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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羊質虎皮 (양질호피)

    ▶ 한자풀이 羊: 양 양 質: 바탕 질 虎: 범 호 皮: 가죽 피 양의 몸에 호랑이 가죽을 걸치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내실이 빈약함 - 중국 한(漢)나라 때 양웅(揚雄)이 지은 은 의 문체를 모방한 일종의 수상록이다. 오자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혹자가 묻기를 ‘어떤 사람이 공자의 문하에 들어가 그 안채에 올라 공자의 책상에 엎드리고 공자의 옷을 입는다면 그 사람은 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그 무늬는 그렇지만 그 바탕은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혹자가 다시 ‘바탕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요’라고 물으니, ‘양은 그 몸에 호랑이 가죽을 씌어놓아도 풀을 보면 좋아라 뜯어 먹고, 승냥이를 만나면 두려워 떨며 자신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사실을 잊어버린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忘其皮之虎矣)’라고 대답하였다.” 양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써서 겉으로는 호랑이처럼 보일지라도 호랑이의 바탕(본질)까지 갖추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호랑이 가죽을 쓰고서도 예전처럼 풀을 뜯어 먹으며, 다른 짐승의 눈에는 자신이 호랑이로 보인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승냥이를 만나면 예전처럼 무서워하며 벌벌 떤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래한 양질호피(羊質虎皮)는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그에 걸맞은 실력이나 실속은 갖추고 있지 못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 양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 채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서 호랑이가 될 수 없듯이,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우리나라 속담 “빛 좋은 개살구”와도 의미가 통한다. 공자가 강조한 문질빈빈(文質彬彬)은 꾸밈(文)과 바탕(質)이 조화를 이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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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民同樂 (여민동락)

    ▶ 한자풀이 與: 더불 여 民: 백성 민 同: 같을 동 樂: 즐거울 락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 - 맹자는 인의(人義)와 덕(德)으로 다스리는 왕도(王道)정치를 주창했다. 왕도정치의 바탕에는 백성을 정치적 행위의 주체로 보는 민본(民本)사상이 깔려 있다. 맹자가 전쟁을 즐기고 백성의 아픔을 돌보지 않는 양(梁)나라 혜왕(惠王)에게 말했다. “지금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시는데 백성들이 종과 북, 피리 소리를 듣고는 골머리를 앓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우리 왕은 음악을 즐기면서 어찌하여 우리를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여 부자(父子)가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가’라고 불평하고, 또 왕께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들이 그 행차하는 거마(車馬) 소리와 화려한 깃발을 보고는 골머리를 앓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우리 왕은 사냥을 즐기면서 어찌하여 우리를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여 부자가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가’라고 원망한다면, 이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此無他, 不與民同樂也).” 맹자가 말을 이었다. “지금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시는데 백성들이 종과 북, 피리 소리를 듣고는 모두들 기뻐하며 ‘우리 왕께서 질병 없이 건강하신가 보다, 어찌 저리 북을 잘 치실까’라고 하고, 왕께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들이 거마 소리와 화려한 깃발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며 ‘왕께서 질병 없이 건강하신가 보다, 어찌 저리 사냥을 잘 하실까’라고 한다면, 이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기 때문입니다(此無他, 與民同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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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世推移 (여세추이)

    ▶한자풀이 與: 더불 여 世: 인간 세 推: 옮길 추 移: 옮길 이 세상의 변화에 맞춰 변화해가다 시대의 흐름에 융통성 있게 적응함 -한자풀이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서 한때 삼려대부의 지위까지 올랐던 굴원은 제(齊)와 동맹해 강국인 진(秦)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좌천되었다. 결국 굴원의 간언을 무시하고 제나라와 단교하며 친진(親秦) 정책을 편 초의 회왕은 장의의 모략에 빠져 진에 사로잡혀 객사했다. 경양왕이 즉위한 뒤 굴원은 다시 조정으로 돌아왔으나 회왕을 객사하게 한 자란이 재상이 되자 그를 비판하다 다시 유배됐다. 굴원은 를 지어 자신의 심정을 나타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굴원이 쫓겨나 강과 못 사이를 거닐면서 시(詩)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있었다. 어부(漁父)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무슨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 사람이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 추방을 당했소이다.” 어부가 이에 말했다.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과 추이를 같이한다오(聖人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어찌 그 진흙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고, 뭇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으면 왜 그 술지게미 배불리 먹고 박주(薄酒)나마 마시지 않고 어찌하여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굴원이 답했다. “내 일찍이 듣기로,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관(冠)의 먼지를 털어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하였소. 어찌 이 깨끗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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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功虧一簣(공휴일궤)

