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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

    ▶ 한자풀이 過: 허물 과 則: 곧 즉 勿: 말 물 憚: 꺼릴 탄 改: 고칠 개 잘못이나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뜻 - 공자는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허물이라고 했다. 누구나 잘못과 허물이 있지만 이를 알고도 고치기를 주저하면 더 큰 잘못, 더 큰 허물이 된다는 것이다. 학이편에는 공자가 군자의 수양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군자는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어 학문을 해도 견고하지 못하다. 충(忠)과 신(信)을 주장으로 삼으며,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삼으려 하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잘못이 있는데 고치기를 주저하면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할 위험이 있고, 잘못은 또 다른 잘못을 낳을 수 있으므로 허물을 고치는 데 꺼리지 말고 즉시 고치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도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군자는 잘못을 범하였을 때 모든 사람이 이를 알 수 있도록 바로 고쳐야 한다”라고 했다.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 안회(顔回)에 대해서는 ‘과불이(過不貳, 같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 하지 않음)’라 하며 그를 크게 칭찬했다. 위(衛)나라 재상 거백옥은 어진 성품으로 유명했다. 그는 공자와도 친교가 있었는데, 거백옥에게서 어느 날 사자(使者)가 왔다. 공자가 거대인의 안부를 물으니 사자가 답했다. “주인께서는 잘못을 줄이려고 애쓰고 계십니다만, 아직도 잘못을 줄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그 말을 듣고 거백옥과 사자를 높이 평가했다. 공자는 자장편에서 “덕이 없는 자는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을 고칠 생각은 않고 꾸며서 얼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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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靑天白日 (청천백일)

    ▶한자풀이 靑: 푸를 청 天: 하늘 천 白: 흰 백 日: 날 일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빛나는 태양 세상에 아무런 부끄럼이나 죄가 없음 '여최군서(與崔群西)' ‘여최군서(與崔群西)’는 당나라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최군(崔群)이라는 인품이 훌륭한 벗에게 보낸 글이다. 한유는 이 글에서 최군에 대해 말이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대답한 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대는 빼어난 인품으로 어떤 경우에도 즐거워하거나 어떤 일에도 근심하지 않소. 그러나 강남이라는 곳과 지금 그대가 맡고 있는 관직은 그대에게 어울리지 않소. 그대는 많은 나의 친구들 가운데 가장 마음이 순수하고 맑아 반짝이는 해와 같소. 그대와 나의 우정은 말할 수 없이 깊소. 그런데 당신을 의심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의심스럽다. 군자라도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있는 법인데, 모든 사람이 마음으로 복종한다고 하니,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이에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소. ‘봉황과 지초(芝草)가 상서로운 조짐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며, 청천백일(靑天白日)이 맑고 밝다는 것은 노예조차도 알고 있다. 이것을 음식에 비유해 말하면, 먼 곳의 진미는 즐기는 자도 있고 즐기지 않는 자도 있지만 쌀, 수수, 회(膾), 적(炙)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여기서 한유가 ‘청천백일’을 비유해 말하고자 한 것은 최군의 인품이 매우 뛰어나서 그같이 훌륭한 인물은 누구든 다 알아본다는 것이다. 즉 푸른 하늘에 빛나는 태양의 맑고 밝음은 노예까지도 인정하는 것처럼, 훌륭한 인물은 청천백일하에 드러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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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喪家之狗 (상가지구)

    ▶한자풀이 喪: 초상 상 家: 집 가 之: 갈 지 狗: 개 구 '상갓집의 개'라는 뜻으로 여기저기 이익을 좇음을 비유 - 공자가 정(鄭)나라에 갈 때 그를 존경하는 여러 제자가 가르침도 배우고 스승을 보살피기 위해 따라다녔다. 한데 어쩌다가 공자가 길거리에서 그 제자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공자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 한 채 동문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무작정 그러고 있으면 자기를 찾는 제자 중 누군가가 나타나리라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제자들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스승이 염려된 제자들은 각자 나뉘어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중 제자 자공(子貢)이 행인들을 붙들고 스승의 용모를 말하며 저잣거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걸쭉한 입담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동문 옆에 웬 노인네가 서 있는 걸 봤는데, 그 양반이 아마도 노형이 찾는 분 아닌지 모르겠구려. 생김새는 이마가 요(堯)임금 같고, 목은 순(舜)임금과 우(禹)임금을 섬긴 고요(皐陶)와 비슷하며, 어깨는 명재상 자산(子産)을 닮았습디다. 그렇지만 허리 아래로는 우임금보다 세 치 정도는 짧아 보였고, 맥 빠져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은 주인이 황망 중이라 미처 얻어먹지 못해 기운 빠진 ‘상갓집 개(喪家之狗)’를 연상케 합디다.” 무엄함을 탓할 겨를도 없이 허둥지둥 동문으로 달려간 자공은 스승을 발견하고 일행이 기다리는 장소로 모시고 오다가,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해 조금 전 행인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자공의 놀림에 공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내 용모를 가지고 한 소리는 다 맞다고 할 수 없지만, 상갓집 개 꼬락서니라고 한 것은 딱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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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松茂柏悅 (송무백열)

