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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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다. “삶의 허무와 결핍, 고독한 문학세계 속에서도”라는 앞 문장을 보면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세계적 작가로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하루키의 좌우명
하루키는 소설가이면서 꾸준히 수필집을 발간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1996년에 출간한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는 여섯 권의 수필집에서 좋은 글을 엄선해 엮은 책이다.

초기 작품을 제외하고는 소설에서 자전적 얘기나 자신에 관한 일을 비치지 않던 하루키는 105편의 수필에 직접 체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아낌없이 솔직하게 토로했다.

‘어떻게 쓰는가와 어떻게 사는가’라는 수필에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은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삶이 곧 글이고, 글이 곧 삶이라는 뜻이다.

‘나의 독서 이력서’를 읽으면 이미 10대 때 작가가 될 조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0대 시절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장 크리스토프> <전쟁과 평화> <고요한 돈강>을 세 번씩이나 읽었고, <죄와 벌>은 페이지가 적어서 불만이었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바로 나이 들면서 독서 이외의 활동에 시간을 많이 빼앗겨 책 읽는 시간이 줄었다는 개탄이 이어졌다.고교 때 영어 원서 읽어“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다지 책을 읽지 않게 된 것도 역시 독서 이외의 다양한 활동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대폭 할애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 하루키는 “한 사람의 글쟁이로서는 책이 별로 읽히지 않게 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한숨만 쉰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새로운 지평에서 새로운 종류의 우수한 독자들을 발굴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공부하기 싫어했던 나는’이라는 수필에서 그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고 고백했다. 공부하기는 싫지만 ‘영문 일역’ 참고서 읽는 것을 좋아해서 예문을 읽거나 외우는 일을 열심히 했고, 어느 틈엔가 자연스럽게 영어 원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키가 세계적 작가가 된 배경에 그의 영어 실력이 있었으니, 공부는 싫어도 영어는 좋았던 고교 시절이 그에게 큰 힘이 된 셈이다. 공부하기 싫어했다지만 하루키는 일본의 명문대인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했다.

우리 사회에 ‘소확행’이 확고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소소하면서 확실한 행복’의 준말인 소확행은 하루키의 ‘작지만 확고한 행복’이라는 수필에서 비롯했다. 언더팬츠 모으는 걸 좋아하는 하루키는 백화점에서 망설이며 고른 대여섯 개를 한꺼번에 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옷장 서랍에 상당히 많은 팬츠가 쌓여 있다.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가 쌓여 있다는 건 인생에 있어서 작지만 확고한 행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쩌면 나 혼자만의 특수한 생각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면서 “산뜻한 면 냄새가 나는 흰 러닝셔츠를 머리로 뒤집어쓸 때의 그 기분도 역시 작지만 확고한 행복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배짱으로 당당하게 뚫고 나간다사람은 누구나 미래를 궁금해한다. 좋은 일에 대한 기대도 있겠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나쁜 일에 대비하고픈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13일의 금요일’에서 하루키는 “점이나 운수라는 건 한번 신경 쓰기 시작하면 늘 연연해하게 마련이고, 무엇이든 한번 연연해하기 시작하면 그 영역은 점점 확대되어가는 법”이라면서 자신은 “다소 재수가 없더라도 하려고 마음먹은 일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루키는 누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해도 신경 쓰지 않고 배짱으로 당당하게 뚫고 나간다며 “이런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는 한 운세 따위에 질 리 없다”고 자신했다.

하루키의 좌우명은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이라는 에세이 제목이 대변한다. 건강이 재능에 우선하는 이유를 “건강이 재능을 불러들이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불러들일 가능성은 일단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두부를 즐겨 먹는 마라톤 마니아 하루키가 쓴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는 그의 독특한 문학성과 함께 인간미 가득한 매력적인 일상을 담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