    ▶ 한자풀이 功: 공 공 虧: 이지러질 휴 一: 한 일 簣: 삼태기 궤 쌓는 공이 한 삼태기로 이지러지다 거의 성취한 일을 중지해 모든 게 헛됨 - 세상사 시작만큼이나 끝이 중요하다. 곧은 뜻도 끝에서 휘고, 태산만 한 꿈도 끝에서 밤톨만 해지는 일이 허다하다. 십 리 길도 한 걸음이 모자라면 닿지 못하고, 아홉 길 산도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면 완성되지 못한다. 마지막 1% 부족으로 99%가 무용지물이 되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아홉 길 산을 쌓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공이 한꺼번에 무너진다(九功虧一).’ 여포 편에 나오는 말로, 공휴일궤(功虧一)는 쌓는 공이 흙 한 삼태기 부족으로 이지러진다는 뜻이다. 거의 성취한 일을 중지해 기존의 공이 허사가 됨을 이르는 말이다. 주(周)나라 무왕이 은(殷)나라 주왕을 무찌르고 새 왕조를 열자, 여(旅)라는 오랑캐 나라에서 ‘오(獒)’라는 진기한 개를 선물로 보냈다. 오는 키가 넉 자나 되는 큰 개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어 무왕이 소중히 여기자 동생인 소공 석(奭)이 왕이 혹여 개에 마음이 끌려 정치를 등한시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이를 일깨워 말했다. “임금 된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방심하면 마침내 큰 덕을 해치게 된다. 예를 들어 흙을 가져다가 산을 만드는데, 이제 조금만 더 쌓으면 아홉 길 높이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이제는 다 되었다 하고 한 삼태기의 흙을 쌓는 데 게을리하게 되면 지금까지 해온 일이 모두 허사가 된다.” ‘아홉 길 산을 쌓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공이 한꺼번에 무너진다’는 공휴일궤는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조금만 마무리를 잘 하면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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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脚踏實地 (각답실지)

    ▶한자풀이 脚: 다리 각 踏: 밟을 답 實: 열매 실 地: 땅 지 발이 실제로 땅에 붙었다는 뜻으로 일 처리 솜씨가 착실함을 이르는 말 - 송사(宋史) 북송(北宋)의 정치가이자 사학자인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 은 편년체(編年體) 역사서다. 편년체는 역사 기록을 연·월·일 순으로 정리한 것으로, 은 주(周)나라 위열왕이 진(晉)나라 3경(卿: 韓·魏·趙씨)을 제후로 인정한 BC 403년부터 5대(五代)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인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서 편찬한 것이다. 주기(周紀) 5권 등 모두 16기(紀) 24권으로 구성되었다. 자치통감은 치도(治道)에 자료가 되고 역대를 통해 거울이 된다는 뜻으로, 곧 역대 사실(史實)을 밝혀 정치의 규범으로 삼으며, 또한 왕조 흥망의 원인과 대의명분을 밝히려 한 데 그 뜻이 있었다. 사마광은 20권을 지어 이 책 내용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1065년부터 1084년까지 밤낮으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한 사마광은 세밀하게 자료들을 수집·정리해 이 책을 편찬했고, 이런 공로를 인정한 북송의 6대 황제 신종이 책 이름을 지어주었다. 송나라 학자 소옹은 사마광에 대해 “실제의 사실을 확인하려고 발로 뛰어다니면서 답사한 사람(君實脚踏實地人也)”이라며 그의 성실성을 칭찬했다. 각답실지(脚踏實地)는 발이 실제로 땅에 붙었다는 의미로, 일을 할 때 사실과 원리에 따라 과장하지 않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대하는 자세를 이르는 말이다. 성실한 태도와 바른 품행으로 착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후대에 오래 전해오는 책들은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쓰지 않고 직접 발로 뛰며 쓴 책들이 대부분이다. 발은 머리보다 사실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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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衆口難防 (중구난방_

