하다. 추리 기법을 통원한 흥미로운 전개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행운이 다가오기 전 모든 게 암담했던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스토리텔링의 바이블 <시학> 완전 정복하기

    “말을 할 때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라. 과제도 스토리텔링을 넣어서 써라. 우리 모임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보자.” 일상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텔링(telling)’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이야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를 말한다.대학에서 스토리텔링만 특화해 강의를 시작한 게 십수 년 전이어서 스토리텔링이 활성화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이미 2400년 전부터 뜨거웠던 이론이다. 스토리텔링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책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35년에 쓴 <시학>이다. 오늘날 스토리텔링 강사들이 학생들에게 꼭 추천하는, 그야말로 생명이 긴 책이다. 문학이론이자 서사이론<시학>은 말 그대로 시의 제작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서정시, 서사시, 비극, 드라마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당시 소설이라는 장르가 없었으나, 소설을 포함한 모든 문학이론이자 더 나아가 모든 서사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스어 원전 번역본 <시학>이 여러 권 나와 있지만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가 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권하는 이유는 해설 때문이다. 전체 159쪽 가운데 해설이 56쪽에 이르는데, 해설을 읽고 나면 26장으로 구성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시학>에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작가들이 거론된다면 박 교수의 해설에는 우리가 잘 아는 드라마와 영화가 등장한다.26장의 짤막짤막한 이론을 보면 익숙한 듯 아리송한 단어들이 눈에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약물 중독' 뇌 과학자의 당부, 절대 선 넘지 말라

    요즘 마약 관련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6년 유엔이 정한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어버렸다. 검찰에서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설치해 강력하게 대처한다니 우리나라가 다시 마약청정국이 되길 소망한다.<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의 저자 주디스 그리셀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행동신경과학자이자 미국 벅넬대 심리학과 교수다. <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는 취재하거나 통계를 모아 쓴 게 아니라 20년 이상 각종 마약에 빠졌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독의 폐해를 생생하게 알리는 책이다.그리셀이 중독에 발을 들인 것은 7학년(중학교 1학년) 때였다. 친구네 집 지하실에서 와인을 2L쯤 퍼마시고 취했을 때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초조함에 위안을 주는 해독제’를 만났다고 생각해 1년 내내 술을 마셨다. 이후 향정신성 약물에 빠지게 된 그리셀은 약을 마련하느라 여러 일탈을 감행했다. 대마, 코카인, 메스암페타민, LSD에 빠져 청소년기에 거쳐야 할 여러 과정을 대충 넘겼고, 약에 취해 그나마 경험한 일들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실정이다.그리셀은 대학에 입학한 뒤 대부분의 시간을 술과 파티로 탕진하면서 약물에 취해 살았다. 결국 학교에서 휴학을 권했고 부모는 금전적인 지원을 모두 끊어버렸다. 이후 거처와 일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약물에 빠져 사는 동안 거짓말과 변명으로 순간순간을 모면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녀를 건졌다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비참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약에 의지했지만 3개월이 지나도 충격적인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았다. 얼마 후 맞은 스물세 번째 생일, 못난 딸을 찾아온 아버지는 야단을 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