    ▶ 한자풀이 松: 소나무 송 茂: 무성할 무 柏: 잣나무 백 悅: 기쁠 열 소나무의 무성함을 잣나무가 기뻐함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함을 이름 - 중국 서진의 문인 육기(陸機)가 쓴 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진실로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지초가 불타자 혜란이 탄식하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歎).” 송무백열(松茂柏悅)은 ‘소나무의 무성함을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백(柏)은 원래 측백나무를 가리키지만, 현재는 잣나무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이 되어도 푸른 빛을 잃지 않아 예부터 선비의 꼿꼿한 지조와 기상을 상징한다. 송백지조(松柏之操, 송백의 푸른 빛처럼 변하지 않는 지조), 송백지무(松柏之茂, 언제나 푸른 송백처럼 오래도록 영화를 누림) 등이 그 예다. 공자는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까지 푸르름을 안다”라고 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인간의 지조에 빗댄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도 공자의 이 말에서 제목을 빌려온 듯하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푸르면서도 서로 모습이 비슷해 흔히 가까운 벗을 비유하는 데 사용한다. 송무백열이 대표적 사례다. 혜분난비(蕙焚蘭悲)는 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이 또한 벗의 깊은 우정을 이르는 말이다. 혜(蕙)는 난초의 한 종류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백아(伯牙)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던 절친한 벗 종자기(種子期)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은 여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평생 진정한 벗 한 명 얻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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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堀墓鞭屍 (굴묘편시)

    ▶ 한자풀이 堀: 굴 굴 墓: 무덤 묘 鞭: 채찍 편 屍: 주검 시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하다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이름 - 오자서(伍子胥)는 춘추시대 정치가로 초나라 사람이다. 그는 초나라 평왕의 태자 건의 태부(太傅: 왕의 고문 격)요 충신이었던 오사(伍奢)의 아들이었다. 건의 소부(少傅)였던 비무기가 오사를 시기해 평왕에게 참소하자, 평왕은 오사와 그의 큰아들 오상(伍尙)을 죽이고 자서까지 죽이려 했으나 재빨리 몸을 피해 오나라로 망명했다. 오자서는 오나라 왕 합려를 도와 강대국을 이룬 뒤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초나라로 쳐들어갔지만 평왕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생전에 오자서의 보복을 예견한 평왕이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를 조성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린 탓에 무덤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인의 도움으로 왕의 무덤을 찾은 오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철장(鐵杖) 300을 쳐 분을 풀었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는 이 소문을 듣고 “그대의 그러한 복수 방법은 지나친 게 아닌가…”라고 책하였다. 에 나오는 얘기다. 굴묘편시(掘墓鞭屍)는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하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도를 넘는 지나친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극형을 추시하던 부관참시(剖棺斬屍)도 의미가 비슷하다.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 우리나라는 특히 연산군 때 성행했으며 김종직(金宗直), 송흠(宋欽), 한명회(韓明澮), 정여창(鄭汝昌), 남효온(南孝溫), 성현(成俔) 등이 이 형을 받았다. 참고로 역사적으로 대역죄를 범한 자에게 과한 극형은 능지처참(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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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燕雀鴻鵠 (연작홍곡)

