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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문명국 부럽지 않은 야만인 존의 선택 '참된 자유'

    91년 전인 1932년 발표된 <멋진 신세계>는 여러모로 충격을 안기는 작품이다. 이 소설이 예측한 것들이 이미 많이 이뤄진 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시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1894년 출생한 올더스 헉슬리는 영국 명문가 출신으로 이튼과 옥스퍼드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소설, 수필, 전기, 희곡, 시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충격적인 미래 예언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도덕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당신은 어떤 신세계를 꿈꾸고 있는가. <멋진 신세계> 속 문명국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살펴보자. 소설 속에는 문명국과 야만국이 등장한다. 야만국의 야만인은 우리처럼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문명국에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라는 다섯 단계의 계급이 존재하고 각 계급 내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갈린다. 기계를 조작해 다양한 분야의 우수한 알파를 만들고, 지능이 모자라는 엡실론도 자유자재로 생산한다. 흑인의 피가 8분의 1 섞인 ‘8분 혼혈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필요한 분야의 쌍둥이를 무수히 찍어내기 때문에 문명국에선 똑같이 생긴 인간이 떼지어 다니는 것쯤은 신기한 일이 아니다. 가짜 행복보다 불행이 낫다요즘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낮아 걱정인데 소설 속 문명국은 적정 인구를 생산하고, 험한 일은 델타 마이너스나 엡실론 계급이 도맡으니 인구 걱정, 실업 걱정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어도 불만 따위는 없다. 성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최면 구호를 주입하는 데다 매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떠나는 스승이 사랑하는 제자에게 남긴 당부

    세계 41개국의 독자 4000만 명 이상이 읽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큰 감동을 안긴다. 왜 이 책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하루하루 병세가 나빠지는 모리 슈워츠라는 저명한 사회학자가 들려주는 한마디 한마디가 뼈에 사무치도록 옳으면서도 아름답고 귀하기 때문이리라.이 책을 쓴 미치 앨봄은 에미상을 받은 방송인이자 칼럼니스트이며 베스트셀러 작가다. 취재를 위해 세계를 다니며 바쁘게 살던 중 대학 은사인 모리 교수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미치는 1000㎞가 넘는 거리를 한달음에 날아간다. 모리 교수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귀한 존재, 닦으면 자랑스럽게 빛날 보석’으로 봐준 스승이었기 때문이다.루게릭병은 ‘신경을 녹여 몸에 밀납 같은 것이 쌓이게 하는 촛불 같은 병’이다. 다리에서 시작해 차츰 위로 올라와 똑바로 서지 못하다가 종국에는 목에 구멍을 뚫고 튜브로 호흡해야 한다. 루게릭병이 무서운 것은 ‘완벽하게 말짱한 정신이 무기력한 몸속에 갇히게 된다’는 점이다.오랜만에 만난 제자 미치에게 모리 교수는 매주 화요일 찾아올 것을 부탁했고, 열네 번의 화요일을 함께 보낸 뒤 세상을 떠난다. 처음에는 미치가 들고 간 음식을 나눠 먹으며 활발하게 대화를 나눴지만 나중에는 유동식을 먹는 것도, 숨 쉬는 일도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스승의 가르침은 갈수록 감동을 더했다.모리 교수는 ‘절망’이라는 말을 거부하며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라. 과거를 부인하거나 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같은 아포리즘을 생각나는 대로 적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일상의 반복에 갇힌 그 남자의 심리가 궁금하다

    <모래의 여자>를 읽는 동안 ‘하늘이 암갈색으로 물들고 흙먼지가 풀풀 일어 숨 막힐 것 같은’ 기분에 빠질 수 있다. 절체절명의 수렁에 갇힌 남자의 절규를 따라가면서 그 심리에 젖어들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아베 코보는 <뉴욕타임스> 선정 세계 10대 문제 작가에 꼽혔으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국제적인 작가로 평가받았다. 192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이듬해부터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만주에서 살았다. 아베 코보는 수필집 <사막의 사상>에서 ‘사막적인 것에는 늘 뭐라 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며 ‘거의 사막과도 같은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사막을 동경했던 것 같다’는 심경을 밝혔다. ‘바짝 마른 눈두덩이 속으로 모래가 파고드는 짜증스러운 기분 이면에는 불쾌함이 아니라 일종의 들뜬 기대감이 담겨 있다’는 상반된 감정이 이 소설을 쓰게 했을 것이다.20개 언어로 번역된 이 작품은 1963년 요미우리 문학상, 1968년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4년 영화화돼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모래 구덩이 집에 갇히다31세 교사인 남자의 여행 목적은 곤충의 새로운 종을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신종 하나만 발견하면,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도 곤충도감에 기록돼 거의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는 사실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어느 날 집 근처 강턱에서 딱정벌레목 길앞잡이속의 좀길앞잡이 비슷한 엷은 분홍색의 곤충을 발견한다. 안타깝게도 그 곤충을 놓쳤고, 길앞잡이속이 대표적인 사막 곤충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막으로 향한다.남자는 반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질문의 힘을 느껴보라

