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
김기현 저자는 1994년 수능 전국 석차 1%의 성적으로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첫 학기를 만끽하고 여름방학을 맞아 턱 부정교합 수술을 받은 것이 고난의 시작이었다. 수술 당시 의료진의 실수로 구강 내 출혈이 심하게 발생했고, 3분간 질식 상태에 빠지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회복 과정에서 극심한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하루아침에 전신마비와 실명이라는 장애를 입었다.
힘든 재활훈련을 거쳐 서서히 몸은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나 끝내 눈은 보이지 않았다. 만 19세의 명문대 여학생에게 시각장애인이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굴레였다. 죽을 용기로 살아보자
의료소송을 벌였으나 의사의 무혐의로 종결되어 억울함을 호소할 길도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고 난 지 3년 만에 가장 중증인 1급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너무도 기막히고 말할 수 없이 힘든 삶 속에서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헤쳐나가기로 결심했다.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음성합성장치 사용법을 배우고, 컴퓨터 교육을 받는 등 복학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1998년 가을, 휴학한 지 4년 만에 학교로 돌아갔다. 시각장애인이 정안인과 경쟁하려니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정안인으로 입학한 학교를 시각장애인이 되어 다니려니 억울하고 마음 아팠을 것이다. 교수님의 강의를 녹음한 뒤 집에서 반복해 듣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하지만 적응을 못 하고 겉도는 생활을 하며 화장실에 가서 울기도 했다. 자신에게만 닥친 시련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가득 차올랐다.
1년여를 그렇게 보낸 후 교양으로 기독교 관련 과목을 수강하면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담당 교수님의 따뜻한 관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점차 안정을 찾게 된 것이다. 책을 읽거나 사전을 찾는 일이 힘들어져 불문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한 저자는 교수님, 친구, 기숙사 룸메이트 등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열심히 공부해 2002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두 배로 힘든 유학 시절이후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2006년 미국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 재활상담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영어로 공부해야 하니 두 배로 힘든 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교재 파일을 미리 보내주는 등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깊어 감사하며 나아갔다. 인턴으로 일하며 열심히 공부해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아이오와 대학교 재활상담학 박사과정에 입학해 공부를 이어갔다. 유학을 떠나기 1년 전 정안인과 결혼한 그는 남편의 살뜰한 보살핌에 큰 힘을 얻었다. 2008년에는 아들을 낳으며 행복이 두 배가 되었다.
총 4부로 구성된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 마지막 챕터에 ‘김기현의 재활일기’가 실려 있다. 2003년 6월부터 2년간 진행한 KBS3 라디오의 방송 대본에서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청천벽력 같은 중도 실명 상황을 꿋꿋이 헤쳐나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감동이 쏟아진다. 저자가 힘든 길을 가는 동안 도와준 수많은 사람의 정성 또한 중요한 감동 포인트다. 주변 사람들의 진한 사랑이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저자를 이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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