    ▶ 한자풀이 燕: 제비 연 雀: 참새 작 鴻: 큰기러기 홍 鵠: 고니 곡 제비가 어찌 기러기의 마음을 알랴 소인은 대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함 - 진(秦)나라는 수백 년간 지속된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기원전 221년 중국 천하를 통일했지만, 폭정으로 민심을 잃어 15년 만에 멸망했다.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인 게 권세의 탑이다. 진 멸망의 첫 봉화는 양성(陽城)에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진승(陳勝)이라는 자가 올렸다. 그가 밭에서 일하다 잠시 쉬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놈의 세상, 뭔가 뒤집어 놓아야지. 이래서는 어디 살 수가 있겠나!” 주위의 머슴들이 일제히 비웃었다. “여보시게, 머슴 주제에 무엇을 하겠다고?” 진승이 탄식하듯이 말했다.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리오(燕雀安知 鴻鵠之志).” 진시왕이 죽고 아들 이세(二世)가 왕위를 이었지만 포악함과 사치는 아버지보다 더했다. 백성은 삼족을 멸한다는 형벌이 두려워 불만조차 숨겼다. 후에 진승은 오광(吳廣)과 함께 징발되어 일행 900여 명과 함께 장성(長城)을 수비하러 갔다. 한데 대택(大澤)이라는 곳에서 큰비를 만나 기일 내에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늦게 도착하면 참형(斬刑)에 처해지니 차라리 반란을 일으키는 게 더 나을 듯했다. 진승·오광은 뜻을 같이하고 인솔자인 징병관을 죽인 뒤 군중을 모아 놓고 말했다. “어차피 늦게 목적지에 도착해도 우리는 죽으니 사내대장부답게 이름이나 날리자.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있다더냐?” 두 사람은 파죽지세로 주위를 함락시켰고, 진승은 나라 이름을 장초(長楚)라 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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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辭 (귀거래사)

    ▶한자풀이 歸: 돌아갈 귀 去: 갈 거 來: 올 래 辭: 말씀 사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으로 돌아감 - 귀거래사(歸去來辭)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위진남북조시대 동진(東晋) 말~남조(南朝) 송 초의 시인이다. 유토피아 무릉도원을 노래한 ‘도원화기’라는 불세출의 명작을 남겼다. 집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놓고 스스로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도교와 불교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외고 다닐 정도였다. 좨주(祭酒: 국자감의 우두머리)로 벼슬을 시작해 참군(參軍)을 거쳐 팽택현령에 임명됐으나,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살았다.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유명한 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썼다. 시골로 은거해 농사를 지었고, 평생 가난과 병에 시달렸지만 끝내 권세와 타협하지 않았다. 따스한 인간미와 담담한 기풍은 당시의 선비들이 즐겨한 유희 문학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평범한 시풍이어서 당시에는 멸시에 가까운 평을 받았지만, 후에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시풍은 당나라 맹호연 왕유 유종원 백거이 등을 비롯해 많은 시인에게 영향을 미쳐 중국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다음은 ‘귀거래사’의 내용이다. ‘자, 돌아가자. 숨 막히는 속세와의 인연은 끊어버리자. 이제 다시 벼슬에 올라 무엇을 더 얻으리. 따뜻한 피붙이들의 말을 귀히 여기고, 거문고 소리 들고 책 읽으며 수심을 날려버리자. 농부가 나에게 봄이 찾아오고, 서쪽 논밭에서 농사일이 시작됐다고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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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匹夫之勇 (필부지용)

    ▶한자풀이 匹: 짝 필 夫: 사내 부 之: 갈 지 勇: 용감할 용 하찮은 남자의 용기라는 뜻으로 혈기만 믿고 함부로 부리는 만용 - 맹자는 왕도(王道)정치의 실현을 위해 여러 나라를 돌며 유세하기로 하고 먼저 양나라로 갔다. 양혜왕(惠王)이 맹자를 정중히 맞으며 이웃 나라와는 어떻게 국교를 맺는 게 좋은지 물었다. 맹자가 답했다. “대국은 소국을 받드는 마음으로, 겸허한 태도로 사귀지 않으면 아니 되옵니다. 이는 인자(仁者)라야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지만, 은나라의 탕왕이나 주나라의 문왕은 이미 이것을 행했습니다. 또한 소(小)가 대(大)를 받드는 것은 하늘의 도리이옵니다. 무왕(武王)의 할아버지 대왕이 그것을 행했기 때문에 주나라는 뒤에 대국을 이루게 되었고, 월나라 왕 구천은 숙적 오나라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존할 수 있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는 나라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혜왕은 매우 훌륭한 도리라고 탄복했지만 양나라는 어느 나라나 받들기만 해야 할 형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맹자에게 재차 물었다. “나에게는 해가 된다고 하시겠지만, 용(勇)을 즐기는 성품이 있으니 어찌해야 하오?” 맹자가 물끄러미 혜왕을 바라보며 정중히 답했다. “소용(小勇)을 즐겨서는 아니 되옵니다. 칼을 매만지고 눈을 부라리며 너 같은 자는 나의 적수가 아니라고 하는 따위는 필부(匹夫)의 용(勇)으로, 겨우 한 사람이나 상대할 따름이옵니다. 더 큰 용기(勇氣)를 지니십시오.” 필부지용(匹夫之勇)은 하찮은 남자의 용기라는 뜻으로, 소인의 혈기에서 나오는 경솔한 만용을 이른다. 자주 사용하는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도 맹자와 양혜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