    <질문의 책>은 1973년 9월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달 전에 마무리됐다. 74편의 시가 실린 이 책은 목차부터 기묘하다. 시의 제목이 번호로만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 속 작품의 모든 연은 물음표로 끝나는데 74편의 시에 붙은 물음표가 316개에 이른다.인생은 질문의 연속이다. 어린아이들은 겨우 말하기 시작할 때쯤 질문 폭탄을 던져 엄마들을 진 빠지게 한다. 나이 들수록 차츰 질문이 줄어드는 건 다 알아서라기보다 호기심과 관심이 줄어서일 것이다.<질문의 책>에서 70세 시인의 궁금증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질문이 곧 삶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질문이 줄어들고 삶이 심드렁하게 느껴진다면 네루다의 질문을 따라가며 나의 호기심을 발동시켜보자.작품 44에서 시인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고 질문하지만 시를 읽다 보면 ‘그 아이’가 칠십이 된 시인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단히 시적이거나, 엉뚱한 상상에서 비롯된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사랑은 어디로 갔지?작품 4에서는 ‘연기는 구름과 이야기 하나?’, 작품 9에선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라고 질문한다. 구름은 문학작품에서 흔히 ‘덧없음’의 비유로 많이 등장한다. 그 ‘덧없는’ 구름은 대개 ‘풍부’하고, 풍부한 구름은 결국 비가 되어 떨어진다. 작품 3 ‘빗속에 서 있는 기차처럼/슬픈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와 연결되면서 저마다의 생각에 젖어들게 한다.화산에 대한 질문도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문법과 감수성 변화가 디지털 언어 부른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문제로 떠올랐다. 한 웹툰 작가가 사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편을 끼쳤다며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공지하자 네티즌이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심심한 사과를 하느냐’며 비난을 퍼부었다. 심심한(甚深, 깊고 간절한)을 ‘지루하고 재미없는’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20대 초반의 한 래퍼는 ‘하루 이틀 삼일 사흘 일주일이 지나가’라는 가사를 써서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사흘을 4일째, 고지식(융통성 없음)을 높은(高) 지식, 금일(오늘)을 금요일로 아는 이들이 많다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젊은 세대의 문해력을 탓하는 기성세대들은 ‘디지털 언어’ 앞에서 고전하는 중이다. ‘답정너, 자만추, 금사빠’를 겨우 익히면 ‘스불재, 닥눈삼, 드잘알’ 같은 뜻 모를 단어가 줄지어 등장하기 때문이다.<말의 트렌드>를 쓴 정유라 작가는 온라인 공간에서 매일 피고 지는 말의 풍경을 관찰하며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하는 빅데이터 전문가다. 저자는 ‘디지털 언어’를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해 그곳에서 사용되다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넘어온 언어’라고 정의했다.저자는 ‘우리 언어의 문법이 바뀌었고, 우리 시대의 감수성이 변화했으니, 세대 간 소통이 이뤄지려면 디지털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언어가 뿜어내는 신선한 에너지를 흡수해 실생활에서 순환시킨다면 우리의 언어 습관과 감각이 밝아질 것이라는 저자는 ‘늙는 것보다 낡은 것이 더 위험한 시대’임을 환기시킨다. 새로운 언어 감수성 키우기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서는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어른의 그늘에서 성장하는 아이의 기쁨과 아픔