    ▶한자풀이 衆: 무리 중 口: 입 구 難: 어려울 난 防: 막을 방 여럿이 마구 지껄여댐을 뜻하는 말로 뭇사람의 말은 막기 어렵다는 의미 - 주나라 여왕((周勵王)은 극도의 탄압정책을 펼쳤다. 국정을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적발해 가차없이 죽였다. 밀고제도도 거미줄처럼 촘촘해 백성들은 두려움에 입을 닫고 살았다. “내 정치하는 솜씨가 어떻소? 나를 비방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중신 중에 소공(召公)은 왕의 이런 기고만장에 기가 막혀 충언을 했다. “왕께서는 겨우 비방을 막았을 뿐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둑으로 개천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하지만 권력에 취한 여왕은 소공의 고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말은 백성들이 아직도 나를 비방한다는 말이오?”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상하게 되는데, 백성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개천을 막는 사람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의 생각을 말로 하게 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마음놓고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하지만 끝내 여왕은 소공의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참다 못한 백성들은 결국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도망쳐 평생을 갇혀 살았다. 이후 주나라에서는 신하들이 상의해서 정치를 한 공화정이 14년 동안 이어졌다. 에 나오는 이야기다. 뜻이 비슷한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춘추시대 송(宋)나라 사마(司馬)가 성을 쌓는 책임자에 임명되었다. 그러자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사람들이 그가 적국의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사실을 비꼬아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사마는 “여러 사람의 입을 막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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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仰不愧於天 (앙불괴어천)

    ▶ 한자풀이 仰: 우러를 앙 不: 아니 불 愧: 부끄러워할 괴 於: 어조사 어 天: 하늘 천 스스로 몸가짐이 도리에 맞아 하늘을 우러러보아 부끄럽지 않음 -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이라는 유명한 구절은 진심상(盡心上) 편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은 거기에 끼어 있지 않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고(無故)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유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군자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집안에서는 부모와 형제를 잘 봉양해 무탈하게 하는 것, 스스로는 처신을 단정히 하고 예의염치를 아는 것, 밖에서는 훌륭한 인재를 얻어 양성하는 세 가지야말로 군자의 도라는 뜻이다. 바란다고 다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이루고 나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는 뜻에서 ‘군자삼락’이라는 말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仰不愧於天 俯不於人)은 하늘에도 사람에게도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는 군자의 자세를 이르며, 흔히 앙불괴어천으로 줄여 쓴다. 에도 “군자는 누가 보지 않을 때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누가 듣지 않을 때에도 두려워한다. 어두운 곳보다 더 드러나는 곳은 없으며 작은 일보다 더 나타나는 일은 없으니,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앙불괴어천과 뜻이 맞닿는다. “죽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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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晏御揚揚 (안어양양)

    ▶한자풀이 晏: 늦을 안 御: 어거할 어 揚: 오를 양 揚: 오를 양 안영의 마부가 날아오를 듯하다는 뜻으로 스스로 만족해 기세가 드높은 모양새 - 안영(晏)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으로 3대 군주를 섬기면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하루는 안영이 수레를 타고 외출했는데, 수레 모는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남편이 어떤 모습으로 일하는지 엿보았다. 마부는 머리 위에 펼친 큰 우산 아래서 채찍질을 하며 말 네 필을 몰고 있었는데, 의기양양하며 매우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마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대뜸 이혼을 요구했다. 마부가 깜짝 놀라며 그 까닭을 묻자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모시는 안자(晏子,: 안영을 높여 부르는 말)께서는 키가 6척이 채 안 되는데도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명성을 날리고 계십니다. 바깥에서의 모습 또한 뜻과 생각이 깊고 현명해 보이면서도 늘 스스로를 낮추시더이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면서 남의 마부로 있는데도 스스로 자만해 만족스러워하고 있으니, 제가 지금 이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마부는 항상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게 행동했다. 그가 변한 모습을 보고 안영이 이상하게 여겨 까닭을 묻자 마부는 아내와의 일을 사실대로 전했다. 곧장 반성할 줄 알고 바르게 변한 모습을 보고 안영은 그를 천거하여 대부(大夫)로 삼았다. 안어양양(晏御揚揚)은 관안열전(管晏列傳)에 전해오는 고사에서 유래하는 말로, 안영의 마부처럼 스스로 만족해 기세가 등등한 모습을 일컫는다. 뜻을 이루어 흡족한 상태를 가리키며,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겨 으쓱대는 태도를 이르지만 자만하다는 뜻을 내포한다. 양양(揚揚)은 하늘로 날아오