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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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발간 70주년을 맞은 <파리대왕>은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윌리엄 골딩의 대표작으로 <타임> 선정 현대 100대 영문 소설,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BBC 선정 ‘세상을 바꾼 100대 소설’, 미국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 도서 등에 올랐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야수로 변해가는 소년들…문명은 유지될 것인가
<파리대왕>은 스티븐 킹, 이언 매큐언, 말런 제임스, <헝거 게임> 시리즈 작가 수잔 콜린스, 시인 벤 오크리 등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이 역경을 뚫고 구출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산호섬> <15소년 표류기> 등 여러 작품이 있지만 <파리대왕>이 특히 각광받은 이유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원조로 인간 본성을 제대로 녹여낸 덕분이다.

1911년 영국 콘월주에서 태어난 윌리엄 골딩은 옥스퍼드 대학의 브레이스노즈 칼리지에서 자연과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대학 재학 중 서정시 29편을 묶은 첫 책 <시집>을 출간한 그는 해군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후 교사로 일하며 쓴 첫 소설이 바로 <파리대왕>이다.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요즘 세계가 전쟁 소식으로 어수선하다. 하루아침에 고향을 떠나 피란지에서 불안한 삶을 사는 이들의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는 가운데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 우리에게 여러 피해를 주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도 심각할 정도로 몰아닥치고 있다.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표류한 <파리대왕>의 소년들처럼 느닷없는 상황이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가장 먼저 등장한 12세 금발 소년 랠프는 매우 낙관적이다. 아름다운 섬 풍경에 “멋있다!”라는 탄성을 지르며 해군 중령인 아빠가 곧 구하러 올 거라고 생각한다. 안경을 낀 데다 뚱뚱해 ‘돼지’로 불리는 소년은 구출되기 힘들 것이라며 소라를 불어 흩어진 아이들을 모으자고 제안한다. 소라를 불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모여들고, 성가대원 제복을 입은 아이들이 구령에 맞춰 줄지어 다가온다. 대장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아이들은 성가대장 잭이 아닌 랠프를 선택한다.

과일이 지천인 데다 폭포가 있어 물을 구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어 대여섯 살부터 열두 살에 이르는 소년들은 “신난다” “멋있다” “최고다”를 외치며 즐거워한다. 유일하게 심각한 돼지는 배가 지나갈 때 구출되려면 봉화를 올려야 하고, 추위를 피할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칙을 만들고 그에 복종하면서 무인도 생활이 착착 진행되는 듯했으나 봉화는 자주 꺼지고 오두막 짓는 일에도 몇몇만 참여한다.

‘먹는 것, 잠자는 것, 노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적은 짐승에 대한 공포와 밤이면 몰려드는 두려움이다. 점점 질서가 무너지는 가운데 멧돼지를 사냥해 아이들에게 고기를 맛보게 해준 잭은 반역을 꾀한다.

무인도 생활이 깊어가면서 봉두난발이 된 머리, 비누칠과 양치질을 못한 몰골, 길게 자란 손톱까지 괴롭기 이를 데 없다. ‘어른들의 가르침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도리가 없다.극한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어느 날 산 정상 봉화 옆으로 낙하산이 날아왔고, 바람에 거대하게 부푼 모습에 아이들은 극도로 두려움을 느낀다. 경험이 없어 판단이 힘든 아이들은 결국 분열하고 고기를 먹여주는 용맹한 잭에게 아이들이 몰려간다. 급기야 잭 일당은 쌍둥이 형제와 돼지, 랠프만 남은 오두막에 와서 불을 붙이는 데 필요한 안경을 빼앗아 가버린다. 안경을 받으러 잭을 찾아가지만 쌍둥이는 인질로 잡히고, 돼지는 굴러떨어져 죽고, 랠프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모든 질서가 무너진 무인도에서 점점 야수로 변해가는 소년들, 우두머리 잭은 랠프를 잡기 위해 산에 불을 지른다. 그 불이 봉화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해군 장교들이 아이들을 구하러 온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교육받으며 문명인으로 살던 사람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이먼을 죽게 만들고, 돼지에게 돌을 굴리고, 랠프를 잡기 위해 불을 지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내가 그 무인도에 있었다면 과연 문명인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야만으로 복귀해 누구보다 날뛰지 않을까? 그런 가정을 하며 읽으면 흥미진진하면서 많은 울림을 얻을 것이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소설 속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풀어보는 일, 비슷한 배경의 타 작품과 연관성을 따져보는 일도 의미 있을 것이다. 점점 야만인이 되어가는 소년들을 실감나게 그린 세계적 명작을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