    서울 인왕산 아래 산동네에 사는 동구는 난독증이 있어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럼에도 배우지 않은 한글을 척척 읽어내 귀염받는 동생 영주를 자랑스러워하는 착한 아이다. 하지만 “에이구 저 들떨어진 새끼, 아직도 글씨 못 읽는대지?”라며 면전에서 핀잔주는 할머니와 공부를 엄청 못한다는 말에 동구 따귀를 후려갈겨 꽃밭에 나동그라지게 한 아버지 때문에 괴롭다.동구가 3학년이 되던 해인 1979년, 대통령이 시해당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동구와 동구 주변 사람들을 통해 1979년과 1980년 일어난 우리나라 현대사의 묵직한 이야기와 그 시절 풍경을 담은 성장소설이다.2002년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성장소설 이상의 성장소설’이라는 호평 속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출간 20년이 지났음에도 독자 서평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1972년생인 심윤경 작가는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이공계 출신이다. 문장이 버석할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작가는 세밀한 묘사와 독창적인 비유로 인왕산 아래 동네를 그림처럼 그려냈다.1977년부터 1981년을 사는 다양한 군상과 군인들이 점령한 서울 중앙통을 그릴 때도 번잡스럽거나 살벌하기보다 아련하면서 가슴 저릿한 감정을 불러들인다.천사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어즐거운 일이라곤 없는 동구에게 3학년 담임선생님의 등장은 놀랍고도 가슴 뛰는 사건이다. 엄마가 박영은 선생님에게 동구의 글씨 공부에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부탁하면서 방과 후 특별지도가 시작된다. 글씨 공부에 앞서 마음을 두드려준 박영은 선생님에게 동구는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간절함과 관심, 유효기간 없는 열정이 중요하다

    ‘국민 가게’라는 별칭을 얻은 다이소에 하루 100만 명이 드나든다. 전국 1500개 다이소 매장을 가장 많이 찾는 세대는 20대로 전체 고객의 30%를 차지한다. 10대 고객은 전체의 20%에 달한다. 물가가 올라도 가격을 유지하는 비결, 아성다이소 박정부 회장이 성공한 비결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책을 읽으면 일상에 적용할 점이 눈에 띌 것이다.다이소는 3만여 개의 물건을 판매하는데, 그 가운데 51%가 1000원짜리다. 2000원짜리까지 확대하면 80%에 달한다. 가장 비싼 물건이 5000원이다. ‘탕진잼의 최고 성지’를 누비다 ‘다이소족’에 편입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 반면 다이소를 찾는 50대 이상은 5%에 불과하다.26년 전인 1997년 한국에 첫 매장을 연 다이소는 1000원짜리 상품을 팔아 2014년 1조원, 2018년 2조원, 2021년 3조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광고를 일절 하지 않고 오로지 상품으로만 승부해 얻은 소득이다.여러 경제연구소는 다이소의 성공 요인을 ‘균일가 정책, 상품 개발 능력, 물류센터’로 분석했다. 품질 관리와 물류 혁신, 상품 기획력과 상품 공급력, 다양한 볼거리와 쾌적한 매장도 강점으로 꼽혔다.기본에 충실해야 한다세계 400대 부호 가운데 자신의 손으로 창업해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이 미국은 71%, 중국은 97%, 일본은 100%인데 우리나라는 0%라고 한다. 400대 부호에 포함된 우리나라 부자들은 전부 상속으로 부를 물려받았다.올해 79세인 박 회장은 45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뒤늦게 무역업에 도전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사업을 일궜다. 일본 100엔숍에 납품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미국의 유통 구조와 상품 개발 과정, 스페인의 저가상품 소비 패턴과 다양한 샘플 제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경험 많은 작가의 속 깊은 내면 드러나는 에세이

    알랭 드 보통은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자란 소설가, 수필가, 철학자다. 23세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첫 소설이 30개국에서 출간돼 초강력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도 70만 부 기념 리커버가 출간될 정도로 사랑받았다. 이후 <우리는 사랑일까> <너를 사랑한다는 건>까지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을 완성해 수많은 독자를 매료시켰다.알랭 드 보통은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문학과 철학, 역사, 종교, 예술을 아우르며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에세이 작가로도 사랑받고 있다. <불안> <일의 기쁨과 슬픔>을 비롯한 여러 에세이집을 냈다. 워낙 많은 작품을 펴내 주요 에세이집을 소개할 때 <동물원에 가기>는 미처 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2006년 발표한 <동물원에 가기>는 산문가로서 그의 자리를 확인해주는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영국의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가 70주년을 기념해 70권으로 이뤄진 문고판 총서 ‘펭귄 70’을 출간할 때 마지막으로 포함시킨 작품이다. 당시 37세였던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이 카뮈, 카프카, 체호프, 피츠제럴드, 플로베르 같은 대가들의 작품과 함께 오른 것이다.여러 문학작품 가운데 에세이가 특별히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는 것은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로,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경험 많은 작가의 속 깊은 내면을 독서를 통해 공유한다는 점이 큰 수확이라 할 만하다. 나와 똑같은 공간에서 작가는 어떤 점을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